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예술하기 딱 좋은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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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예술하기 딱 좋은 나인데”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10.0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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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중반의 손뜨개인형 작가 권기홍 권사
▲ 마이클 잭슨의 노래 ‘위 아 더 월드’를 손뜨개인형들로 표현한 권기홍 작가.

지하철 분당선을 타고 가다가 뜨개질을 하고 있는 연세 좀 드신 여성분을 발견한다면 아마 손뜨개인형 작가 권기홍 권사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을 찬찬히 바라보는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다면 거의 확실하다. 그녀는 지금 손으로는 뜨개질을 하고 눈으로는 사람들을 보며 영감을 얻고 있는 중이다.

손뜨개인형 작가인 권기홍 권사(예수소망교회)에겐 작업실이 따로 없다. 손뜨개질의 장점이 그렇듯, 어디서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여기 ‘작품’이라고 강조한 이유가 있다. 권 작가의 작품들 중에는 특허를 받은 것까지 있다. 전 세계적으로 그녀의 손뜨개인형같이 생긴 건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손뜨개인형이 발달한 유럽이나 일본에도 없다.

다양한 헤어스타일부터 얼굴의 윤곽, 몸매의 볼륨과 의상의 다양한 패션까지, 이처럼 디테일하게 표현된 손뜨개인형은 권 작가의 작품 밖에 없다. “손뜨개인형이 인기가 많은 유럽에서 개인전을 하면 싸이처럼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장 받아
한국에서 그 동안 개최한 4차례의 개인전도 반응이 뜨거웠다. 어떤 일본인이 4백만 원 어치 손뜨개인형을 사간 이래로 지금까지 개인전마다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많은 방송과 미디어에서 취재를 해갔다. 작년에 가진 예술의 전당에서의 개인전은 더욱 의미가 깊었다.

개인전을 허락하기까지 심사가 까다로운 예술의 전당 측에서도 처음엔 “무슨 손뜨개로 작품이 나오나”하고 의심스러운 눈치였지만 막상 권 작가의 작품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전시회 기간에는 사장과 이사장 등이 찾아와 “이런 건 처음 본다”고 감탄을 터뜨렸다. 이어령 교수 등 많은 저명인사들도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손뜨개인형으로 만들어 미국대사관에 기증했더니 오바마 대통령이 제게 감사장을 보냈어요. 백악관 집무실에 그 인형을 두었다고 하네요. 내년에는 유럽에서 개인전을 하려고 지금 준비 중에 있어요. 유럽에서 손뜨개인형을 좋아하지만 저처럼 이렇게 작품화한 건 없거든요. 아이들 놀이감으로 단순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놀라운 사실은 지금부터다. 권 작가가 처음 손뜨개인형을 배우기 시작한 나이가 70세였다는 것. 그전까지는 전혀 예술과 무관한 ‘전업주부’였다는 것. 대학에서 전공한 것도 예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법률(고려대 법대). 게다가 무슨 대단한 학교에서 사사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유럽에서 새로운 싸이 돌풍”을 꿈꾸고 있다.

“바깥양반이 13대 국회의원(이찬구)을 했어요. 원래 통일부 교수였는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비서관을 했지요. 3단계 통일론을 처음 이야기했고요. 그래서 그 동안은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가정에서 아이들 키우느라 인생을 다 보냈어요. 이렇게 칠십이 넘은 나이에 ‘예술가’로 유명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 예수님의 탄생 작품과 그 뒤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형상화한 작품이 보인다.

교회에서 새로운 ‘달란트’ 발견
그 시작은 소박했다. 6년 전에 교회에서 손뜨개인형교실이 열렸다. 다른 권사님들과 함께 처음 거기서 손뜨개인형 만들기를 배워 남녀 한 쌍을 만들었다. 지금의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모양이었지만 만들고 보니 그 성취감과 재미가 남달랐다.

30대 때 자녀들에게 치마와 바지를 만들어 주기 위해 손뜨개를 한 적은 있지만 그때로 끝났다. 옷값이 저렴해지면서 구태여 손뜨개로 옷을 만들어줄 필요가 없어졌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손뜨개질을 나이 칠십에 시작해서 인형을 만들었다. 새로운 창작의욕이 불타올랐다.

“머리카락을 제가 개발했지요. 유럽의 손뜨개인형은 머리카락이 없어요, 모자를 씌우거나 그랬죠. 그런데 머리를 한 코 한 코 다 심은 거예요. 그것도 직모가 있고 다리미로 다려서 실을 고불고불하게 만들어 파머머리도 만들고요. 또 부드러운 느낌의 순모실, 면실, 세련 되 보이고 복슬복슬한 느낌을 주는 아크릴실 등, 이렇게 다양한 재질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헤어스타일이나 옷감을 표현했죠.”

그전까지는 체형도 그저 뚱뚱한 스타일, 한가지였다. 그러나 권 작가는 목이나 허리에서는 코를 줄여 촘촘하게 만들어 가는 몸매를 표현했다. 반대로 가슴 부위는 코를 늘려 풍성한 S라인을 만들어냈다. 얼굴 윤곽도 코와 입술 등은 섬세하게 표현해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끊임없이 더 나은 손뜨개인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을 하죠. 로댕의 작품이 덕수궁 박물관에 전시되었을 때는 네 번이나 가서 연구를 했어요. 또 서점에 가서 옛날 유명한 화첩들을 보면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작품으로 만든 것도 많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늙을 새가” 없다. 항상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뜨개질을 하면서 세상을 관찰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며 작품의 영감을 떠올리다가 목적지를 지나친 적도 종종 있다. 그래도 행복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을 보며 스스로 만족하는 기쁨에다가 또 감탄하며 좋아하는 ‘팬’들을 보는 것도 즐겁다.

“처음엔 한 개 만드는 데 열흘 이상 걸렸어요. 대략 코를 헤아려봤더니 만 오천 코를 떠야 인형 하나가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지금은 안보고 뜨죠. 노안이 와서 계속 보고 있으면 피곤해지니까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면서 뜹니다. 손끝의 감각으로 뜰 정도가 됐지요.”

권 작가의 집 거실에는 그가 낳은 작품들이 모두 살아있는 듯 자기 존재를 뽐내고 있다. 에덴동산부터 예수님의 탄생을 거쳐 탕자의 이야기까지 성경말씀이 손뜨개인형으로 생생하게 표현됐다. 동방박사들의 표정에선 경건함 마저 읽히고 탕자의 뺨에선 흐르는 눈물이 반짝인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서 힌트를 얻은 ‘위 아 더 월드’를 보고 있노라면 벌써 차별과 다툼이 사라진 평화가 전해진다. 인터뷰 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사용한 권 작가는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 권기홍 작가가 처음 손뜨개인형을 배우기 시작한 나이는 70세였다. 그전까지는 예술과 전혀 무관한 ‘전업주부’였다. 대학에서 전공한 것도 예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법률(고려대 법대). 게다가 무슨 대단한 학교에서 사사한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노년의 친구들에게 나이 탓을 하며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뭔가를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요즘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어디서든지 뭔가를 배울 수 있어요. 주민센터도 있고 교회도 있습니다. 저도 거기서 배운 실력으로 제 작품을 직접 컴퓨터에 넣어 메일로 보냅니다. 잘 모르면 삼성 같은 AS기관에 전화해서 원격으로 해달라고 해요. ‘제가 할머니입니다’하면서 부탁하면 잘 가르쳐줍니다.”

권 작가는 인생의 말년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게 “하나님이 제게 주신 큰, 큰, 은혜이고 큰, 큰, 선물”이라고 감격하며 말을 잘 잇지 못한다. 그런 생각만 하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가슴이 미어진다”는 권 작가. 그녀는 남편과 처음 결혼했을 때에 어떤 장로님께 받았던 질문을 아직도 기억한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려고 했더니 시아버님이 학습은 받고 와야 결혼을 허락해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몇 번 갔던 안동의 중앙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목사님께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어느날 교회로 오라가 해서 갔어요. 갔더니 목사님과 장로님 두 분이 기다리고 계시는 거예요. 한 장로님이 제게 묻더라고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습니까?’ 그런데 거짓말을 할 순 없어서, 그랬죠. 결혼하고 교회를 열심히 나가서 그때 가서 답을 해드리면 안될까요?”

그러자 그 장로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습 받은 증서를 봉투에 넣어 가지고 돌아와 결혼한 때가 27세 되던 해 2월. 그 후로 거의 50년 세월 동안 권 작가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봉사도 많이 하는 권사님이 됐다. 그뿐 아니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감사한 새로운 예술가의 인생을 선물로 받았다.

“지금 그 장로님께 그때 못한 대답을 하라면 뭐라고 하시겠느냐고요? 당연히, 하나님은 살아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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