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역사에 불명예로 기록될 ‘총무 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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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역사에 불명예로 기록될 ‘총무 인선’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4.11.2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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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협 제63회 정기총회 대혼란 … 에큐메니칼 정신 어디로 갔나?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일치, 대화와 타협을 중요한 가치로 담고 있는 에큐메니칼운동. 이 에큐메니칼운동을 지향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지난 63회 정기총회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차기총무 인선과정에서 불거진 회원교단 간 갈등이 결국 정기총회 현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한국교회사에 불명예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정기총회를 끝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난 구세군 박종덕 사령관은 “아쉬움이 크다. 모든 회원교단 앞에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다. 함께할 수 있어서 큰 경험이었지만, 물러나는 느낌은 행복하지 않다”는 이임사를 전했다.

임기를 마친 박 사령관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수심이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무리한 재선이 불러온 참사
애초부터 차기총무 인선 과정에서 논란의 핵심은 김영주 총무였다.

4년 전 처음 총무 선거에 나섰을 때 “당선될 경우 한 번만 하겠다”고 발언했던 그가 또다시 출마했다. 또 4년 임기 중 만 65세 정년이 도래해, 원칙대로라면 재임시 11개월의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도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을 바라보는 교단들의 입장에 따라 김 총무의 재임에 대해 찬반은 갈렸다.

특히 류태선 목사를 후보로 냈던 예장통합은 교단 관례와 헌장 원칙 등을 내세우며 김 총무의 재출마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여기에 루터교가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기감, 구세군, 성공회는 적극 지지, 기장은 중립 등 교단 간 대립 양상으로 번지면서,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첨예해졌고 그 결과 법정 소송까지 가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남게 됐다.

총회 회무에서 박종덕 회장은 가능하면 만장일치 추대 분위기로 이끌어가려했지만, 통합 총대들은 무기명 비밀투표를 주장했다. 이후 날선 공방이 이어졌고 발언의 수위는 점차 올라갔다.

총무 인준투표 방식과, 특히 헌장세칙 24조 총무선거 규정에 ‘과반수 찬성’이라고 나온 부분을 ‘재적 과반수’로 할지, ‘출석 과반수’를 할지를 두고도 논쟁이 벌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구세군 임헌택 사관은 “본인들은 다 잘했어요. 나머지는 못한 거야. 이것이 독선이지 뭡니까? 7개 교단이 찬성하고 있습니다”라며 통합측을 비판했다. 또 “대화를 하는 중에 법적 조치를 한 통합측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오기, 몽니를 안 부렸으면 좋겠다”며 ‘총무 제청 결의 무효 가처분신청’을 낸 통합측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통합 이홍정 사무총장은 “법 상식에 의한 관례대로 해 달라는 것이다. 집단적인 힘에 의해 헌장해석을 넘기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며 “7개 교단이나 지지를 받았는데 무엇을 염려하냐”며 무기명 비밀투표를 주장했다.

이후에도 여러 교단 총대들이 통합측의 주장을 일축하는 발언을 이어가자, 통합 정영택 총회장이 돌연 퇴장을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함께 나간 통합 총대들은 결국 회의에 복귀하지 않았고, 남은 총대들은 투표 끝에 ‘출석 과반’으로 김영주 총무의 중임을 결정했다.

에큐메니칼 가치를 지향해온 기구의 회의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상호존중과 인내를 가진 대화를 지향하지만 이날 현장에서는 날선 공방만 이어졌다.

▲ 총회장 정영택 목사와 서기 김순미 장로 등 통합 총대들은 이날 정기총회 현장에서 퇴장했다.

# 통합도 소통 미흡… 책임 남아
총무인선 논란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통합측에 대한 반대 정서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그동안 통합총회가 교회협 안에서 강자의 논리를 펼쳐온 데 반감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총무 인선 건은 회원교단 간 대립 양상으로 변질됐다.

여기서 짚어볼 대목이 있다. 총무 선출은 인물에 대한 검증과 평가가 중요하다. 하지만 ‘통합과 루터교’ 대 ‘기감, 구세군 등 7개 교단’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후보 자체에 대한 검증과 평가는 사실상 전무했다.
특히 현 총무의 재임 기간에 대한 공과가 평가돼야 하지만 이 역시 부족했다. 김영주 총무는 공식석상에서 자신이 4년 동안 한 게 없다며 다시 자리를 맡겨주면 잘해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총무직은 기회를 얻는 자리라기보다 책임을 지는 자리가 돼야 옳다.

또 살펴볼 부분은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인선과정에서 통합총회는 인선위원회와 헌장위원회 결의과정에 직접 참여했으면서도, 결과는 받아들이지 않고 가처분 소송을 진행했다. 에큐메니칼 관점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게다가 통합총회는 “이번 소송은 고육지책이며, 문제해결을 위한 진지한 대화로의 초대”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기까지 했다. 통합이 논란을 해결하고 갈등을 풀기 위해 얼마나 대화에 집중했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또 주목할 점은 인선위와 헌장위, 실행위, 총회까지 모든 결정이 다수결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교회협 회원교단들이라면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과정이 더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왕따라고 하기에는 통합측이 대형교단이기는 하지만 반통합 정서를 빌미로 집단적 ‘이지매’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통합 뿐만 아니라 루터회도 총무 선출과정에 비상식적인 행동들이 갈등을 불러온다는 지적한 내놓은 바 있다.

한 교단의 몽니가 아니라 두 교단의 의견으로 좀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초지일관 김영주 총무 당선을 위해 나선 교단들은 ‘다수’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이는 앞으로 교회협이 소수 약자의 편을 들거나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법적 횡포 등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취약점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교회협이 ‘다수결’이 마치 최선의 합의인 것처럼 주장했기때문에 우리 사회가 다수의 힘으로 규정하는 불의와 불합리, 부조리 등에 대해 정직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황용대 신임회장과 김영주 총무 등 교회협 새 임원진이나 예장 통합측이나 꽉 막힌 현재 상황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 통합총대들의 퇴장으로 정회하는 동안 교단 대표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지는 김영주 총무의 몫으로 남았다. 통합이 결국 에큐메니칼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날 경우, 개인의 욕심이 에큐메니칼의 분열을 불러왔다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렵다. 반통합 정서로 김 총무를 보호하는 것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남은 3년 여의 임기동안 얼마나 에큐메니칼 정체성을 잘 살리느냐의 과제가 통합에 대한 설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갈 경우, 서로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긴다는 점에서 화해와 타협을 위한 대화를 진지하게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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