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선 재앙도 축복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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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선 재앙도 축복이더라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9.1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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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풍성한 인생의 추수를 경험한 석 화백이 가을을 맞아 37회 개인전 ‘농자지천하지대본’을 20일부터 10월 2일까지 일산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9층 갤러리 H에서 갖는다.

서예크로키 의수화가 석창우 안수집사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일이다. 1984년 10월 29일 전기기사인 석순기는 구로공단 한 기업 전기실에서 2만9천볼트 고압선에 감전돼 정신을 잃었다. 일주일만에 의식을 회복하니 두 팔과 오른쪽 발가락 두 개가 사라져 있었다. 그 후로 오늘까지 30년. ‘석순기’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듯 ‘석창우’가 되었고, 그의 이름 앞에는 ‘의수화가’란 당당한 타이틀이 붙었다.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는 있었지만 의수로 붓을 잡고 그리는 ‘의수화가’는 그가 처음이다. 게다가 동양화인 서예와 서양화인 크로키를 접목한 ‘서예크로키’ 역시 그가 창안한 화풍이다. 지금까지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외국과 한국에서 개인전을 36회 했고 그룹전을 240여회 했으며 시연을 전 세계 곳곳에서 140회를 했다. 그동안 역경을 이긴 아이콘으로 수많은 언론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만약에, 그날 전기시설 점검을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그 차단기 한 선이 고장 나서 감전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 재앙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 평범한 전기기사로, 아니 어쩌면 벌써 퇴직 해서 이름 없는 필부로 노년의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그 고통스러운 사고 덕분에 전혀 꿈도 못 꿨던 놀라운 인생을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을 “하나님의 프로그램”이라고 비유한다.

엄지발가락 남은 것도 감사
“많은 기자들이 내게 묻습니다. 정말 사고를 당하고 절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런데 사고 당했을 때에는 목숨 건지는 것만 해도 감사했습니다. 27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고 그 후로도 1년 반 동안 12번의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숨을 건졌죠. 게다가 보통 그 정도 전압이면 사지를 다 잃습니다. 그런데 두 발은 남겨주셨잖아요.”

게다가 다른 발가락이 잘리고 엄지발가락이 남은 것도 감사하다. 엄지가 체중의 60%를 감당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걷는 건 문제가 없다고. 오히려 발가락 두 개가 없으니, 안중근 의사를 본 따서 작품에 발로 찍은 낙관이, 요즘 말로 ‘간지가 난다’. 그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감사한 까닭을 나열했지만, 사실 처음엔 모든 게 난관이었다.

“집사람이 저 대신에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저를 집에 혼자 두고 나간 첫날 사투를 벌였습니다. 목이 말라서 음료수병을 따려고 했는데 딸 수가 없는 거예요. 2시간 동안 집안을 뱅뱅 돌면서 땀이 범벅되어 노력을 하다가 어느 코너에서 병이 딱 고정되면서 갈고리로 땄어요. 이미 미지근해진 그 음료수가 얼마나 시원한지 그 맛이 지금도 기억나요.”

아버지의 상태를 파악 못한 4살짜리 아들의 ‘그림 그려 달라’는 요청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의수로 펜을 잡고 하루 종일 낑낑대며 아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두 팔이 멀쩡했을 때에도 그림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그였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주변의 칭찬에 비로소 의수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발견했다.
당연하게도 처음엔 쉽지 않았다. 의수로 잡은 붓은 원하는 대로 나가지 않거나 떨어지기 일쑤였다. 입이나 발은 감각이 있어서 수월하지만 의수는 붓의 감각을 느낄 수 없어 어려웠다. 그러나 수없는 반복, 또 반복 끝에 의수에 감각이 생겼다. 붓과 의수와 몸에 일체감이 계발된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대 역시 그의 형편에 맞지 않아 바닥에 놓고 허리를 굽혀 그리다 보니 몸살이 났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계속 했더니 코피가 났다. 아내는 “기껏 중환자실에서 살려놨더니 또 죽으려고 한다”고 성화였다. 그래도 계속 그렸더니, 어느 날부터 몸살도 코피도 사라졌다.

그런 노력 끝에 3년만에 전라북도 서예대전에 입상한 그는 그후 숱한 서예대전에서 좋은 결과를 거뒀다. 사람의 몸을 빠른 시간에 그리며 새로운 형상으로 꿈틀거리게 만드는 누드 크로키 강의를 우연히 들은 이후 그는 서예를 크로키와 접목시켰다. 이것이 의수화가로서 그만이 그릴 수 있는 독특한 화풍이 됐다.

▲ 많은 관객들 앞에서 시연 중인 석화백

전도하려고 성경구절 애용
지난 소치올림픽 폐막식 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다. 그날 맡은 퍼포먼스의 시간 할당은 2분 40초. 그러나 보통 15분이 소요 되는 8m짜리 큰 화폭. 아무리 연습해도 두 배 이상 걸렸다. 그 전 주일에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다. 동행에 관한 주제였다. 하나님과 동행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기도했다. ‘하나님, 반은 제가 할테니, 반만 도와주세요.’

힘이 빠질까봐 리허설도 없이 시작한 그날 퍼포먼스, 기가 막히게 2분 40초만에 끝났다. 보통 그런 시연을 하면 일주일동안 앓아눕는데 이번엔 아프지도 않았다. 나중에 붓이 출렁거리는 걸 녹화를 통해 보고 탄성이 나왔다.

“그렇게 큰 붓은 탄력이 없어서 그렇게 출렁거리지 않거든요. 그런데 붓이 출렁거리며 춤추듯이 나가는 걸 보고, 아하,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몸을 빌려 다 하셨구나, 깨달은 거죠.”

재건동산교회(담임목사: 박철효) 안수집사인 석 화백은 매주일 목사님의 설교를 의수로 스마트폰에 메모해 두면서 마음속에도 꾹꾹 눌러 담아놓는다. 그 말씀이 삶과 작품에 힘이 될 때가 많다. 텔레비전 방송이나 그 밖의 모든 퍼포먼스에서 그림을 그릴 때에 의도적으로 성경구절을 자주 쓴다.

“제 나름의 전도방법이죠. 사람들이 보라고요. 그런데 보통 텔레비전에 나가 그걸 하면 성경말씀이나 신앙 이야기는 잘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번에 ‘스타킹’에 나갔을 때에는 아예 자르지 못하게 중요한 인터뷰 사이에 성경 이야기를 내비쳤어요. 그렇게 계속 잘려도 계속 써놓고 밀어붙였더니 그래도 요즘엔 성경구절이 자주 소개되더라고요”

의수 하나도 예정하신 주님
“제가 제 삶이 하나님의 프로그램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한 건 사고 당한 때를 돌아보니 그때는 몸도 마음도 빈털터리였거든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기복이 없이 계속 상승만 해왔습니다. 좌절도 없이 좋아하는 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집사람이 경제적인 건 자기가 하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복 주셔서 정말 경제적인 부분도 해결되었고요.”

사고를 통해 도리어 재능을 발견하고 예술의 기쁨을 알게 된 것,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이렇게 그가 ‘하나님의 프로그램’이라고 비유하는 그 기묘한 섭리와 예정은 참으로 섬세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고 당한 이후 자기도 모르게 쓰게 된 의수가 붓을 잡을 수 있는 종류였다는 것이 놀랍다는 것. 만약 붓을 잡을 수 없는 갈고리 종류였더라면 그림을 그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이다.

그는 아직도 못하는 게 훨씬 많다. 작은 일 처리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래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의수를 보고 화들짝 놀라 다 나가버리는 바람에 체온감응형 버튼을 누를 수 없어 갇혀있었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부터 그렇다. 사고 나기 전까지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던 그는 사고 후에 오히려 긍정의 사람이 됐다. 이제 유명인이 된 그를 취재하러 오는 이들마다 절망의 흔적조차 없는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비결을 신자들은 알 것 같다.

‘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 있으니 신경 곧추세울 일이 없다. 그 사랑을 깨닫고 보니 마음도 활짝 열렸다. 그러고 나서 세상을 보니, 모든 사람들의 손이 다 그의 손이라네! 식사 때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할 기회를(?) 준다는 석 화백. 취재가 끝나고 그와 갈비탕을 함께 먹은 기자도 그의 오른편에 앉아 갈비와 밥과 깍두기와 김치를 그의 입 앞에 대령했다. 덕분에 그날 착한 일 했다고 오랜만에 일기장도 찾았다. 한 가지 더, 그날 갈비탕 정말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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