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기로에서 ‘좁은 문’을 택한 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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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기로에서 ‘좁은 문’을 택한 자의 행복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12.0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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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많은 수술이 기다리고 있는 김송철 교수. 그러나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 췌장암이 워낙 어려운 병이라 지방에서 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베스트 닥터’라는 소문으로 환자들이 그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

‘베스트 닥터’ 외과의사 김송철 교수
 

김송철 교수(서울아산병원 외과)는 한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베스트 닥터’에 담췌장질환 수술 부분 최고의 의사로 뽑혔다. 전국 10개 병원 소화기내과 및 외과 교수 45명이 ‘가족이 담췌장 질환으로 아프면 믿고 수술을 맡길 수 있는 의사’로 김 교수를 가장 많이 추천했을 만큼 그는 믿음직한 의사다.

그 ‘믿음직함’의 뿌리에는 소명의식이 있다. 그는 인생길을 가다가 만나게 되는 기로에서 늘 찾는 자가 적은 ‘좁은 문’을 선택했다.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 외과를 전공할 이유를 찾았고, 서울시립보라매병원에서 행려병자를 치료하면서 외과의사가 천직임을 깨달았다. 현재 그가 다루는 췌장암 역시 성공률이 낮아 남들이 기피하는 분야.

매년 설날이면 일주일 씩 캄보디아로 의료 선교를 다녀온다. 의술이라는 달란트를 받은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의예과 2학년 때였다. 서울대 의대 등반대장으로 한라산을 갔다가 후배 1명을 잃으며 방황할 무렵이었다.

“복음이 모든 문제의 답이다”

“그해 겨울에 눈이 무지무지하게 많이 왔습니다. 도중에 길을 잃어버렸어요. 밤새 같이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한 친구가 저체온증으로 못 움직였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다 죽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친구를 두고 떠났습니다. 다시 와서 구할 생각으로 떠났는데, 결국 그것이 마지막이 돼버렸습니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두 달이 넘도록 그 아픔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방황할 때에 캠퍼스에서 한 선교사를 만났다. 그가 이렇게 물었다. “Are you happy?” 가장 단순한 물음, ‘너 행복 하느냐’는 질문 앞에 그는 무너졌다. 복음을 받아들이며 평안을 회복했다. 전두환 정권 때 교련 반대시위를 하다가 유급 당할 만큼 데모도 많이 했던 그였다. 이른바 운동권에 속해있던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잘못된 사회 문제를 고치려고 사회운동을 해왔는데 그때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 되겠다는 솔루션을 얻은 겁니다. 제 성격이 뭘 하면 옹골지게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기독교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너무 무기력해보였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그때 너무 용감했다 싶을 정도로 캠퍼스를 들쑤시고 다니며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얘가 완전히 맛이 갔다’고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본과 4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때,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 공중보건의를 자원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외과를 택해야 어려운 사람들을 더 많이 돌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원래 성격상 수술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필드에 나가보니 외과는 약을 주면서 내과의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내과를 하면 맹장도, 환부가 찢어진 환자도 고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마음이 간절했거든요.”

공중보건의를 끝내고 서울대로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올라왔다. 당시 서울대에선 서울시립보라매병원으로 파견근무를 나가곤 했다. 1987년 당시 보라매병원은 행려환자가 너무 많은 반면에 시설과 인원은 늘 부족했다. 불에 엎어져 화상을 크게 입은 환자들이 울부짖고, 환부에 구더기가 살고 있는 행려환자들이 널부러져있는 상황 속에서 인턴들은 서로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외과가 힘들어도 보람이 크다

“저는 행려병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보람이 있더라고요.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렇게 고통당하던 환자들이 깨끗이 낫고 새살이 돋아 좋아하며 퇴원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어요. 외과가 제 천직이라는 확신이 섰죠. 정형외과 쪽도 마음이 있었는데 정형외과는 사실 돈 벌려는 사람이 한다는 생각에 일반외과를 택했습니다.”

김 교수가 췌장암을 다루게 된 배경에도 소명의식이 깔려있었다. 그전까지는 장기이식을 담당했다. 보람도 컸다. 죽어가던 환자들이 간이식이나 신장이식을 통해 새롭게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기쁨을 느꼈다.

“장기이식은 점점 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제가 아니어도 되겠더라고요. 그런데 췌장암은 그 성공률이 낮다 보니까 아무도 관심을 안 기울이고 그래서 예우도 안 좋고 그러다보니 전문가가 없으니까 더 발전도 안 되고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이대로 가면 환자들이 피해가 크겠다 싶어서 췌장암 쪽으로 바꿨습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췌장암 수술은 다른 암 수술에 비해서 성공률이 낮다. 이쪽 분야의 의료진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수술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중고를 겪기 쉽다. 김 교수 역시 수술 후에 오래 사시는 분들을 보면 반갑지만 때로는 환자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해야할 때가 있다.

“제가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환자분들이 잘 받아들이시는 편입니다. 의사인 저도 얼마 있다가 다 가는 것이고, 이건 하나님이 정해주신 길이라고 하면 위로를 받아요. 죽음 앞에서 대개 가진 것이 많은 분들은 반응이 거셉니다. 죽음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죠. 반면에 농촌에 사시거나 신앙을 가지신 분들은 덤덤히 받아들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거꾸로 저에게 교회 다니시라고 권면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 캄보디아에서 의료 봉사 중인 김송철 교수

매년 캄보디아로 의료선교

서울 서문교회(담임목사: 한진환)를 출석하며 서울아산병원 기독봉사회 회원인 그는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교회 다닌다고 다 기독봉사회에 동참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참여하는 분들은 해외봉사를 많이 나간다. 그도 매년 캄보디아를 다녀온다. 설 연휴를 이용해 일주일씩 다녀오는데 그때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치유가 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주로 겨울에 가는데 거기는 날씨가 좋아서 덜 힘든 것도 있고요. 그렇게 의료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의술을 베풀었다는 뿌듯함이 큰 보람이죠. 또 거기 가면 서울에서의 복잡한 문제에서 벗어나서 단순한 사람들과 단순하게 지내다 오니까 마음이 평안해지는 유익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췌장암을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의사로 꼽힌다. 췌장은 복부 깊숙한 곳에 다른 장기와 겹쳐 있기 때문에 암 진단뿐만 아니라 수술도 어렵다. 복강경 수술은 개복수술보다 여러 면에서 유익하지만 문제는 개복수술로도 어려운데 복강경으로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컸다.

그는 지금까지 췌장, 담도, 십이지장 등에 각종 병이 생긴 환자 1200명을 복강경으로 수술하며 이런 의문에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해외 의료학회와도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어, 미국과 프랑스, 스웨덴 등의 연구진들과 함께 복강경 수술의 효과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늘 많은 수술이 기다리고 있는 김송철 교수. 그러나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 췌장암이 워낙 어려운 병이라 지방에서 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베스트 닥터’라는 소문으로 환자들이 그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온 환자들 앞에서 계속되는 수술과 연구,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그에게 스트레스가 없을 리 없다. 의사도 힐링이 필요하다. 의사를 치료하는 ‘의사’는 누구인가? 오늘도 그는 시편 23편을 암송한다. 마음이 편해진다. 어제에 이어 구약성경을 계속 읽어나간다. 무념무상 속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통독의 즐거움이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 김송철 교수가 췌장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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