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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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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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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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린은 철없는 어린 시절에 그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가족에게 남긴 재산이라곤 비룡산 적우골에 있는 초가집 한 채가 전부였다.

선린의 아버지가 죽은 후 그의 어머니가 품팔이를 해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다. 선린은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원망했다. 선린은 큰아버지가 고향 비룡산으로 이주할 때 아버지가 집, 전답을 마련해 주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선린은 아버지가 자신의 가족을 돌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선린의 큰아버지는 가족에게 너무 인색한 사람이었다. 그는 동생 진위연의 도움으로 집과 농토를 마련해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수한 곡식을 한 번이라도 조카인 선린에게 보내준 적이 없었다.

선린의 집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공주에 사는 양선용(선린 아버지의 의동생) 씨가 찾아왔다. 선린이 대학에 입학할 때 양선용 씨는 쌀 두 가마를 팔아 그의 등록금을 마련해 주셨다. 선린은 어려움이 처할 때마다 큰아버지보다는 양선용 씨를 의지했다.

소생언에서 진선린에게 보내는 전보가 배달되었다.

“양선용 씨 위독. 긴급 내원 요망.”

발신인은 ‘양진우’라고 되어 있었다. 양진우는 양선용 씨의 둘째 아들로 의대를 졸업하고 국립의료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선린은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양선용 씨가 선린에게 한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아저씨,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해요?”
“걱정하지 말거라. 어려움이 있으면 내게로 오면 된다.”
“아버지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런 말은 다시는 하지 마라.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셨다.”
“남에게만 훌륭하셨겠죠.”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 때가 올 것이다.”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신다고 가난한 제가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아니다, 때가 되면 달라질게 있단다.”

선린은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위로부터 자주 들었다. 하지만 선린은 아버지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선린은 전보를 손에 쥐고 국립의료원에 입원하신 양선용 씨를 찾아갔다.

“아저씨. 제가 왔습니다.”
“선린이냐, 잘 지냈니?”
“예, 아저씨.”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선린은 양 씨가 죽을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들었다.

“아닙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다. 지금이 내가 네게 알려줄 때다.”

양선용은 숨을 고르며 선린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선린에게 말했다.

“내가 너의 아버지를 처음 만난 곳은 강경경찰서 유치장이었다. 한 때 비룡산 사람들이 독립운동가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연행된 때가 있었다. 유치장이란 곳이 얼마나 열악한 곳인지 모르겠지. 유치장에서 연행된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낮이면 서로 무릅을 맞대고 앉아야 했다. 한 사람이 코로 숨을 쉬면 다른 사람의 코로 들어갈 정도였어. 밤이면 난방이 안 되는 추위 속에서 서로 칼잠을 자야만 했다. 칼잠을 자면서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며 잠을 잘 수 있었다. 식사는 콩밥에 소금국이 전부였다. 한 번은 내 옆에 있는 살인자가 내 콩밥을 뺐어가는 바람에 굶게 되었을 때 자네의 부친이 자신의 콩밥을 내게 주어 허기를 면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자네 아버지를 선생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내가 자네 아버지를 선생님으로 모시기로 한 것은 단지 콩밥 때문이 아니고 그분의 인품이었지. 수감 3일이 지나자 나뿐만 아니라 살인자를 포함한 모두가 제자가 되었다네.”

선린은 양선용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자네 부친께서 자네에게 무엇을 남기셨는가?”
“첫째, 정직한 사람이 되라. 둘째,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게 전분가?”
“예.”
“자네 몸은 누가 남겨주셨는가?”
“……."

선린을 할 말을 잃었다.

“이제 자네 아버지가 내게 맡긴 것을 자네에게 돌려줄 때가 된 것 같네.”

선린은 그의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양선용 씨가 “때가 되면 달라질게 있다”라고 한 말이 기억났다. 다시 양선용 씨는 숨을 고르면서 나직한 음성으로 선린을 보면서 말했다.

“나는 배운 것도 없고, 논, 밭 한 때기도 없이 살면서 부잣집의 머슴일을 하였다네. 그런 내게 운명이 바뀐 것은 그 강경유치장을 다녀 온 후 였다네. ‘콩밥을 먹어야 정신을 차리겠냐?”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유치장을 다녀 온 사람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었지만 나에게 행운의 기회가 되었다네. 자네도 진위연 씨의 아들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나.”

선린은 양선용 씨의 말이 어쩌면 선린에게 하고 싶은 마지막의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듣고 있었다.

“자네 삼일원의 기도처가 비룡산 깊은 산속에서 현대식 건물 만들어진 것이 누구 때문인지 아는가?”
“백지훈의 할아버지 백항련 회자님께서 희사하신 재원으로 건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 자네 아버지가 비룡산 속에서 만난 백지훈 소년이 정신이 되돌아 와서 백항련 회장께서 재원을 지원하셨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일이라네. 내가 오늘 자네에게 말하려는 것은 진위연 씨가 가족을 위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란 것을 말하려고 하네.”

선린의 아버지가 죽은지 많은 세월이 지난 후였다.

“자네 아버지는 청빈한 분이셨지! 백항련 회장님께서 삼일원의 기도처 건물이 완성된 후에도 자네 아버지가 초가삼간에 사는 것을 안쓰러워 하시면서 전답을 마련할 돈을 희사하셨다네. 자네 아버지는 그 돈을 형님이신 진재주 씨의 집과 전답을 구입해 드렸다네. 후일에 백항련 회장이 그 일을 아신 후에 대노하시면서 어떻게 하셨는 줄 아는가?”

선린은 백항련 회장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이것을 받게.”

양선용은 봉투 하나를 선린에게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그의 아버지가 매입한 농지의 권리증과 농지원부가 들어 있었다. 선린은 그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단 한 번도 농사 지을 농지가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 알린 적이 없었다. 추수할 때가 되면 양선용 씨가 추수한 곡식을 적우골에 있는 선린의 집에 보내준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자네 아버지가 자네에게 남겨둔 유산이라네.”

선린은 도무지 믿기기 않았다. 선린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동내 사람들은 진위연 씨가 가족을 위해 유산을 누구인가에 보관시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왜 지금에서야 말씀하세요?”
“자네 부친께서 내게 부탁하시기를 자네가 성장한 후 필요한 시기에 알리도록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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