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톱’ 민간 사회안전망 구축 … “해인교회 때문에 이사 못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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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톱’ 민간 사회안전망 구축 … “해인교회 때문에 이사 못가요”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7.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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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섬기는 인천 내일을 여는 집, 해인교회
▲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한 재활용센터와 도농살림. 스텝들이 물건을 옮기고 있다.

점심시간이 아직 멀었는데 벌써 ‘내일을 여는 집(해인교회)’에는 노인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자원봉사자들의 빠른 손놀림에 오늘도 어제처럼 150여 명 분의 식사가 벌써 바닥을 보인다. 식탁에 앉아 맛난 식사를 즐기는 노인들은 “해인교회 때문에 이사도 못간다”고 활짝 웃는다.

해인교회는 무료급식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지역을 섬기고 있다. 교회가 설립한 ‘사단법인 내일을 여는 집’은 ‘원스톱시스템(one stop system)’으로 다양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한번에 모든 것을 도움 받을 수 있는 민간사회안전망을 구축해 놓았다.

‘넥타이 맨 거지’의 열정으로
현재 이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은 남녀 노숙인들이 거처할 수 있는 ‘노숙인 쉼터’, 가정문제를 도움 받을 수 있는 ‘가족상담소’, 아이들을 돌봐주는 ‘지역아동센터’, 가난한 지역을 도와주는 ‘쪽방상담소’,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푸드뱅크’및 ‘푸드마켓’과 무료 급식, 일자리를 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재활용센터’와 ‘도농살림’ 등이다. 이사장 이준모 목사는 이 모든 것이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 이준모 목사(맨 오른쪽)와 함께 사역하는 사회복지사들

“IMF 때에 교회 주변에서 실직자들이 밥을 못먹고 계양산에서 약수물로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고 무료 급식을 교회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 교회도 몇 명 안 모일 때라서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 돈을 꾸고 이웃 교회에서 김치를 얻어다가 시작했지요. 한 달 하니까 돈이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짜장면집, 떡집 등을 다니며 음식을 얻어왔습니다. 그때 하도 돌아다니며 사정을 했더니 제 별명이 생겼습니다. ‘넥타이 맨 거지’라고요.”

무료 급식이 끝난 후에도 실직자들이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주목하게 됐다. 팔각정이나 약수터, 장례식장, 기도원 같은 곳에서 잠을 자던 이들을 위해 ‘노숙자 쉼터’를 만들었다. 남자 노숙자 쉼터에 이어 여자 노숙자 쉼터가 만들어졌다. 여자들이 노숙자가 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가정 폭력을 발견하게 되어 ‘가족상담소’를 만들고 이들을 보살폈다.

“노숙자들이 들어오니까 자연히 그들의 자녀 문제가 또 떠오르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을 위해 무료 탁아방과 공부방을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자립해서 나가 사는 곳에 심방을 가보니 소위 쪽방이라고 아주 낙후된 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의 삶을 도와줄 ‘쪽방상담소’를 또 세우게 되었고요.”

노숙자 쉼터를 거쳐 간 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먹거리를 도와주는 ‘푸드뱅크’, 또 이들만이 저렴하게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푸드마켓’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노숙자들이 자립하는데 필요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활용센터’와 ‘도농살림’을 운영했다. 2001년에 시작된 이곳은 지난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만들어지면서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만든 푸드마켓

실직 교우 돕는 일에서 시작
“저희가 꽤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 모든 일들은 교회 안에 어려움을 당한 교우를 돕는 일에서 시작됐습니다. 제가 처음 이 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도 사실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가 ‘하나님의 집이 문을 닫게 생겼다’는 말이 걸려 여기로 온 것이죠. 열심히 목회해서 30여 명 교인이 되었을 때 IMF 전조가 시작된 겁니다. 교인 10가정이 실직을 했어요.”

수요기도회를 ‘실직자들을 위한 기도회’로 이름을 바꾸고 실직자들을 불렀다. 처음엔 잘 나오지 않았다. 교회를 수리하는 일감을 실직자들에게 맡기면서 참석을 유도했다. 작은 액수지만 여비도 지급하면서 실직자들에게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98년 초가 되니까 IMF의 여파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인들 이력서를 가지고 직접 회사 사장들을 찾아다니며 취직을 부탁했지요. 심지어 회사가 어려워 해고해야 한다면 제가 그 일도 맡겠다고 사정했더니, ‘지금까지 목사님이 자기 교인 이력서 들고 찾아온 건 처음이다’라면서 받아주더라고요. 그래서 남들은 실직하기 시작할 IMF 초기에 우리 교인들은 거의 다 취직했습니다.”

그때의 노하우를 가지고 교회 밖의 실직자들까지 섬기기 시작했다. 무료 급식이 시작되었고 실직자 쉼터를 비롯한 오늘의 모든 사역들이 하나 둘씩 자리 잡게 됐다. 현재 이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1천 명을 넘고 노인 일자리를 제공받은 사람들이 940명이 넘는다. 이밖에도 많은 이들이 혜택을 입고 있다. 이곳에 상근하는 40여 명의 실무자들이 이 모든 일들을 관리 운영하고 있다.

▲ 매일 제공되는 무료 급식 모습

“기장 민중교회로 시작된 저희 교회가 민주화 후에는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제도와 결합이 된 것이죠.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신앙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선교적인 계획 아래 이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먹는 것과 자는 것과 취업을 서비스해줄 뿐 아니라 영적인 문제까지도 도와주는 통합적인 상담 시스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앙적 도움으로 ‘개과천선’도
이곳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은 80%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철저하게 거쳤다. 매주 목요일이면 기도회를 갖고 각 부서의 기도 제목을 모아 함께 기도하며 기도로 문제가 해결되는 체험도 공유한다. 사람의 변화는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신앙적인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노숙자 쉼터를 이용했던 사람이 그동안 신앙을 회복하고 자립해서 나중엔 저희 교회의 여신도회장까지 하신 분도 있습니다. 또 쉼터 출신으로 사회복지 종사자로 선발되어 이제 오히려 노숙자들을 섬기는 분도 있고요. 일본에선 ‘당사자 운동’이라고 하죠. 이분들이 정말 교회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감동해서 열심히 교회 나와 여러 직분을 맡아 일하고 있어요. 남녀 노숙자 쉼터에 있던 분들끼리 결혼한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 전체가 가족공동체가 되어 유기적으로 섬기는 구조가 된 것이지요.”

▲ 노인들에게 제공된 일터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에겐 먹거리, 잘 곳이 필요한 사람에겐 잠자리, 일이 필요한 사람에겐 일자리, 자격증이 필요한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까지 준다. 변호사가 필요하면 변호사를, 병원이 필요하면 병원을 연결해준다. ‘해인교회와 내일을 여는 집에 가면 어떤 문제도 해결된다’는 소문이 나다 보니 재원과 공간의 문제가 늘 뒤따른다.
“재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시스템적으로 만들었지만 고비가 늘 있지요.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다 받아줄 수 없는 공간이 아쉽지요. 여러 곳에 흩어진 저희 시설들을 한 곳에 모은 통합된 사회복지관을 건립해서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드리고 싶은 것의 저희들의 꿈입니다.” (후원 안내: 032-556-8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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