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정신 없이 ‘법리적 모순’에 빠진 교회협 총무 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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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정신 없이 ‘법리적 모순’에 빠진 교회협 총무 인선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4.09.17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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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협 총무 인선 ‘유권해석’ 초유의 사태

 

지난 12일 첫 모임을 가진 교회협 인선위원회.
교회 및 사회법 상 정년해석 ‘만 나이에 도달하는 시점’
무리한 법해석으로 강행할시 사회적 비난 피하기 어려울 듯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인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각 교단 대표 2인씩으로 구성된 총무 인선위원회가 지난 12일 첫 모임을 열고 위원장에 현 교회협 회장인 구세군 박종덕 사령관, 서기에 대한성공회 유시경 신부를 선임했다. 이와 함께 오는 30일까지 후보자 모집을 마친 후 10월에 후보자 검증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그러나 인선위원회의 이 같은 로드맵에도 불구하고 교회협 인선은 과거와 달리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총무 입후보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헌장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다.

인선위원회가 헌장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기로 한 것은 현 총무인 김영주 목사를 염두에 둔 결정이다.

첫 인선위 회의에서 감리교 대표들은 “현직 총무가 재임을 하겠다고 하면 다른 회원 교단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냐”고 말문을 연 것이 화근이었다. 이 발언 후 예장 통합과 기장 등 일부 회원교단들이 현 총무의 재임이 연령상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이의를 제기했고, 정확한 법리적 판단을 위해 헌장위원회에 해석을 의뢰한 것이다.

# 유권해석이 필요한 이유

감리교는 현 총무에게 재임 자격이 있다고 하고, 일부 회원교단에서는 없다고 한다. 이유는 김영주 총무의 생일에서 찾을 수 있다. 김영주 총무는 1952년 12월 생으로 현재 만 61세다. 숫자상으로 볼 때 재임 후 4년 임기를 채우는 시점이 2018년 11월. 만 65세를 넘기지 않고 임기가 끝난다. 이렇게 볼 경우 감리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인선’ 즉, 입후보자 모집과 선거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회협 헌장이 명시한 총무의 정년은 만 65세. 통상 만으로 명시된 임기는 만 65세 생일을 뜻한다. 생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김영주 총무의 만 65세 정년은 2017년 12월이다. 임기에 11개월이 모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김영주 총무의 재임이 과연 적법한 자격을 갖느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 만 65세 정년 해석 어떻게

만 나이에 대한 해석은 교계에서도 꽤나 골치 아픈 문제였다.

예장 합동의 경우 만 70세로 정해진 목사 은퇴 시점에 대한 총회의 유권해석 결과 만 70세 생일이 끝나는 날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사실상 72세 생일 직전까지다. 총회가 내린 법해석으로 합동 목사들은 은퇴 적용에 있어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아예 총신대 재단이사회는 “만 70세에 도달하면”이라는 문항을 삽입해 놓으며, 혼란에 대비했다.

지금 교회협의 논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당연히 만 65세 정년을 “만 65세에 도달하는”것으로 판단하던 회원 교단들이 혼란에 빠진 것도 “임기가 끝날 때까지 만 65세에 머물러 있으니 큰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일부의 주장 때문이다. 우리 나이로는 67세지만 만으로 65세는 넘지 않는다는 것. 반드시 “내가 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대목이다.

합동 총회가 목사 정년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은 노회 분쟁으로 인한 재산권 싸움 때문이었다. 만 70세 은퇴가 ‘만 70세 생일에 도달하는’ 시점이라면 이미 은퇴한 목사가 되어서 재산을 다 빼앗길 상황에 처하자, 해당 노회에서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이다. 이 유권해석 이전에 합동 총회는 당연히 ‘만 70세에 도달하는 시점’을 정년으로 적용해왔다.

그렇다면 교회협 회원 교단들은 정년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기장과 감리교는 목사의 임기를 ‘만 나이에 해당하는 당해연도 첫 노회, 혹은 첫 연회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기장의 경우, 장로 임기는 ‘만 나이에 도달한 당해연도 말까지’다. 직원의 경우는 기장의 경우 만 65세 생일에 직무를 마치게 되어 있다. 예장 통합도 ‘만 나이에 해당하는 당해연도 말까지’로 정해놓았다. 구세군은 ‘만 나이 생일이 도달한 그 달까지’로 규정했다. 예를 들어 3월 2일이 생일이라면 3월 31일에 퇴임한다. 대부분의 교단이 만 나이가 끝나는 시점까지 임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일반 사회에서는 어떻게 적용될까.

국가공무원의 경우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만 생일이 도달하는 분기에 퇴직한다. 정년에 이른 날이 1월에서 6월 사이면 6월 30일에 퇴직한다. 만 나이를 채우는 정년은 없다. 그나마 교회 안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목사들의 정년만 유권해석을 빌미로 고무줄처럼 늘어날 뿐, 법이 정한 정년은 ‘만 나이에 도달하는 시점’으로 통상 적용되고 있다.

법원 판례도 있다. 지난 2001년 서울행정법원은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서 정년에 관하여 특정 연령만 규정해놓고 정년에 따른 퇴직 시기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 만(滿) 나이로 해당 연령에 도달하는 때에 정년이 도래하는 것으로 본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정년을 기산하는 시점(정년 퇴직일)은 당사자 간 정함이 없으면 그 정년이 도달하는 날을 말한다. 정년이 53세라 함은 만 53세에 도달하는 날을 말하는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즉, 사회법을 기준으로 해도 교회협 총무의 정년은 만 65세가 ‘도달하는’ 시점이다.

교회협 총무라면 임기에 대한 해석은 더 쉽다. 일반 목회자 정년은 교단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교단이나 단체의 ‘직원’은 정년 규정이 일반 사회 규정과 유사하다.

교회협 총무는 직원이다. 교회협 처무규정 제2장 기구와 직제 제8조 직원의 임기에는 총무의 임기와 정년이 명시되어 있다. 총무의 임기는 4년이고, 정년은 만 65세다. 총무가 직원 규칙에 해당되는 이상 정년이 만 나이 시작점이냐 끝점이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한마디로 헌장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할 가치조차 없는 사안이다.

# 이미 정치싸움으로 진입했나?

이미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만 나이’와 정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법리’를 이용해 정치적 인선을 추진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교회협 대의원인 감리교 인사는 “총무 인선에 명확한 규정이 없다. 현 총무가 재임에 도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구세군 관계자 역시 “정년은 명시되어 있지만 출마를 제한하는 내용은 헌장에서 찾을 수 없다. 임기가 모자라면 정년까지만 하고 나오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김영주 총무가 만일 재임을 할 경우, 2017년 11월까지만 하고 나오면 되지 않겠냐는 뜻이다.

비슷한 사례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감리교 인사는 “백도웅 총무도 임기보다 더 했다. 정확한 임기라는 것이 없다. 결국 합의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교회협 유관 기관인 기독교서회도 사장 임기를 1년 씩 연장한 바 있다. 현 총무도 이러한 관례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합리적이라기보다 상당히 정치적이다. 이미 교회협 총무 인선은 에큐메니칼에서 중요시하는 ‘절차와 합의’를 기다리지 못한 채 일부 교단에서 정치와 법리적 가능성을 여러 방향으로 열어놓고 선제공격을 시작한 격이다.

먼저 백도웅 총무 임기 주장에 대해 감리교는 잘못 인지하고 있었다. 백 총무 전임인 김동완 총무는 교회협 회기가 아닌 4월에 퇴임을 했다. 이유는 그 전 총무였던 권호경 목사가 임기를 마치지 않은 채 CBS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김동완 총무는 중임을 했고, 2002년 4월 백도웅 총무에게 바통을 넘겼다. 총무 취임 당시 만 59세였던 백 총무는 11월 회기로 총무 임기가 다시 맞춰짐에따라 7개월 더 총무직을 수행했다. 백 총무는 4년 7개월 총무직을 수행하고 정년에 걸려 연임에 도전하지 못한 채 2006년 권오성 총무에게 자리를 넘겼다.

서회 사장의 연임 사례나 정년 전에 퇴임하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김영주 총무가 상당한 업적을 인정받아 아무 경쟁 후보 없이 만장일치로 인선위원회 지지를 받은 후 실행위원회들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연임이 결정된다면 임기나 정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선위원회 규정에 맞춰 다시 출마할 경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출마를 위해서는 적합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정년을 맞출 수 없는 사람은 아예 후보 자격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협 헌장이 선거에 있어 별다른 세부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교회협 유관기관인 CBS나 기독교서회 등에서 정년까지 임기를 채울 수 없는 사람은 입후보 등록 자체를 받지 않는다. 교단 사무총장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정년을 채울 수 없는 이는 자격을 얻지 못한다. 통상관례인 것이다.

교회협 헌장위원회가 만일 이를 간과한 채 유권해석을 임의로 내린다면 교회협마저 ‘법적 소송’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교회협은 90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에큐메니칼 기구다. ‘절차와 합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열쇠는 ‘인선위원회’가 쥐고 있다. 어떤 합의를 이뤄내느냐는 전적으로 9개 교단 대표로 구성된 인선위원회 몫이다. 그러나 헌장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함으로써 이미 인선위원회는 첫 번째 합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총무 인선의 키를 헌장위원회로 넘겼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 형편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정년문제를 비판해야할 교회협이 자신들에게만큼은 관대하게 적용한다면 이에 대한 교회와 사회적 비난을 어떻게 감수할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 관례와 합의를 망각한 채 단순히 법리적으로 총무 인선문제에 접근할 경우, 교회협 역시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사법으로 이어지는 ‘진흙탕 싸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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