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로 더 귀해진 청소년, 끝까지 안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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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로 더 귀해진 청소년, 끝까지 안아주세요”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5.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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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달에 만난 청소년 사역자 한관희 목사
세월호 참사로 인해, 청소년들이 더욱 귀해졌다. 숫자상으로도 그렇다. 이번 일로 한꺼번에 수백 명의 학생들이 희생됐다. 그렇지 않아도 노령화시대에 귀한 청소년들인데 말이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어른들 말을 듣다가 목숨까지 잃었다. 또래 청소년들은 이제 기성세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가정과 청소년의 달을 맞아 기성세대는 시름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사단법인 ‘포유(For You)’의 상임이사로 오랫동안 청소년들을 보살펴온 한관희 목사(호계평화교회)는 “청소년은 우리 가슴에 안아야할 우리의 미래이며,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이것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강조한다. 그가 처음부터 청소년 사역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진리
“처음엔 교도소 수감자들을 구하려고 했죠. 그런데 죄의 뿌리가 깊어서 힘들었습니다. 교도소 전 단계인 소년원 사역이 더 효율성이 있겠다 싶었는데, 좀 해보니 소년원도 늦더라고요. 결국 모든 비행은 가출에서 시작한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때부터 가출 청소년을 보호하는 일을 했는데, 2000년에 경기도로부터 안양청소년쉼터로 지정을 받았습니다.”

2005년 중앙일보에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 17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가난과 불행이 3대 이상 상속되는 경우가 90%가 넘었다고 한다. 가출 청소년들은 빈곤, 방임, 학대,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자라다가 스스로 ‘탈출’할 나이가 되면 집을 떠난다는 것. ‘포유’는 이들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분노를 치유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의 머리속에 있는 나쁜 추억을 좋은 추억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사이코패스가 되어 반사회적인 존재가 될 수 있어요. 좋은 추억으로 바꿔주기 위해 그동안 가정에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여기서 풍족하게 베풀어줍니다.”

광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포유’에는 먹을 것들이 지천에 깔렸다. 처음엔 세모눈으로 경계심을 가졌던 아이들이 여기서 맘껏 먹다 보면 몸무게가 늘면서 눈꼬리가 풀어진다. 그때부터 이야기가 통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에버랜드도 가고 바닷가 구경도 한다. 영화를 보고 노래방도 함께 간다. 겨울엔 일반 가정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스키캠프를 연다.

“경제활동, 기술훈련도 필요합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구구단을 몰라요. 알바해서 돈을 벌었는데 며칠 지나면 주머니가 잔돈으로 빵빵해요. 돈 계산을 못해서 무조건 만 원짜리 주다 보니 잔돈이 많아진 거예요. 그래서 여기선 주말에 5천 원을 주고 스스로 시장을 보게 하면서 돈의 가치를 알려주죠. 무엇을 왜 샀는지 소감문도 쓰게 하고요. 그런데요, 이게 다 돈이잖아요. 그래서 많이 어렵죠.”

국고보조금으로는 숙식비만 해결될 뿐이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은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지난 2008년을 기점으로 후원금이 많이 줄었다. 주로 교회에서 후원하는데 최근 몇 년동안 안양의 큰 교회들 대부분이 교회 재정이 30%까지 줄었다고 한다.

“가출 청소년 사역을 해보니까 가출도 늦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서 가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미리 찾아서 돕는 ‘비행 예방 포유스쿨’을 시작했습니다. 학업 중단 위기가 가장 높은 아이들을 위탁받아서 보살펴줬더니, 학교를 잘 다니게 됐어요. 그런데 도리어 위험도가 낮아 위탁받지 않았던 아이들이 탈락하는 현상이 일어났죠.”

이런 가출 예방 프로그램이 인정을 받아 ‘포유’는 경기도로부터 특별교육이수기관으로 지정을 받았다. 각 학교에서 학업 중단 위기에 있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일정 기간 출석으로 인정받으며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도움을 받고 있다.

“성공 사례요? 너무나 많죠. 꼴찌로 학교를 들어간 아이가 이곳의 케어를 받으면서 상위권으로 졸업한 경우는 많아요. 서울대, 연대를 간 아이들도 있고요. 청소년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언젠가 반드시 돌아옵니다.”

배신당하는 데 익숙해져야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한 목사는 그동안 별별 아이들을 다 겪어봤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속 썩이던 아이가 있었다. 몇 년 돌봐줬는데 상처만 남기고 훌쩍 떠났다. 그런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다시 나타났다. 한 목사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웬일이냐?” 아이가 대답했다.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 왔습니다.”

강대상 뒤로 가서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저 아이 참 뻔뻔스럽죠? 지금까지 4~5년 투자했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리면 사람 되겠죠?” 하나님께서 한 목사에게 이렇게 되물으셨다.
“한 목사, 넌 10년 만에 사람 됐냐?”

“가만히 돌아보니, 제가 10년 만에 사람이 안됐어요. 예수 믿은 후에도 한참 걸렸어요.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여기 있다, 내가 포기한 증거가 없는 이상 네가 포기하지 마라, 이런 말씀을 제게 주시더라고요.”

그는 신학교를 세 번이나 입학했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79년, 방배동 총신 전이었던 미아리연합신학교에 들어갔다가 그만 뒀다. 그후 사업을 하다가 성공했지만 많은 어려움도 겪으면서 87년에 또 방배동 총신에 입학. 당시 학교에서 유일하게 봉고차를 타고 다니던 그는 다른 학우들이 여전히 시시해 보였다. 다시 그만 뒀다가 88년에 다시 입학. 거액을 들여 교회 조감도까지 미리 만들어 놓고 개척을 준비하며 기도하던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하나님께서, 난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시면서, 네가 뭔데 소자를 업신여기느냐는 거예요. 50만 명 목회해서 25만 명 천국 보내면 25점, 만 명 목회해서 7천 명이면 70점, 100명 목회해서 90명이면 90점, 1명 목회해서 1명 천국 보내면 100점! 네가 우습게 여기는 다른 동역자는 한 명만 구하면 백점이다, 네가 뭔데 간섭하느냐, 너는 네 할 일이라 하라, 이렇게 깨우쳐주시는데, 그때 진짜 회개하며 엄청 울었네요. 개척한다고 거창하게 준비했던 걸 다 찢어버렸어요, 조감도 하나만 기념으로 남겨두고요.”

지금도 그는 늘 마음에 되새긴다. ‘배신 당하는데 익숙해져라.’ 사역을 하다 보면 고달픈 일이 왜 없을까. 아직 철없는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 아프고 힘들게, 내 뒤에서 칼 꽂는 아이가 천국의 상급이다. 속 썩이는 놈, 그놈이 하늘나라의 상급이다.

“그렇게 그냥 아이들과 사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3년 그렇게 하신 것처럼, 그냥 사는 거예요. 사명이요? 그런 거창한 거 없어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이런 놈 있으니 저런 놈도 있다, 그렇게 씨 뿌리며 함께 살다 보면, 함께 즐거워할 날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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