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뜻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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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뜻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 승인 2003.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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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절대 계시적인 기도문이요, 일점일획이라도 오류가 없는 영감된 기도문이요, 또한 교회가 전통적으로 시행해온 예식적 기도문이기도 하다.

교회는 주기도문을 암송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기도의 모본을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성도들과 함께 서로가 한 형제됨을 확인하고 이상적인 신앙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몇 백년 동안 수정없이 사용된 번역
이와 같이 주기도문만이 지닌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인식한 교회는 많은 번역판들이 출간되었어도 주기도문의 본문만은 오직 한가지 내용만을 택하여 똑같은 입술로 똑같은 소리로 암송해오고 있다.

예를 들면 영어권 주기도문은 지금까지 1백50여 종이 넘는 번역판이 나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4백 년 전에 번역된 영어 흠정역(KJV)의 본문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어권인 경우에도 역시 루터 번역(Luther Bibel)의 주기도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번역판들이 성경의 본문 내용을 대폭적으로 손질하면서도 주기도문의 본문만은 그대로 보존시키려고 노력해 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주기도문의 내용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틀린 부분은 시급히 수정해야만 하겠지만 별 문제가 없는 부분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지금의 주기도문은 조금만 수정하면 별문제 없이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
이번 재번역위원회에서는 세번째 기원의 내용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로 번역하고 있다. ‘아버지의’는 ‘당신의’ 대신에 삽입한 것이고,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는 ‘하늘에서와 같이’, ‘이루어지이다’는 ‘이루어지게 하소서’로 바꾸었다.

현행 주기도문에서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는 원문에는 없고 다만 문맥상 삽입된 것이다.

이번 재번역위원회는 원문에 있는 대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호스 엔 우라노 카이 에피 게스’)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원문 동사는 하늘과 땅에 똑같이 연관되고 있다. 즉, ‘당신(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축어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하늘과 땅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된다.

신학적으로나 전후 문맥에 비추어볼 때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는 이미(already) 이루어졌지만 땅에서는 아직(not yet)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어져야만 한다.

이 부분에서 영어 흠정역(KJV)은 원문에는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보충해야만 된다는 표식으로 이태릭체를 사용하고 있다(‘as it is in heaven’). 여기에 역사적 현재형(is)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현재와 미래에 걸쳐 계속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는 원문과 어법에서 조금 벗어난 해석이다. 이것은 마땅히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로 바꾸어져야만 한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온전히 성취되었고 그의 통치와 의도 모두 관철되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아직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야만 한다.

‘이루어지게 하소서’와 ‘이루어지이다’
‘이루어지게 하소서’가 청원을 나타낸다면 ‘이루어지이다’는 단순한 기원을 나타낸다. 이에 대하여 새번역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옵소서’라고 기원의 뜻으로, 그리고 표준새번역은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라고 청원의 뜻으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이번의 재번역위원회는 개역이나 새번역(기원)보다는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청원)의 입장을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루어지이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게네데토’는 ‘기노마이’(~되다, deponent동사)의 3인칭 단수 과거 명령법 수동태로서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뜻이) 이루어져라’가 된다. 이때 문법적 주어인 ‘뜻’(델레마)은 의인화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기원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물론 뜻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미상의 주어로 보고 수동문을 능동문으로 바꾸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청원의 뜻으로 번역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세번째 기원의 강조점은 누가 뜻을 이루느냐는 행위자(Agent)보다는 그가 이루시는 대상(Object)으로서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 것인가에 놓여져 있다.

그러므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을 주어로 놓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청원에 관계없이 그가 뜻하시는 바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이루어지이다’라는 표현이 우리 말에 생소하다는 느낌이 다소 있기는 하지만 교회 안에서 축도 형식을 통해 이미 그 의미가 익숙하게 이해되어져 있으므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세번째 기원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오늘날’인가? ‘오늘’인가?
재번역위원회에서는 네번째 기원에 나오는 내용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로 번역하고 있다.

즉, 현행 주기도문의 ‘오늘날’을 ‘오늘’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오늘날’이라는 표현이 현재의 우리말에서는 ‘요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 사전에 보면 ‘오늘’은 ‘오늘날’의 준말로 되어 있다(표준국어대사전, 이숭녕, p.878, 국어사전, 김민수, 홍웅선, p.1052). 말하자면 ‘오늘’이나 ‘오늘날’은 동일한 의미라는 것이다. 의미가 동일하다면 굳이 익숙해져 있는 단어까지 바꾸려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용할 양식’의 본래적 의미
네번째 기원에서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부분은 ‘일용할 양식’(‘톤 알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이다. 여기에서 ‘양식’(‘아르토스’)은 원래 ‘빵’, ‘떡’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마태복음 4장 4절에서는 똑같은 단어가 ‘떡덩이’로 번역되고 있다.

그런데 빵이 주식이 아닌 우리들로서는 번역상의 난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즉, 원천 언어(source language)를 수용언어(Receptor language)로 번역함에 있어서 지켜져야만 하는 고정번역 원칙(Stereotyped translation)을 어떻게 수용해야만 하느냐는 문제이다.

빵이나 떡을 간식 정도로 삼는 아시아권에서는 ‘아르토스’가 ‘빵’, ‘떡’, ‘식물’, ‘양식’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 중에서 원문에 가장 적합한 우리 말은 ‘양식’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일용할’에 해당되는 원문 ‘에피우시오스’를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에 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오직 주기도문에만 사용되고 있으며, 일반 헬라어 문헌에도 물건 구매의 리스트(list)로 볼 수 있는 파피루스 단편에 복수형(‘타 에피우시아’, ‘그 날에 필요한 것들’)으로 단 한번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에피우시오스’는 ‘에피’라는 접두어와 ‘우시오스’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우시오스’의 어원적 의미에 따라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

즉, ‘존재에 필요한’,‘오늘의’, ‘내일의’,‘오는 날의’,‘미래의’,‘미래를 위한’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미래에 대한 것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는 말씀과 상치되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에피우시오스’는 ‘오늘 생존에 필요한’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뜻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 병행구 ‘날마다’(눅 11:3)와 연관시키면 ‘오늘 살아가는데 필요한’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내일이나 종말론적인 미래가 아닌 ‘오늘’, 분량으로 따진다면 만나처럼 매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식을 주십시요라고 기도하라는 것이 된다.

맺는 말
현행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일용할’(매일 쓸, 날마다 사용할, everyday use)과 ‘양식’은 서로 어울리는 구문이 아니다. 굳이 이 표현을 쓰려면 ‘날마다 먹을 수 있는 양식’ 등으로 번역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에피우시오스’는 ‘매일 사용하는’ 보다는 ‘매일 필요로 하는’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함의되어 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번역서들을 보아도 몇몇 일본어 번역들을 제외하고는 ‘일용할’이라고 번역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영어 번역서들은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빵’(TCNT, Alf.), ‘하루를 위한 우리들의 빵’(Wey.), ‘날마다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빵’(Lam)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독일어 번역도 대부분 ‘매일의 떡’(Luther, Elberf.) 등, ‘그날을 위한’, ‘매일 필요로 하는’이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다 아시고 자상히 배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그날 그날 필요로 하는 것만을 구하면 된다(출 16:1~21). 결론적으로 네번째 기원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양식을 주시옵고’로 번역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고영민교수·천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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