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버린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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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버린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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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0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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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목사 / 거룩한빛광성교회

12세기 유럽의 위대한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1182-1226)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탁발(托鉢)과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가난의 삶을 살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1184년에 이단으로 정죄된 ‘왈도(Waldo)파’ 때문이다. 왈도파는 프랑스 리용의 재산가였던 왈도(Peter Waldo)가 설립한 모임인데, 회심한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버리고 거리로 다니며 청빈과 금욕의 삶을 살 것을 설교하였다. 그들은 교황청에 인가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오히려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프랑스 남부 등에서 활동하며 민중들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당시 교황과 세속 권력 사이의 권력 다툼과 교회의 타락을 본 민중은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사는 왈도파에게 매혹 당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형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체스코는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공동체인 ‘작은형제회’의 인가를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요청하였다. 교황은 ‘생활양식이 너무나 이상적이고 엄격하여’ 인가를 거절하였으나 그날 밤 꿈에 환상을 보고 이튿날 인가를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신앙생활과 모임은 얼마가지 못했다. 프란체스코가 죽은 후 ‘작은형제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으며 ‘느슨한 청빈파’와 ‘극단적 청빈파’로 나뉘게 된다. 결국 작은형제회의 7번째 지도자가 된 보나벤투라에 의해 싸움이 종식되지만 이미 프란체스코가 내세웠던 탁발과 가난의 삶은 사라지게 되었다. 프란체스코의 사후 790여 년 동안 87명의 교황이 지나갔으나 누구도 그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가톨릭교회가 버린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이름을 딴 첫 번째 교황이 탄생했다.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이었던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그는 프란체스코 1세란 이름으로 교황에 취임하여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슈퍼스타’다.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트위터 팔로어 1,411만 명으로 세계 2위이며, 85%의 국제적 지지도를 누리고 있고, 그가 브라질에 방문한 경제 효과는 월드컵보다도 높은 5,389억 원이었다고 브라질 관광공사가 밝혔다.
프란체스코 1세가 오는 8월 14일에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천주교회도 ‘프란체스코’ 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는 이번 교황의 한국 방문으로 현재 천주교 신자가 500만 명에서 700만으로 늘어나 개신교를 능가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는 이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프란체스코 효과’를 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예수님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교인의 연령대별 분포를 자세히 살펴보면 30대 이하 청년 등 다음 세대의 숫자는 급감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교회와 지도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국 교회의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과거 가톨릭교회가 타락했을 때 성인 프란체스코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참 예수의 길을 만날 수 있었다. 21세기 한국개신교회의 프란체스코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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