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들, 목사님이 맞기는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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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 목사님이 맞기는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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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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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 / 예따람공동체

시론논자(時論論者)는 먼저 양해를 구한다. 혹시 이 시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목사님들께 죄송하다. 논자(論者)는 돌멩이 하나를 들고 던질까 말까 만지작거리며 시론을 쓴다. 

사회적으로 꽤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는 ‘가나안’교인과 대화 중 물었죠. “교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힐끔 쳐다보며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피식’ 묘한 웃음을 입가에 남기며, “관심 없어요. 무슨 소망이 있어요? 자리싸움이나 하고, 욕먹는 짓만 골라 하는데요?”라 한다. “그래도, 한국교회를 이끌고 있는 목사님들이잖아요?” “그분들, 정말 목사님이 맞기는 맞나요? 성직자라는 분들이 그 모양 그 꼴이니까 기독교가 소망이 없는 것 아닌가요?” 목사인 논자(論者)의 가슴이 울렁거리며 얼굴이 부끄럼으로 뜨거워졌다.

교계(敎界)의 사건을 쫓아다니는 언론 기자에게 물었죠. “교계, 어때요?” “목사님, 신문에 나는 그대로입니다. 논평 할 것 없어요.” 신문지면을 채워야 할 기사를 쓰긴 하지만 한심하고 별 볼일 없다는 듯, 같은 반응이다.

요즘 교계의 뜨거운 감사 사건은 “교회협 총무 인선 문제”이다.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다. 뭔가 불편하고 들리지 않았어야 할 소음이다.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나오는 불협화음이기에 더욱 듣기가 민망하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신이 무엇인가? 하나의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각기 다른 지체의 역할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는 에베소서의 교회관을 실행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泥田鬪狗)한다? 교회일치가 깨어지는 파열음이다. 세상의 평형수가 되어야 할 ‘구원의 방주’에서 평형수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법적하자가 없다는 논리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나, 불법이라고 세상법정에 고소하는 일을 세상은 어떻게 볼까?

‘정치판과 조금도 다를 바 없네? 결국 감투 싸움꾼들이잖아? 그 자리가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인가 보지? 정말 성직자들이야?’ 하는 비방의 소리가 높음을 어찌 듣지 못할까? 완전히 청각장애인이 된 것처럼 보인다.

작은 H교단의 한 기관장 선거가 끝났다. 선거에 당선된 목사님, 가족 중에 재벌이 있었나 보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인지 당선축하모임을 한다고 초특급호텔 스위트 홀을 장소로 정했다. 이 모임에 초청을 받은 한 목사님의 반응이 “정신 나간 것 아니야?”이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의 첫 마디가 “정말 목사 맞아?”이었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목사님들의 일탈(逸脫)의 행태에 대하여 비난의 소리가 높다. ‘약속 지키는 것이 신앙인의 도리’라고 설교를 하고 자신은 투표에서 정치적인 선택을 하여 약속불이행자가 되는 목사님,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예수님이 가난했으니, 가난하게 살라’하고는 자신은 고급승용차에 몸을 싣고 섬김 받는 삶을 즐기는 목사님, 대형사고 참사의 책임을 지라고 주먹을 쥐고 목청을 한없이 높이면서도 정작 자신이 져야 할 책임에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목사님들을 향하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쯤은 무시하고 잘 견디어야 소위 큰 목사가 될 자격이 있다는 마음일까? 왜 자꾸 목사님들이 기삿거리가 되어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꼴불견인 행태로 난장판 만드는 목사님들,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정말 목사님 맞아?”의 소리가 비수(匕首)로 가슴에 꽂힌다.

결국 시론자(時論者)는 만지작거리던 돌멩이를 내려놓았다. 시론자(時論者) 역시 목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과 손가락 속에 두었던 글 돌멩이는 신문에 ‘보내기’를 누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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