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그런 일이 있은 후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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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그런 일이 있은 후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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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2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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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기꺼이 포기해야만 한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김은영의 뇌파검사기(EEG)에 나타난 자료에 의하면 대뇌의 활동이 거의 정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완전히 혼절한 상태에서 호흡기 튜브로 연명해 나가고 있었다.

과거 임상 보고서에 의하면 박테리아성 뇌막염으로 대뇌피질이 심히 손상을 받은 환자는 발병한지 며칠 내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신앙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나 그의 오빠처럼 경건한 신앙이 없었다. 그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의 음성을 듣거나 신에 대한 체험으로 가슴으로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행동에 신앙을 가진 친구들조차 그를 향해 불신자, 회의론자로 결론지었다.

그녀도 한때 신의 섭리와 그 사랑에 기대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그는 경건한 신앙인들의 말을 믿고 싶었다. 신은 그의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고 고난당하는 자를 구원해 주는 신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녀는 만성위염 치료를 위해 기간을 정하고 열심히 기도한 일이 있었다. 또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를 소생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원한 일도 있었다. 사랑받았던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기도할 때마다 아무런 표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하나님의 음성이 듣고 싶었다. 하나님이 바쁘시다면 천사라도 보내어 그를 도울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불만에 찬 목소리로 하나님께 항의했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면, 인간을 감찰하신다면 제게도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실 수 없습니까? 아니면 제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 버린 자로 대화할 가치도 없는 자이옵니까?”

공의의 하나님이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침묵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또한 세계 도처에서 테러와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그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행한 일들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그런 신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인간이 선택한 결과라고만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지렁이로 변해 있는 것을 알았다.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눈이 없이 오직 본능적 감각 기능으로 땅 속을 후비고 다녔다. 그는 지렁이로 태어난 것을 원망할 줄 모르고 지렁이의 삶이 그의 숙명이라고 생각하였다. 땅 속은 어둡고 캄캄하였다. 그러나 지렁이에게 어둡거나 캄캄한 곳은 그가 살아가야 할 낙원이었다.

하늘에게 비가 와 땅 속의 문이 열릴 때 지렁이에게는 땅 속의 먹이를 찾아 여행하기 좋은 시기였다. 어느 날 지나친 폭우로 인하여 땅 속의 지렁이들이 땅에서 튀어나와서 모조리 개울로 흘러갔다. 개울에서 시냇물, 시냇물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까지 먼 여행이 시작되었다. 강에서는 작은 물고기들의 먹이감이 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용케도 살아남았다.

바다 속에는 모든 물고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강한 것들은 약한 것들을 잡아먹고 산다. 바다는 평온한 바다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남을 해치는 지옥과 같은 장소로 보였다.

그녀의 몸이 번데기로 변해 있었다. 추운 겨울에 상수리나무에 달린 누에고치 안에서 번데기의 몸으로 봄을 기다리면서 동면 하고 있었다. 나비의 수명은 짧으면 15일, 혹은 2달, 길면 4개월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하여 고민하지만 곤충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고민하는 일은 없다. 그들에게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동면의 날이 끝나자 그는 알 밖으로 기어 나와 마지막 변태를 거친 후 나비가 되었다. 그는 하늘을 날면서 유충일 때와 번데기일 때를 생각하지 않았다. 곤충의 숙명대로 살았다.

나비라고 해서 그에게 허락된 짧은 수명을 다하고 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새들이 그를 먹이감으로 알고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새들이 그의 곁을 지나면서도 그를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지렁이가 되었다가 다시 번데기로 변한 자신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는 곤충에 불과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중환자실에 있어야 할 정신증(ICU Psychosis) 환자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시시각각으로 점검하는 의사,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우는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곤충이니까. 그는 하늘을 나는 나비로써 나는 일과 보는 일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나비가 되어 세 번째로 본 광경은 세상과 같은 풍경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세상과 유사하지만 살펴보면 달랐다. 그곳에는 빛은 없었다. 빛이 없어도 밝은 대낮처럼 모든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초원에 앉아서 회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30대 전후의 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노인들이 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깬 후 자신이 지렁이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사람인 것에 새삼 감사했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면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잠깐 그녀는 어느 사막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도 가도 사막은 끝이 없었다. 탈수현상이 나타나면서 그녀의 온 몸이 불타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업습했다. 그가 그토록 살기를 거부하면서 자살을 시도했던 것을 까맣게 잊은 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를 구해줄 한 사람이 필요했다. 세찬 모래바람이 불어와 그의 몸은 가눌 수 없이 모래 속으로 매장될 운명이었다. 그는 억울했다. 스스로 죽지 못하고 이렇게 죽다니!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그녀는 모래 속에 파묻혀 숨을 쉴 수 없었다. 더욱이 입을 열고 소리치기에도 불가능했다. 그녀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소리쳤다.

갑자기 그를 덮었던 모래가 바람에 날려가 그의 몸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모래바람은 그치고 강열한 태양 아래 서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선생님 누구세요?”
“나는 사막의 안내자요.”

안내자가 가지고 있던 물병을 열고 물 한 컵을 그에게 권했다. 안내자는 그녀에게 길을 안내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나서인지 모르는 것이 하나 없는 철학자 같이 현명해 보였다.

“선생님. 세상에는 왜 불행이 존재합니까?”
“사람들이 행복을 찾는 의무를 일깨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집에 다다랐다. 그녀가 안내자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는 순간 안내자는 홀연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조금 전의 꿈에서 깨어나서 현실에서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실제로 지렁이가 되었었는지, 나비가 되었었는지, 그것이 하나의 환상이었는지, 꿈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더욱이 죽은 후 체험은 한 것인지, 뇌의 환각증상 때문에 생긴 일인지 알지 못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사실과 그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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