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역사문화관 6개월째 부지도 선정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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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역사문화관 6개월째 부지도 선정 못해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4.07.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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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300억대 대규모 프로젝트,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부지와 건립은 ‘하드웨어’... 한국교회 전체 공감하는 내부 합의부터
특정 교단이나 단체의 일방적 기여는 ‘역사 편향’ 불러오는 부작용

한국 교회의 역사를 하나로 모으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기독교역사문화관’ 사업이 건립위원회 발족 6개월이 다 되도록 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한 채 난항을 겪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장기 프로젝트 기획안을 제출하며 4억 원에 이르는 정부지원금을 설계비로 받았지만, 사업에 진척을 보이지 못해 내년도 예산 편성도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김영주)가 최초 발의한 사업이다. 기독교의 근현대 역사를 정리하고 흩어진 자료를 찾아내 한 곳에 모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더불어 ‘분열’로 고착된 기독교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하나의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연합’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교회협은 역사문화관 건립을 위해 초교파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지난 2월 7일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프란시스홀에서 건립위원회 발족 감사예배를 열고 본격적인 건립을 시작했다. 당시 이영훈 건립위원장은 “진보와 보수를 초월해 교단과 교파를 뛰어 넘어 한국 교회 모든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건립추진위원회가 밝힌 역사문화관 청사진은 상설전시관과 역사 아카이브, 다목적실, 회의실 등 시설을 갖추고, 나아가 ‘디지털 아카이브’ 설립과 한국기독교네트워크 구성 등의 목적을 담아냈다. 당시 밝힌 건립비용은 총 366억 원으로 정부가 30%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교회와 기독교계 기업 등의 후원을 받아 오는 2017년 완공한다는 계획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이 발표된지 6개월 째 이르고 있지만 아직까지 역사문화관을 어디에 세울 것인지 부지조차 선정 못하고 있는 것이 교계의 현실이다.

# 지을 곳은 있지만 지을 돈이 없다

현재 역사문화관 부지로 거론되는 곳은 3~4곳. 처음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할 당시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무상 기증하겠다고 밝힌 구리시 갈매동의 땅이 있었으나 접근성 등을 이유로 사실상 후보군에서 배제됐다.

교회협이 최종 물망에 올려놓고 있는 곳은 동대문교회 부지와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교육관, 그리고 서울시가 제안한 강남지역 문화체육시설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교육용도 여의도 부지 등 4곳이다. 지난 5월 열린 3차 임원회의에서는 서울시가 제안한 84억 원 상당의 강남지역 문화체육시설 부지에 대한 협의가 있었으나 역사적 연계성과 접근성 등의 이유로 “종로 5가와 멀지 않은 곳에 역사문화관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날 회의에서는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재건축과 동대문교회 부지 내 건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두 지역 모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유력하게 떠오르는 곳은 성곽복원사업에 의해 철거된 ‘동대문교회’ 부지. 서울시가 동대문교회를 적극 추천하는 것은 감리교와 갈등을 의식한 것으로 기독교 역사 보존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과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동대문교회 실소유주인 감리교가 반대를 하고 있고, 종무팀 단독 결정으로 진행될 사업도 아니다”며 난색을 표했다. 동대문교회에 역사문화관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서울시에서만 3개 부처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또 감리교 동대문교회역사보존추진위원회가 서울시를 상대로 형사고발한 상황에서 동대문교회 부지를 서울시가 역사문화관에 일방적으로 기부하는 것은 감리교 일각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역사보존추진위원회 백영찬 장로는 “땅 주인을 배제하고 교회 부지를 개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서울시가 감리교 근현대 역사가 담긴 곳을 빼앗으려고 해 교회협에 도움을 청한 바 있는데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서울시 역시 “공문이 오간 것도 아니고 구두 논의만 있었다. 말만 무성한 상황”이라며 “짓더라도 지상은 불가능하다. 지하에 세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대문교회 부지는 지상으로 성곽이 복원됨에 따라 지하 밖에는 사용할 수 없다. 역사문화관으로 접근성은 좋지만 대부분 소장 자료가 ‘문서’라는 점에서 지하에 박물관 형태의 문화관을 건립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또 다른 유력 부지는 광화문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교육관. 교회 건축을 앞두고 있는 새문안교회는 구세군빌딩 옆에 있는 언더우드교육관을 매물로 내놓았다. 접근성과 역사성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지만 막대한 비용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 새문안교회 건물은 평당 1억이 넘어 전체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3백억에 달하는 재정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의 설계 지원금 이외에 별다른 재정을 확보하지 못한 교회협으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건물이다. 그러나 신축이 아니라 언더우드교육관을 ‘개축’해서 문화관으로 사용한다고 하면, 매입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 거론 부지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소유의 영등포 교육부지. 건립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역사문화관 건축에 적극적 의지를 보이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여의도에 매입한 2천 평 교육용지 중 일부 떼어 기부할 뜻도 있음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땅에 역사문화관을 짓기 위해서는 서울시의 용도 변경이 필요하며, 여의도순복음교회 소유의 땅을 사용할 경우 기독교 역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비난도 감당해야 한다.

이처럼 후보군은 많지만 딱히 한 곳을 낙점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교회협은 역사문화관 건립을 위해 신청한 내년도 예산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문화관광부 관계자에 따르면 “8월 말로 내년도 예산 편성이 마무리된다. 현재 역사문화관 2015년도 예산은 기획재정부 1차 심의에서 탈락했다”고 말했다. 부지 선정을 못해 아직까지 설계 작업을 시작도 못했기 때문. 이미 받은 예산은 2년 내에 사용하면 되지만 내년 예산 편성까지는 어려워 사업이 뒤로 밀릴 수 있다.

정부 지원금과의 매칭펀드 비율도 낮아 지원금 30%에 교계가 70%를 충당해야 한다. 문광부는 당초 5:5의 매칭펀드를 요구했지만 기재부가 3:7로 결정해 교계의 부담이 훨씬 크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366억 원의 예산 중 정부 지원금이 110억 원, 교계가 250억 원을 모금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지의 무상기부가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주도권에 따라 역사가 바뀔 수도

기독교역사문화관 건립이 수백억을 요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사업의 진행이 쉽지만은 않다. 개 교회 헌금이 줄어들고, 교단 재정도 위기를 겪는 교계의 현실로 볼때 200억 원에 이르는 모금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건립위원장 이영훈 목사도 “부지는 서울시와 잘 협의될 수 있으나 기금 마련이 큰 과제”라며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한 바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교계 상당수 인사들이 역사문화관 건립에 호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하나로 모은다는 점에서 순복음을 비롯해 보수교단까지 건립위원회에 참여하며, 정부를 설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교회협은 서울시 지원과 정부 지원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 언론사 사장단 모임도 열고 협력을 당부했다.

문제는 기독교역사문화관의 성격이다. 재정적 기여도에 따라 역사문화관의 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역사문화관을 세우겠다는 뜻은 하나지만 목적은 모두 다르다. ‘동상이몽’에 빠진 것.

교회협은 김영주 총무의 치적 사업으로 ‘기독교역사 100장면’ 선정에 이어 역사문화관 건립을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은 ‘에큐메니칼 사료 정리’. 교회협은 기독교역사문화관은 단순히 박물관 형태로 짓는 것을 넘어 스위스 WCC 본부와 같은 ‘에큐메니칼 센터’ 역할까지 계획하고 있다.

지난 24일 열린 실행위원회 총무 인사에서도 김영주 총무는 “한국 선교의 역사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 자료를 보전하는 일,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에 관심하고 있다”며 협력을 요청했다. 또 건립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독교회관 지분을 빼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에큐메니칼 기관들의 자산을 정리해 건립에 투자하고 이후 사무실을 문화관 내부로 이전해 에큐메니칼 센터로 삼는다는 ‘가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같은 계획대로라면 교회협은 에큐메니칼 정체성을 살린 ‘기독교역사문화관’ 건립을 실현할 수 있다. 반면, 보수 교단들의 지지와 협력은 포기해야 한다.

# 실패한 역사 되지 않으려면 ‘합의’부터

이미 지난 5월 회의에서 건립추진위 고문을 맡고 있는 합동 장차남 목사는 “기독교역사문화관은 내용에 충실해야 한다. 편향적이지 않고, 한국 교회 전체의 내용을 담았다는 공감을 얻게 되면 권위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제안하며 진보 편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적극적 입장을 보이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물적 투자’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부지를 기부하거나 교회 내부에서 약속한대로 약 50억 원의 재정을 부담할 경우, 기하성 60년 역사를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한국 교회의 대형화, 물량화를 지적해온 교회협이 기하성 60년 역사를 무조건 찬양할 수만은 없는 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기여’만 하고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에큐메니칼 교단에서는 여의도의 ‘넘치는 기여’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기장 측 한 인사는 “여의도교회 부지를 사용할 경우, 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의 역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교회협이 주도하는 사업이 이와 같이 흘러간다면 에큐메니칼 정신에 위배되고, 진보 교단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기독교역사문화관 완공 목표는 2017년. 김영주 총무가 재임에 성공할 경우 정년에 앞서 3년의 임기를 채우고 은퇴하는 시기 역시 2017년. 만일 기독교역사문화관이 한 개인의 미래를 위해 서둘러 추진하는 사업이 아니라면, 역사문화관 건립은 ‘부지 선정’에 앞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리다. 이미 정부 예산을 타냈으니 그 돈을 쓰기 위해 일단 서둘러 짓자는 생각은 오산이다.

'언제까지 짓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담아 낼 것인가’라는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막상 짓고 나서도 한국 교회 전체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실패한 역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의 산물’이라는 공로에 집착하다 에큐메니칼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합의’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먼저 되새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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