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시달리며 ‘투잡’ 선택하는 목회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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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시달리며 ‘투잡’ 선택하는 목회자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4.10.21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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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사회학연구소 ‘목회자 이중직’ 세미나

교인들 시선 피해 야간 업무하며 몸-마음 상해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돼

두 아이가 대학에 다니는 정용훈 목사. 교회 사례로는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야간 택배물류센터. 이른바 ‘투잡(Two Job)’이다. 누가 떠밀지 않았지만 스스로 선택했다.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밤 10시에 일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한다. 급료는 한 달에 120만 원. 부지런히 일했다. “목사라 새벽기도 때문에 조금 일찍 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4시 30분 정도에 먼저 퇴근하도록 양해를 해 주었다. 새벽에 일을 하니 성도들의 눈을 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1년 여 정도를 하다가 그만두었다. 잠자고 쉬어야 할 시간에 일을 하니 몸이 망가졌다. 그러자 올해 또다시 가정의 위기가 닥쳤다. 재정적인 위기였다. 그래서 아내에게 “다시 야간에 일을 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내가 “내가 어떻게든 버티겠다. 목회만 잘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 취업전선으로 내몰리는 목회자들

정 목사는 왜 목회 외에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목회자의 이중직, 불법에서 활성화까지’를 주제로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조성돈 교수)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정 목사는 투잡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담담히 쏟아냈다.

정 목사가 목회를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나가서 전도했다. 지치고 힘들어 쉬고 싶었지만 동네에 불어 닥친 전도 전쟁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3년 전부터는 ‘문화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봉사도 하면서 약간의 수입이 있어서 어느 정도 나아졌다. 하지만 미자립을 넘어서기에는 부족하고, 이렇게 5년을 보냈지만 여전히 성도라고는 가족들이 전부다.

A 목사는 대리기사 일을 하지만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 초창기에는 수입이 조금 괜찮았지만 직장인들까지 대리기사 일에 뛰어들면서 수입은 상대적으로 확 줄어들었다. 서울 문래동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B 목사는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을 땄다. 목회는 주일에만 하지만 수요일에도 조금 늦게 예배에 참석한다. 금요 기도회는 아내가 인도하고 있다. B 목사를 만난 정 목사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행복해 보였다”고 말한다.
C 목사는 선교사로 10여 년을 사역하다가 선교 후원이 끊어지면서 한국에 들어왔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C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한 복지센터에 근무했지만 월급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린 것은 당연한 일. 두 자녀들의 등록금을 대기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가족회의 때 자녀들이 한 말이 가슴에 박혔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빠의 일을 했으니 이제 우리를 위해 일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C 목사는 버스회사에 취직했다. 이후 직장 신우회를 조직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기사들을 전도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목회보다 더 소중한 직장 목회 사역’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투잡이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동네에서 식당 일을 했던 D 목사. 여성으로서 할 일을 찾던 D 목사는 식당 일을 선택했지만, 동네이다 보니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저 여자, 목산데”하며 수군거렸고, 창피함을 이기지 못한 D 목사는 결국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 ‘찾아가서 만나는’ 목회로의 의식 전환

이재학 목사(하늘땅교회)는 창립 예배를 앞둔 지난 2010년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양계농협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달걀 깨는 일을 시작으로 제과회사로 갈 달걀을 분류하는 작업, 포장해서 배송 차량에 탑재하는 일까지 양계농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했다.

직원들과 얼굴을 익히게 되면서 청년들과 친해지게 됐고, 공부와 이성 교제, 인생 문제 등에 대해 상담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는 사이 여기서 만난 젊은이가 개척 교회의 첫 성도가 됐다. 직장에서는 시간이 가면서 목사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고,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동료들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1년이 지나자 사장님의 배려로 오후 3시에 퇴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에 개별적 성경공부가 가능했고, 이후에는 작은 신우회가 만들어져서 정기적인 예배가 가능해졌습니다.”

직장생활, 투잡을 뛰면서 이 목사는 목회를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됐다고 말한다. 오후에 퇴근하고 돌아와 더 힘있게 심방도 하고, 어린이 축구교실도 열 수 있게 됐다. 그러는 사이 교회는 좋게 소문이 나고, 사람들을 만나서 지역을 배우는 일은 더 쉬워졌다.

이중직을 선택한 목회자들의 상황은 이렇듯 절박하고 다양했지만, 목회에 대한 소명의식은 왜곡되거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중직 목회자들을 바라보는 교단과 한국 교회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

정용훈 목사는 “‘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느냐?’, ‘목사의 소명이나 사명’을 언급한다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80%의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가 과연 기도를 소홀히 할까요?”라고 말한다.

이재학 목사도 “목회자의 생계비는 누가 책임져 주어야 하는지.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아르바이트나 새벽에 남모르게 하는 우유나 신문 배달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 대안 없이 명분만 세우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일인가를 고민하면서 이중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하고, “목회 이중직을 ‘목사가 직업을 가지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로만 접근할 이유가 있을까요?”라고 되묻는다.

목회를 교회 안에서만, 성도는 세상에, 목사는 교회 안에라는 구조로 보면 답이 없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주의 제자로 세우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 찾아가야 한다. 어느 누구도 추락한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예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답은 찾아가는 목회. 피상적인 만남으로 한 영혼에게 복음 전하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목회자의 이중직을 목회적 도구로, 선교적 삶이 직장에서 펼쳐지는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목사의 주장이다.

# 교단들 ‘겸직 금지’ 조항 풀어야

이런 이중직 목회자들의 현실에 대해 조성돈 교수(목회사회학연구소장.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현재 대부분의 교단들이 목회자의 생계를 책임져 주지도 않으면서 겸직 금지 조항만 만들어 놓았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 조항을 해제하는 것이 교인들의 눈을 피해 야간에 일하거나 위험한 일에서 목회자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현실적인 일”이라고 강조, 네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목회자 ‘겸직 금지’ 조항 해제 △‘최저 생계비’ 보장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자비량 목회 도입 등이 그것으로, “경제적 겸직이 오히려 목회를 유지하는 길이 되는 현실 앞에서 한국 교회가 목회자의 겸직에 대해 전향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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