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없는 144시간, 오늘도 약국은 ‘등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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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없는 144시간, 오늘도 약국은 ‘등대’가 된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7.08 23: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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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약국 운영하는 바른손약국 김유곤 약사

선교사 마인드로 일하는 약사가 있다. 부천 소사구 ‘바른손약국’의 김유곤 약사. 그는 현재 부천에서 유일하게 심야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출퇴근도 없이 일하다가 토요일 밤 12시 ‘땡’하면 집에 간다. 밀린 잠을 자다 아침에 주일예배 드리고 저녁이면 약국으로 출근. 또 다시 24시간 내내 일하는 한주간이 시작된다.

이 때문에 약국 안쪽의 한평 가량 쪽방엔 살림살이가 나름 구색을 갖추고 있다. 싱크대, 그 위엔 밥솥과 그릇들, 옆엔 성경 주석전집이 빼곡한 책장이 오밀조밀 붙어있다. 색동이불이 잘 개켜진 바닥엔 손때 묻은 가죽 성경책이 눈에 띈다. 손님이 뜸해지는 새벽 2시쯤이면 여기서 잠시 눈을 붙인다. 인기척에 벌떡 일어나 나갔다 들어왔다, 이러다 보면 동이 튼다. 사람을 쓰면 적자가 나니, 이렇듯 김 약사는 혼자 몸으로 때우고 있다.

▲ 약을 조제하는 김유곤 약사. 그는 동생을 도우려다 사기를 당해 큰 고난을 겪었지만 오히려 그 일을 통해 고난 속에 참된 신앙을 키워가는 성경의 진리를 체험했다.

노름하나, 이혼했나, 오해도
 

5년 전에 부천시에도 지역주민의 편의를 위해 심야 약국이 한 곳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350여 개 약국 중에서 아무도 자원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돈 되는 일도 아니고 몸은 몸대로 축나는 일이었다. ‘남들이 안하려는 궂은일을 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도리’라는 마음으로 자원한 김유곤 약사(분당우리교회 안수집사).

“힘들게 외국으로 선교도 가는데 저는 여기가 선교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번에 세월호 사고도 총체적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아서 일어난 일 아닙니까? 약사가 있어야 할 자리라면 남들이 힘들어서 피하더라도 크리스천인 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제가 일주일 내내 집을 비우니 아내와 딸들에게 미안하고 또 이해해주니 감사할 뿐이죠.”

처음 심야약국을 시작했을 때엔 오해도 받았다. 밤 늦게 불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노름을 하는 ‘하우스’가 아닌가, 집에 안 들어가니 이혼을 한 것이 아닌가, 얼마나 돈 독이 올랐으면 밤에도 일을 할까, 뒷말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수군거림은 곧 감사인사로 바뀌었다.

“저희 냉장고엔 주스가 가득 있어요. 저녁마다 고맙다고 주스 주시고 가시고, 아이스크림도 사다 주시고, 겨울철엔 약국에서 먹을 김장도 해다가 주세요. 당장 약을 사러 오시지 않더라도, 언제라도 필요하면 새벽에라도 약을 구할 수 있으니까 보험 든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고, 바른손약국이 있어서 이사 잘 왔다고 하시는 말을 들으면 보람이 있죠.”

약국 한쪽에 길게 줄 서 있는 갖가지 상패와 표창장들이 김 약사의 과거를 보여준다. 23년째 이곳에서 약국을 하고 있는 그는 심야 약국 이전부터 지역사회를 섬겨왔다. 개별적으로 이미 여러 곳을 후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한 일은 함께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철학으로 동료 약사들과 더불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제가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면 제가 버는 것 가지고 나 잘살고 내 가족들만 챙기면 되겠지만 그건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니잖아요.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줘야죠.”

▲ 본인은 중고 엑센트 한대 몰고 아직도 갚아야할 빚이 많지만 어려웃 이웃을 돕는 '바른손'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손님과 상담하고 있는 김 약사.

‘마이너스 헌금’할 형편인데

사실 그는 남을 위해 돈쓸 만큼 지금 ‘팔자 좋은 사람’이 아니다. 2007년 경, 생활이 불안정하던 동생에게 평생직장을 만들어 주려다가 사기를 당했다. 담보로 삼았던 아파트는 날아갔고 약국에 가만히 있던 그는 전과자가 돼 버렸다. 지금도 그의 형편은 ‘깡통’이다. 빚을 갚기는커녕 매달 은행 이자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헌금도 ‘마이너스 헌금’을 해야 할 처지.

“인간적인 갈등도 있었죠. 후원하던 걸 다 끊고 빚부터 갚자. 그런데 신앙인이라면 매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잖아요. 예배도 오늘 예배가 마지막 예배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드리듯이 말입니다. 할 건 다하자, 그러다 주님이 부르시면 가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못할 게 없더라고요.”

IMF 때엔 어려운 이웃 보기 민망하다고 골프채를 팔아 버렸던 그는 집에 중고 ‘엑센트’ 한 대가 있을 뿐이다. 매달 결산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 ‘이번 달도 무사히 넘어 갔습니다’라고 감사드린다. 운영할 것 운영하고 도울 것 다 도울 정도로, 딱이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심야 약국도 그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결단했죠. 그때 성경을 보니까 말씀대로 사는 건 고난이더라고요. 요셉도, 다윗도, 다 고생했네, 예수님 따르는 게 고생이구나. 그 전엔 어린아이 같고 바리새인 같은 신앙이었는데 이젠 고난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도리어 감사했다. 그 일로 딸은 대학을 중퇴했지만 오히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더욱 씩씩하게 자라줬다. 그 자신 역시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며 ‘나 신앙인 맞구나’라는 정체성을 발견하고 오히려 뿌듯했다.

김 약사의 고교 동창들은 그가 중이 되었을 것으로 안다. 불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매일 반야심경을 외우고 108참회를 하며 지냈다. 대학 들어갈 즈음에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 어머니가 밤마다 꿈 속에서 피 흘리시는 예수님을 보곤 했다. 부모님이 학생 때에는 교회를 다니다가 사정이 있어 불교로 옮겼던 것.
“부모님이 다시 교회를 다니시면서 저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갔어요. 처음엔 교회 가니까 목탁 소리밖에 안들리는 거예요. 중대 약대를 입학했을 때 기독학생연합회에서 하는 수련회가 마침 있어서 따라갔어요. 그때 주님을 영접했지요.”

거기서 고민이 풀렸다. 절을 다니면서도 풀지 못했던 숙제였다. 산 속 절에 들어가면 마음이 깨끗해지는데 다시 세상에 나오면 왜 오욕칠정의 번뇌에 빠지는가? 해결하는 방법은 없는가? 그 답을 수련회에서 얻었다.

▲ 늘 약국 안에만 매여있어 전도하러 다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아예 간판에 좋은 성경말씀을 상호보다 크게 새겨놓았다.

간판을 가득 채운 성경말씀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거다. 죄를 짓지 않고 살려는 건 물고기가 점프해서 새가 되려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 사는 한, 나는 죄와 접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자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이해가 된 겁니다. 그래, 물 묻는 건 당연하지. 그걸 내가 벗어나려고 했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하구나! 그걸 벗어나는 길은 성령의 도우심과 충만함이구나! 그걸 깨닫고 자유함을 얻었어요.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수련회 끝나고 집에 가니 어머니가 그러셔요. 야, 너 눈매랑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네!”

바른손약국은 찾기 쉬운 곳에 있는데 찾기 어렵다. 상호가 안보인다. 뒤돌아와 다시 보니 간판에 작은 글씨로 ‘바른손약국’, 그 위에 큼지막하게 써진 성경구절.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 16:3).” 20년 전부터 간판은 그의 전도지였다.

“간판 때문에 핍박도 좀 당했죠. 이 근처에 이단, 사이비 교회 본부가 많아요. 저는 약국을 벗어날 수가 없어서 간판으로라도 복음을 전하자고 한 거예요. 저 간판이 보기 싫다고, 간판 치우면 오겠다고, 안좋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믿음의 사람들은 다 고난을 당하더라고요.”

전도지가 또 하나 있다. 그의 ‘바른손’이다. 누구처럼 적당히 하며, 쉬다 놀다 살 수 있는데, 그는 고생을 자청한다. 어제처럼 오늘도, 아니 내일도, 김 약사는 24시간을 ‘풀’로 근무한다. 고단했던 하루가 저물고 모두들 귀가해 깊은 단잠에 빠질 새벽녘에도, 그는 약국에서 또 홀로 쪽잠을 잘 것이다. 약국은 오늘도 등대처럼 빛난다.

▲ 약국 안쪽에 있는 쪽방에서 달콤한 쪽잠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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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선 2022-06-17 08:13:10
약샤님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