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국수가 맛있는 까닭은 ‘사랑의 고명’ 때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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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국수가 맛있는 까닭은 ‘사랑의 고명’ 때문이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8.2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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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업을 아내에게 맡기고 국수로 사랑을 전하는 김혁 대표는 더 많은 교회가 동참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웃 섬기는 ‘아름다운 국수가게’ 김혁 대표

안 먹고 갈 수도 있었다. 취재도 끝났고 날씨도 덥고, 해서 발걸음을 돌리려는 기자를 붙들고 권한 오이냉국수 한 그릇. 그냥 갔으면 영영 후회할 뻔했다. 망설이던 손으로 후루룩 삼켰다. 쫄깃한 면발에 감칠맛 도는 시원한 국물이 막바지 더위를 온데간데없이 날려버린다. 게다가 오늘로써 여름메뉴인 오이냉국수는 끝이란다. 그 소리 들으니 더 맛있네.

화려한 고명도 없이 그저 면발과 오이와 국물뿐인데,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이유가 있다. 연세가 많아 불편한 몸으로도 기쁘게 손맛을 보여주는 자원봉사자들, 즐거운 자리가 되도록 여흥을 돋궈주는 가수들, 자리를 마련해준 행사 관계자들, 밀가루와 국수를 지원해주는 회사 등 수많은 이들의 사랑이 이 국수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있다. 이 모든 이들의 사랑을 엮어낸 이가 바로 ‘아름다운 국수가게’ 김혁 대표.

국수 나눈 지 벌써 12년째

“시작은 사실 단순했지요. 제가 곰표밀가루 대리점을 하는데 우연히 거래처 만두피 공장에 갔다가 만두피로 동그랗게 찍고 남은 잔피를 버리는 걸 봤어요. 그게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그걸로 칼국수를 만들어 저소득층 분들에게 나눠주다 보니 벌써 12년이 됐네요. 2~3년 전부터는 경제가 어려워져서 만두피 공장도 잔피를 재반죽해서 쓰거든요. 지금은 대한제분 본사에서 밀가루와 국수를 무상으로 후원해주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그 밀가루로 칼국수를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또 직접 끓여먹기 힘든 이들을 위해 거의 매일 곳곳에서 국수잔치를 연다. 수익사업을 위해 강북구 미아우체국 앞에 있는 ‘아름다운 국수가게’(02-995-7998)는 국수 한 그릇에 3천원씩 판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이 부족해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열다 보니, 국수 먹으러 찾아온 손님들은 허탕 치기 일쑤.

“자원봉사해주시는 분들이 다 연세가 많다보니 안아프신 분이 없어요. 다 환자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집에 있으면 아픈데 봉사하러 나오시면 안아프시대요. 젊은 분들이 봉사에 많이 참여해주신다면 더욱 큰 힘이 되지요.”

▲ 육수맛일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고명 때문일까. 겉보기엔 면발과 국물과 오이 고명 조금 뿐인데, 맛은 기가 막히다.


김 대표의 국수가게 달력은 매달 빽빽하다. 한 달이면 15회에서 20회까지 국수잔치를 열러 나간다. 어제는 송중동의 벽오산 경로당, 오늘은 번동의 유명한 산동네 148번지, 모레는 서원복지관이다. 그런데 그의 국수잔치 달력표엔 생각보다 교회가 많지 않다.

“국수잔치를 하기에는 교회가 시설로 보나 거리로 보나 최고로 좋은 장소죠. 그런데 너무 선교를 목적으로만 하려고 하니까 교회에서 하기 곤란해요. 오늘처럼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일반 가요는 안된다, 찬송가를 불러라, 설교를 하면 좋겠다, 이렇게 나오시거든요.”

김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교회가 너무 전도하려는 목적을 드러내면 부작용이 날 수도 있다. 선교를 앞에 드러내서 조건을 많이 달지 말고 순수 봉사 차원에서 지역 어르신들에게 교회 문을 열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선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국수 한그릇에 인생의 모든 고달픔까지 훌훌 말아 시원하게 삼켜버린다.

기적같은 ‘오병이어’의 국수

그동안 아름다운 국수가게가 나눠준 칼국수와 대접한 국수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봉투에 넣어드리는 칼국수만 해도 매일 적게는 200인분에서 많게는 1,500인분까지 나간다.  평균잡아 계산해서 대략 1년에 10만 명분으로 치면 지금까지 10년 이상 했으니 100만 명분이다. 게다가 국수잔치까지 다 합하면, 그 면발이 아마 지구를 수십바퀴는 돌지 않을까?

국수 한 그릇이 때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기도 한다. 처음엔 얻어먹으려고 왔던 사람들이 기다리다가 자연스럽게 함께 국수 만드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사랑을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처음에 만두피를 만들고 남은 잔피를 제공하던 공장은 이제 전적으로 국수와 밀가루를 제공하는 큰 회사로 봉사의 지경이 넓혀졌다. 긴 국수 가락처럼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예산이죠. 지금 이 일은 자원봉사자들이 회비도 내고 거의 자력으로 하고 있어요. 지원받는 건 10분의 1도 안됩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있지만 하나님의 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또 다 충당이 되더라고요.”

밀가루 대리점을 하고 있는 김 대표는 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전적으로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가장으로서 생업을 뒷전에 두고 돌아다니는 것을, “요즘은 여자들이 장사를 더 잘한다”는, 칭찬인지 뭔지 모를 애매한 말로 눙치면서 말이다. 명절 때도 연휴 마지막 날에는 국수잔치를 연다. 소외된 이들은 명절 때 더 허기지니까.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아뇨, 이 일을 하다 보면 너무 즐겁고 기쁘고 보람됩니다. 안하면 괴로워서 못 있어요. 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삶의 낙입니다. 육체적으로 고단해도 마음은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 국수를 행구고 있는 남국주씨는 시인이면서 자원봉사의 총책임과 조리를 맡고 있다.
주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그가 이렇듯 봉사 체질은 아니었다. 우연히 무료급식소에 가서 ‘깍두기’로 봉사한 적이 있었다. 정식 멤버가 아니라 형편 따라 들쭉날쭉한 봉사였다. 그러나 ‘깍두기 봉사’라도 몇 번 하다 보니 어려운 이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들이 만두 잔피를 보고 떠오를 정도가 된 것. 작은 봉사가 큰 봉사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의 꿈은 뭘까?

“사실 거창한 꿈이나 비전 같은 건 없어요. 이 일도 무슨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연히 만두피 잔피가 눈에 들어와 봉사를 시작한 것이거든요. 하다 보니 그게 12년째 됐고요. 다만 고생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볼 때 미안해서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취재 말미에 다니는 교회와 담임목사 성함을 물었다. ‘목사님 성함’을 더듬거린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갑자기 목사님 성함이 기억이 안나네요.” 물론 그럴 때도 있는데, 사실 김 대표의 교회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대학교 때 스스로 기독교가 궁금해서 교회를 나간 김 대표, 결혼 후에 한동안 못나갔다. 그러다 나간 K교회가 하필 이단 시비가 있는 교회. 그래서 C교회로 옮겼다. 이번엔 C교회에 내분이 일어났다. 다시 J교회로 옮겼다. 거기도 두 쪽으로 갈라져 지금도 분쟁 중이다. 이번에 옮긴 교회는 하늘비전교회. 지금은 집사 직분까지 받아서 잘 다닌다.

담임목사 이름 좀 헷갈리면 어떠랴. 일년 365일에 명절까지도, 맛난 국수로 고달픈 이들의 허기진 배와 헛헛한 마음까지 채워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는, 목사님 성함을 더듬거렸을지라도 그 교회의 자랑스러운 집사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주님의 칭찬이 생각나게 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 국수잔치 후에 자원봉사자들이 가수들과 승리의 브이자를 그리며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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