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미학, 역사가 아니라 지금이다
상태바
개혁주의 미학, 역사가 아니라 지금이다
  • 운영자
  • 승인 2014.11.19 15: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Seerveld)의 개혁주의 미학 (28)

우리의 주위의 문화 예술적 환경을 살펴보자. 이곳저곳에 인간 자신의 영광을 주장하는 인본주의적 선언들로 가득하다. 과거 입에 담기조차 어려웠던 민망한 이야기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일부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점점 더 그것에 몰입하고 있다. 연일 방송되는 드라마는 재미있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자세가 뚜렷한 경우가 있다. 시끌벅적한 화랑 가에는 황당한 이미지로 실망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기도 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문화적 소재들이 비빔밥처럼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시어벨트에 의하면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을 향한 궁극적 가치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상의 문화와 예술 이면에, 인간의 내적 존재의 비밀이 있고 진정한 인간, 이상적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진짜 살맛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들도 불순종으로 인한 엄청난 탈선의 결과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위대함의 근원을 소유하고 있다. 창세기 2장과 3장은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은 생명(life)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선한 창조 안에서의 삶이란 하나님과의 복된 교제가 넘치는 삶이며, 인간의 공동체 안에서 행복한 교제가 넘치는 삶이다. 이렇듯 창조 능력의 역사는 성경의 전 역사를 통하여 계속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인간과 교통을 원하시는 데까지 영향이 미친다.

시어벨트가 깜깜한 암흑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갖게 되는 위로와 소망이 담긴 예술적 메시지를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고통스러운 역사의 전개는 특별히 오로지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가치관을 소유한 예술 현장에서 노출되고 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온갖 사회 윤리적 죄악을 저지른 인간을 향해 용서의 구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처럼, 시어벨트는 시대를 바라보는 통렬한 슬픔의 마음을 강조한다.

개혁주의 미학의 전통은 타락한 세계의 추함을 깊이 이해한다. 칼빈(John Calvin)은 보이는 이미지를 숭배하는 일을 타락한 세계에 죄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카이퍼(Abraham Kuyper)도 자유주의적이며 인본주의적인 당대 철학의 유력한 전제들에 숨겨져 있는 위험을 직시하고, ‘대립’(antithesis) 개념을 통해 그 전제들에 반대했다. 특히 로크마커(Hans Rookmaaker)는 위기에 처한 현대 예술을 분석할 때 타락한 세계의 추함을 부각시켰다. 그에 따르면, 현대 예술이 국가와, 하나님 그리고 이성에 저항하는 모습에서 현대 예술의 위기가 나타난다.

놀랍게도 타락한 세계의 추함을 극복할 수 있는 미학적 변혁의 가능성은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적 성취를 통해서 반드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와 생명 안에서 예술적으로 성도 간에 변함없는 친교를 만들어 가야하며, 태양 아래 모든 사람과 열린 대화를 유지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