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시인이 되라… ‘힐링’되는 나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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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시인이 되라… ‘힐링’되는 나를 볼 것이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11.12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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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에 만난 시인 김용원
▲ 시인은 최근 ‘언젠가는 엄마에게’라는 새 책을 냈다. 이해인 수녀의 추천사를 받은 이 책은 폐암으로 죽어가는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들을 사진과 글로 남기고 있는데 읽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가을이면 사람들은 시인이 된다. 아무리 무정했던 이들도 가을의 화폭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할 때, 인생을 음미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영원히 푸를 것만 같이 싱싱하게 하늘을 가렸던 녹음이 어느 새 땅바닥에 지천으로 깔렸다. 바스락, 신음하며 밟히는 낙엽을 보면 삶과 죽음의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게 된다.

가을에 만난 김용원 시인은 “가을이 되면 인간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뗀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열매를 맺고 자기 존재를 발현하는데 인생들은 뒷북만 친다. 김 시인은 이런 계절에 시를 읽으라고, 아니 시를 쓰라고 추천한다. 시 한 편에서 그 시인의 일생이 집약된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시를 쓰면서 마음으로 노래하다 보면 스스로 치유가 된다.

김 시인 스스로 실패와 좌절, 회복과 구원을 체험했다. 그 인생의 명암을 시로 승화시켰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다. 상처를 입고 치유된 경험이 있는 이가 또 다른 이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다. 시는 바로 그 치유의 손길이다. 기독교적 용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시어들 속에서도 누구나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를 느낄 수 있다. 그가 쓴 잠언시집 ‘당신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를 펼쳐 읽으면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발견한다.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인생이 달달하지만은 않다는 걸 그는 중학교 때 깨달았다.

부산항 앞 산동네의 추억
부산 수정동 삼복도로. 산중에 도로를 깎아서 만든 그 도로 위 아래로 고달픈 인생이 엮인 산동네가 있었다. 어린 시인은 가난을 못 느끼고 살았었다. 문 열고 나오면 부산항이 한눈에 보이는 집이 좋았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강아지처럼 좋아하며 엄마가 일하는 연탄 배급소를 찾아갔다. 눈도 오고 기분도 좋으니 용돈 얻어 호떡 하나 사먹으려는 심산이었다.

“눈이 내리면 산동네 계단은 참 위험합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지게로 연탄 20장을 지고 난간을 붙잡고 사투를 하고 있어요. 다시 보니 엄마였어요. 저는 눈이 온다고 철없이 좋아 날 뛰는데, 엄마는 목숨 건 사투를 벌이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눈이 싫어졌습니다. 산다는 게 뭔지 어렴풋이 깨달은 거죠.”

바다를 보고 자라면서 계발된 감수성에다가 삶의 애환을 일찍이 깨달은 그는 글쓰기에 아픈 마음을 쏟아 부었다. 교내 백일장에선 항상 1등을 차지했다. 대학을 문학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이 발목을 붙잡았다. 동아대 법과를 들어갔다. 공부하겠다고 민법 책을 잡고 밤을 새웠지만 정작 날이 훤하게 새서 보면 어느새 문학 서적을 붙들고 있는 날들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어떤 교수님이 교수를 시켜주겠다고 행정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라는 겁니다. 부동산학과를 개설하려고 하는데 제게 박사학위를 줘서 그쪽으로 교수로 임용하겠다고요. 그래서 공부를 1년 했는데 석사장교 시험에 안 되서 갑자기 군대를 가게 됐습니다. 갔다 와보니 저랑 같이 공부했던 분들은 다 학위를 받아 자리를 잡았고, 이제 다시 공부하려니 후배들에게 밀리게 되는 겁니다. 다른 교수의 뒷바라지라도 해야 하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때려 쳤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공부를 접고 서울로 올라왔죠.”

▲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신촌교회 앞에서
죽은 것도 살리시는 은혜
가장 아픈 시절이었다. 1년간 공부한 내용과 거기에 걸었던 희망이 다 물거품이 됐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마음은 갈래갈래 부서졌다. 당장 먹고 살 현실도 아득했다. 그런데 그 가장 아픈 과거가 놀라운 미래로 반전하게 된다. 그 기적 같은 일이 교회를 다니면서부터 시작된다.

“서울에 올라와서 아이를 유치원 보내려고 가까운 교회에 갔더니 4월 달이라 지났대요. 그런데 교회 나오면 기회를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교회를 처음 나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술도 많이 먹고 제 멋대로 살았거든요. 그런데 아이 때문에 교회에 나가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들도 일어났습니다.”

우연히 숙명여대에서 도시계획 전공자를 뽑는다는 광고를 봤다. 당시 숙대는 캠퍼스 사정이 좋지 못해서 이 문제를 풀어낼 전공자가 필요했다. 300명이 몰렸는데 그가 뽑혔다. 그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시인의 힘이 무섭다”는 걸 스스로 확인했다. 숙대의 10년 숙원사업을 다 풀어냈다. 도시계획 공부는 문학도 아니고, 법학도 아니고, 오로지 아픔만 주었던 학문이었는데, 이렇게 언젠가 제대로 쓰일 줄 꿈에도 몰랐다.

“그뿐 아닙니다. 교회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숭실대에서 박사과정 1년 수료한 것을 인정해서 박사과정 편입을 받겠다는 광고를 본 겁니다. 이런 경우는 전혀 없거든요. 그래서 거기 가서 1년 공부한 것을 인정받아 2년 더해서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논문 주제도 고민 없이 가족법으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덕분에 지금도 결혼과 이혼에 관한 법적 지식에 신앙적 관점과 시인의 문학적 지식을 더하여 저술 및 강연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걸 믿습니다. 제가 교회 나간 후에 죽었던 학적도 이렇게 살려주신 걸 체험했잖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었던 그 도시계획법을 공부한 일들이 그 후로 이렇게 저렇게 쓰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 시작 중인 시인
CEO들이 시집 찾는 이유
현재 신촌교회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쉬는 월요일이면 시를 쓰러 나간다. 그곳은 두메산골이나 바닷가 어느 메이거나 인간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도서관일 때도 있다. 시는 비효율적이다. 적어도 시인에게는 그렇다.

한편의 시, 그 짧은 몇 줄 시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다. 시인에겐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시를 읽는 독자들은 힐링이 된다. 한번은 이순신 장군이 열 두 척 배를 추스른 고하도라는 섬에 ‘필’이 꽂혀 새벽까지 그곳에 내려갔다. 긴 시간에 택시비, 배 삯 등 많은 공력을 쏟아서 나온 것이 ‘고하도’라는 시 한편.

“그래도 그건 해피한 일이죠. 어떤 건 며칠 몇 달을 고생하고 애써도 결국 버려지는 시들이 있습니다. 지난 번 잠언 시집 ‘당신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도 20년 동안 쓴 시에서 모은 겁니다. 20년 동안 건진 시가 300편인데 그중에서 또 100편만 고른 거죠. 누군가 그 시집을 사서 읽는다면 그분은 20년 동안 축적되고 선별된 제 인생의 지혜를 쉽게 열람하게 되는 것이죠. 돈 9천원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겠습니까?”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많은 탁월한 CEO들이 시집을 즐겨 읽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 소설이나 수필에 비해서 함축적으로 많은 지식과 경험이 담겨있어 오늘같이 바쁜 시대에는 가장 경제적으로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최근에 그는 ‘언젠가는 엄마에게’(도서출판 세움과 비움)라는 새 책을 냈다. 형이 수십년간 모셨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문병하러 부산에 내려간 그는 형네 집에 모셔다 드린다고 어머니를 태우고 경부고속도로를 타버렸다. “만덕동이 왜 이리 머냐?”라고 묻는 어머니를 서울 집으로 ‘납치’한 것이다. 그렇게 함께 한 7개월.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책 한권이 오롯이 남았다. 어머니를 병간호하며 시시각각 함께 한 순간들을 사진과 글로 엮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도 이해인 수녀가 추천사와 추천시를 보내올 정도로 내용이 좋다.

“어느 새 늦가을이네요. 곧 겨울이 오겠죠. 마음이 많이 쓸쓸할 때입니다. 이럴 때는 시를 읽고 시를 쓰세요. 마음이 치유됩니다. 시를 어떻게야 잘 쓰냐고 종종 물으시는데, 어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시는 기교보다 진정성이거든요. 시를 잘 못 쓰는 건 욕심 때문입니다. 가을은 욕심을 비우기에도 좋지 않습니까? 모든 이들이 시를 읽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 세상은 분명히 더 아름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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