진정한 크리스천 예술가의 삶이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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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크리스천 예술가의 삶이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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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0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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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Seerveld)의 개혁주의 미학 (29)

▲ 안용준 목사
예술가는 어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든지, 그에게는 창조적 기술이 요구된다. 예술 현장이 새로운 표현 방식과 묘사 방법들의 개발로 열려 있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고와 이념을 전파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어벨트에 따르면 문제는 예술가 자신이 단지 개인적 신념이나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장식적인 디자인, 이콘, 기술, 주문(呪文)을 선택하게 될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술의 세계가 형성된다고 한다면 몬드리안 이후 즉 포스트모던예술의 많은 부분은 외로운 죽음의 종말, 고립된 회의주의에 빠져들게 될 뿐이다. 그곳은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내적 통찰력을 이야기하는 언어와 일상적 삶에 관한 위로 대신에 혼돈의 이콘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는 얼핏 찬란하게 보이는 형상을 숭배할 수 있다고 시어벨트는 경고한다.

시어벨트가 줄곧 미학의 변혁적 기능을 통해 생명과 진리를 전해주는 예술 활동을 중요하게 다룬 의도가 여기에 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일구어낸 풍성한 예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 예술이 소유하는 주관주의적 특색은 순수하고 완전한 진리에 대한 통찰로부터 스스로 외면케 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다양한 의미가 유출될 수 있음은 인식의 주관성이 지니고 있는 필연적인 예술적 현상이라면, 개혁주의의 관점에서 진리와 예술을 결부시키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시어벨트는 우리가 누리는 세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영원한 즐거움을 노래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미학을 구축하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가 주장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성령에 충만한 이론적 학문”이야말로 주관의 욕망과 탐욕으로 치우친 예술적 성취를 회복시키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인간의 예술적 필요를 채우는 단순한 노력이 아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예술적 환경이 아직 최선의 상태가 아니라는 확신위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세계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어벨트는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서양문명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예술을 형성하는 원리가 무엇인지에 주위를 기울이며 세계를 인식하는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미학적 의미를 유추했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 앞에 펼쳐진 예술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이야기다.

사실 예술 현장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어떤 일(예술의 활동과 그 결과물)이 훌륭하고 고귀하다는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예술적 태도는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것의 목표는 어디이며 어떻게 심화되어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 예술창작의 결과가 인간의 고귀한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인지, 다양한 미적 가치가 공존하는 현재의 예술 공간에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육체의 욕망에서 나오는 고삐를 죄지 않는다면, 문화 예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말씀에 조명된 삶을 실천한다면 문화 예술을 향한 참 자유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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