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사명이 되니 꿈도 더 ‘업그레이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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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사명이 되니 꿈도 더 ‘업그레이드’ 되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9.24 0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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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기쁨 주는 ‘펠루’ 최윤진 대표
‘스타트 업’(start-up) 기업이 있다.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창업기업인데, 대규모 자금이 아직 조달되기 전이란 면에서 벤처기업과는 좀 다르다. 최윤진 씨가 대표로 있는 ‘펠루’라는 회사가 바로 ‘스타트업’이다. 펠루는 유용한 콘텐츠를 좋은 음성으로 들려주는 서비스인 ‘데일리’(day.ly)를 운영한다.

여러 명의 아나운서들이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드는 상쾌한 목소리로 각종 유용한 정보들을 읽어준다. 대기업의 회장들이 비서들에게 아침에 브리핑을 받는 기분이라고 할까. 꼭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은 기본이고, 마치 ‘회장님’이나 CEO라도 된 것 같은 자신감은 덤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정보의 채널들을 선택하면 아침마다 알람처럼, 침대에서, 부엌에서, 전철 안에서, 그밖에 어디서든지 새로운 정보들을 제공 받을 수 있다.

2~3명의 지상파 방송 아나운서를 뽑는데 3천명이 오는 경쟁률 속에서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기란 사실상 본인의 능력과는 무관해진 면이 있다. 아나운서가 ‘지위’가 되어버린 이런 세태 속에서 소통이라는 본질적인 ‘사명’을 찾아내 많은 아나운서 지원자들에게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최윤진 대표. 그 시작은 좌절된 꿈의 상처였다. 그녀의 지나온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상처가 사명이 된다’는 경구가 보인다.

3년 내내 매일 입이 갈라지도록
어렸을 때부터 “말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자란 최 대표, 자연스럽게 아나운서를 꿈꿨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해 대학 신방과는 왜 그렇게 경쟁률이 높았는지, 중국어과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나운서 준비하려고 들어간 학원에선 말하는 콘텐츠는 좋지만 발음이 안 좋다는 진단을 받았다.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처음 듣고 2주 동안 입을 닫아버렸다.

최 대표의 ‘독한’ 면은 이때부터 드러난다. 2주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그녀, 그 후로 3년 동안 매일 입에 볼펜을 물고 발음 연습을 했다. 나중엔 입이 찢어질 정도였다. 매일 3시간씩 발음 발성 연습을 안 하면 그날은 아무 것도 못했다. 그녀의 성격이 그랬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그런 제 경험을 또 유용하게 쓰시더라고요. 그렇게 발음을 고치고 나니 원래 잘했던 친구들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까지 잘하게 됐어요. 무엇보다도 주변에 안 좋은 발음 때문에 고민하는 아나운서들을 도울 수도 있었어요. 제가 그 노하우를 터득했잖아요.”

어여쁜, 그래서 야리야리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무엇이든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그녀의 ‘독종 스타일’은 중국어 학습에도 나타났다. 중국에 1년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에도 “벽을 보고 이야기 하면 했지 한국인 친구는 만나지 않았을” 정도로 중국어에 몰두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학교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중국인들과 안면을 텄다. ‘니 하오 마’ 밖에 못하며 중국에 도착했던 그녀, 귀국해서 중국어를 가르칠 정도로 늘었다.

이 같은 태도로 아나운서 역시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도전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어려움 같았다. 수없이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고배를 들이켰다. 어쩌면, 그렇게 많이 떨어지면서도 또 그렇게 많이 다시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그녀다움’이었을까. 그 과정에서 그녀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 회사 동료들, 프리랜서 아나운서과 함께.

뭐든 열심히 하면 ‘다음’이 있다
“시험을 보기 전까지는 정말 나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계속 꺾이면서 주변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처럼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해 내가 가진 능력이 있다면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 제가 하는 ‘데일리’ 서비스, 여러 아나운서들이 좋은 콘텐츠를 들려주는 이 일도 그런 소명의식의 결과일 수도 있지요. 아나운서의 꿈이 있는 많은 분들이 우리 서비스를 통해 아나운서의 일을 하고 있어요. 또 우리 서비스에는 누구나 아나운서처럼 자기 목소리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드리고 있고요.”

아나운서 시험에 수없이 떨어졌다고 두 손을 들었다면 그녀답지 않은 일. 중국 하얼빈에 있는 CCTV 한국어채널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들어간 그녀는 거기서 아나운서는 물론 PD, 작가의 역할까지 도맡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그곳에서 생고생하며 쌓았던 다양한 경험들이 지금 유망한 창업의 씨앗이 됐다. 그 ‘역사’의 시작은 작은 카톡방에서 일어났다. 처음엔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20여 명 정도 있는 카톡방에서 서로 뭔가 올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보고는 아나운서니까 날씨를 올려달라고 했어요. 저는 또 늘 그랬던 것처럼, 그냥 날씨만 올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배경음악도 넣고 책 읽다 좋은 구절도 넣고, 그래서 마치 짧은 방송 프로그램처럼 제작해서 올린 거죠. 이름도 최윤진의 ‘날씨아나’라고 지었어요. 그런데 그게 이리 저리 전해져서 엄청 인기를 끌었어요. 어떤 간호사들은 20여명이 매일 그걸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서도 감사하다는 연락이 오고요.”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닌, 어쩌면 사소한 일이었지만, 늘 그랬듯이 정성을 다해 만든 그 ‘날씨아나’가 요즘말로 대박을 냈다. 스마트폰의 알람 어플로 만들자 매일 2천여 명이 다운을 받고 400여명이 1년 내내 들었다. 정부지원 5천만 원을 받아 사업이 시작됐다. 6명의 직원과 40여명의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새롭고 유용한 콘텐츠들을 매일 계발해 올리고 있다. 아직 베타버전이라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닌데, 벌써 3천명이 넘게 구독해서 듣고 있다.

▲ 투자유치회에서 펠루가 제공하는 서비스 데일리를 소개하고 있는 최 대표.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회사가 꿈
“회사 이름 ‘펠루’(PELLUE)는 ‘사람들(people)’과 ‘가치(value)’의 합성어로 ‘사람들의 가치를 높이는 회사가 되겠다’는 의미예요.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누구 하나 완벽한 사람은 없었지만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채워지고 나눠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처럼 저희 회사를 통해 여기서 일하는 분들과 또 저희 프로그램을 듣는 분들이 다 가치가 높아지게 되는 게 저의 꿈이에요.”

최 대표는 아나운서가 ‘계급’이 돼버린 이 시대에, 아나운서의 본질인 소통을 회복시켜주고 있다. 본질만이 아니다. 그 본질을 자기 목소리로 찾을 수 있도록, 꼭 방송국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소통하는 아나운서’의 꿈을 누구나 이룰 수 있도록 그 지경을 점점 더 넓혀가고 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섬뜩할 정도로 깜짝깜짝 놀란다”는 그녀. 아나운서로서 발음이 부족했지만 그것을 교정하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의 작은 방송국에서 일당백의 역할을 하며 힘들었지만 그 노하우가 현재 창업의 밑거름이 되고 있고, 수백 번 실패한 경험이 쓰라렸지만 그래서 오히려 공감의 능력이 생기며 실패해본 이들과 함께 씨줄날줄 새로운 꿈을 엮어가고 있다.

이렇게,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엿보면 험한 고비마다 하나님의 발자국이 나란히 있었던 걸 발견하게 된다. 무엇이든지 당장 보상이 없더라도 열심을 다하면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지더라는 것. 그래서 그녀는 늘 당차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 그 다음 단계로 이어지더라고. 나중에 반드시 써먹게 된다고.

한때는 “나는 아벨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인이었나? 하나님이 내 것을 안 받으시나?”하고 고민할 정도로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출석하는 ‘어메이징그레이스교회’를 통해 상처가 소명이 되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스스로도 그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고 다음 단계가 흥미로워 매일 사무실에서 ‘라꾸라꾸’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 일해도 행복하단다.

앞으로 또 새로운 어려움이 닥쳐올 수 있겠지만, 두렵지 않다. 그녀의 애창곡 ‘나는 믿네’의 노래 가사처럼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 앞에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주가 나로 바다 위 걷게 하리. 나는 믿네 주의 능력으로 담대히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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