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숭배·교황 무오설’ 등 성경보다 교리와 전통이 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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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숭배·교황 무오설’ 등 성경보다 교리와 전통이 우위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7.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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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방한을 계기로 살펴본다<상> 로마 가톨릭, 어떻게 대할 것인가

가톨릭이 ‘틀렸다’ 보다는 ‘다르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로마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개신교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984년과 89년의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에서 가톨릭의 위상이 높아지고 가톨릭 신자가 급증한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한국에서 개신교의 위상과 교세는 그 당시보다 위축되어 있다는 현실 인식도 이같은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10년마다 이뤄지는 인구센서스 결과를 보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의 기간 중에 가톨릭은 219만명이 늘어 무려 74%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이룬 반면에 불교는 40만 명이 늘었지만 인구 증가에 미치지 못해 -0.1%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개신교는 14만명이 오히려 줄어 -1.4%를 기록했다.

특히 이같은 가톨릭의 부흥에는 개신교의 상당수의 교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이 통계적으로 나와 교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교세뿐만 아니라 신뢰도에 있어서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2월에 발표한 ‘2013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신뢰하는 종교로 개신교는 21.3%를 받아 가톨릭(29.2%)과 불교(28.0%)에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신뢰성 질문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벌어져 가톨릭이 32.7%, 불교 26.6%인데 반해 개신교 8.6%로 뚝 떨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력

더군다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어느 교황보다도 많은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는 가난과 청빈을 지향하는 삶을 실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의 폭을 넓혀 가는가 하면 이전의 교황들이 척결하지 못한 교황청 주변의 추문을 다스리고 마피아를 파문하면서까지 로마 가톨릭을 정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합동신학대학교대학원 이승구 교수는 “특히 신앙이 없는 분들 가운데는 부패 척결에 앞장서는 천주교의 교황이 방한해서 작은 차를 타고 다니며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최근 개신교 교역자들의 물의와 비교되면서, 이들이 앞으로 종교를 선택할 때에 천주교회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겠고 결국 개신교의 전도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어 “이것을 가톨릭이나 그들의 교황이 방한한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개신교 지도자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런 기회에 우리 개신교가 더욱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개신교에겐 긍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반영하듯 개신교계에선 교황의 방한에 대해 환영 못지않게 불편한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이미 지난 5월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를 창립하며 가톨릭과의 일치와 협력에 적극적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교단이나 지도자들은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지만 ‘로마가톨릭교황정체바로알리기운동연대’와 같은 비 에큐메니칼 진영이나 보수 교단에서는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는 8월 교황 방문을 앞두고 ‘시복식(諡福式), 성스러운 예식이면 성당 안에서 하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시복식이란 가톨릭에서 성덕이 높은 사람에게 성인(聖人)의 전 단계로 주는 복자(福者) 추대식. 교회언론회는 시복식 행사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국가적인 행사로 치르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렇듯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개신교계에서는 가톨릭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 정리를 요구 받고 있다. ‘개신교는 가톨릭과 형제 교회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종교개혁으로 나타난 개신교의 존재 근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가톨릭의 어떤 교리들은 개신교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가톨릭의 교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신교와 다른 가톨릭의 교리

◇ 교황 무오설: 가톨릭에서는 교황을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사도권을 계승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본다. 따라서 교황의 선포에는 오류가 없다는 것. 이것은 교회 안에서 권위의 문제와 연관된다. 가톨릭은 성경과 함께 교회의 전통에 같은 권위를 두는데, 이 교회의 전통은 결국 교황권에서 비롯된다. 개신교에서는 교황이 베드로의 사도권을 이은 후계자라는 해석(마 15:16-19)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직 성경’에 권위를 두는 종교개혁 정신을 지키고 있다.

◇ 마리아 숭배: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마리아 종신 처녀설 △마리아의 무죄 잉태설 △마리아 승천설 등을 주장하며 ‘중보자’로 인정해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할 때에 더 효과가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개신교는 이런 가톨릭의 주장에 대해 성경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우상숭배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 구원관: 가톨릭은 △믿음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고 선행(공덕)을 쌓아야 하며 △구원은 세례(영세)를 통해서 오며 △믿지 않는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언급이 성경에 없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에 이른다는 성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죄사함의 과정: 가톨릭에서는 원죄는 세례(영세)를 통해서, 그 이후 지은 죄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또 대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 가지만 소죄를 지었거나 죄에 대한 벌을 다 치르지 못한 영혼은 연옥에서 죄를 씻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사제가 사죄권을 가지고 있다는 고해성사를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직접 죄를 고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연옥 또한 비성경적인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 교황 비오 9세가 소집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회 장면. 이 공의회에서 발표한 교령들은 교황의 무류성을 선언했다.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 동정녀 마리아가 원죄가 없다는 교리를 선언했으며, 예수회가 이 교회를 적극 지지했다(출처= 갑인공방 출판 '교황의 역사')

이밖에도 가톨릭은 개신교와 교리나 예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가진다. 가톨릭은 세례, 견진, 성체, 고해, 혼인, 신품, 병자성사를 7대 성사로 여기지만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한 세례와 성찬을 성례로 인정하고 있다. 가톨릭은 성찬을 할 때에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채설’을 믿고 있지만 개신교에서는 대개 ‘기념설’을 따른다.

가톨릭의 미사는 구약적인 제사의 성격이 강해서 ‘제단’의 의미가 깊다면 개신교는 온전한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완성했기 때문에 제사는 더 이상 필요 없어 감사예배의 성격을 띠며 제단보다는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의 의미를 갖는다. 자연스럽게 가톨릭은 예전 중심이 되는 반면 개신교는 말씀 선포가 중심이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의미에 있어서도 가톨릭은 고난에 초점을 두는 반면 개신교는 부활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가톨릭의 십자가에는 고난 받는 예수상이 있는 반면에 개신교의 십자가는 빈 십자가다. 또한 가톨릭이 성상과 유골을 숭배하는 의식을 갖는 것 역시 개신교에서는 공감하기 힘든 정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교리에 있어서는 가톨릭은 개신교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신앙의 대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점 △개신교와 가톨릭이 같은 사도신경을 신앙고백한다는 점 △기독론 역시 상당 부분 공유한다는 점 △구약 외경을 제외하고는 같은 경전을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개신교 내 분열·대립 지양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가 교리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종교개혁이라는 태생적인 면에서 가톨릭과 일치와 연합, 소통과 나눔 보다는 분열과 단절, 적대와 대결 구도로 흘러가게 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신대의 이상규 교수는 “이런 교리적인 차이는 이미 16세기 개혁자들이 지적한 것으로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용인할 여지가 없으며, 도리어 개신교가 그 차이를 선명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옳고 그름을 헤아릴 수 있는 안목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어 “소통이나 협력이 반드시 자기 정체성의 해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자기 신념과 종교의 교리를 주장하면서도 우리 앞에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선 서로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 한 예로 과거 역사에서 토인비가 인류의 직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종교가 협력하고 대화해야 한다고 주창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가톨릭의 교리들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선교에 있어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에 비추어 볼 때에 지혜로운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여러 종교와 가치관이 공존하는 다원화 사회 속에서 이런 태도는 ‘역시 개신교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이미지만 고착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개신교의 입지는 더욱 고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가톨릭이 ‘틀렸다’라는 적대적인 태도보다는, 가톨릭은 개신교와 ‘다르다’라는 입장으로 접근함으로써, 소통의 문은 열어두면서 동시에 개신교의 강점을 되살리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방한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의 피터 릴백 총장은 한 모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개신교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교황의 방한보다는 사실 우리 기독교인 안의 분열이 큰 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의 방한으로 인해 오히려 개신교 내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는 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로마 가톨릭 교황의 방한은 단일한 모습을 자랑하는 가톨릭에게 더더욱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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