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과 유익의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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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과 유익의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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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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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백석신학교 학장

‘이익’은 개인적이고 유익은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이익만 챙기면 이기주의에 빠져 이타주의나 이신주의에까지 이끌지 못하게 된다. 개인이 이익만 추구하면 남을 이용하게 되고, 유익을 추구하면 상대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하게 된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극단적 개인주의로 이익을 위해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려면 남을 짓밟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하고, 상대를 죽이기도 하고 위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에게 유익을 주려면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때로는 내어주고, 상대를 잘되게 하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가가 잘되려면 국가가 내게 대하여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이익의 가치관에서 유익의 가치관으로 의식전환이 올 때 국가는 가장 건강하고 부강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황혼 이혼이 늘고 OECD국가 중 이혼율이 상위권에 든 한국의 현실을 볼 때 남편은 아내가 나에게 무엇을 안 해 준다고 불평하고, 아내는 남편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안 해 준다고 판단하여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만약 남편이 내가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아내가 남편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먼저 생각하고 고려한다면 이익의 기준에서, 유익판단 기준으로 의식이 전환되면 이혼에서 화해로 새 가정이 만들어져 갈 것이다.

교회도 목회자가 성도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를 먼저 생각한다면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가 될 것이다. 또한 성도들도 목회자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목회자를 위해, 교회를 위해,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려한다면 분열되는 교회들은 일치와 연합을 이끌어 갈 것이다.

근자에 와서 교단들도 연합을 시도하다가 많이 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내가 주님을 위해, 교단 연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려치 않고 우리 교단의 이익을 위해 타교단의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 교단연합일지라도 인간과 교단의 작은 이익 때문에 서로의 유익이 무산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유익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이용한 분이 아니요, 인간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구주이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이익의 의식구조 차원을 넘어서 공동체의 유익의 차원에까지 이르는 성숙한 의식전환이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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