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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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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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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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은 선화리에서 소생언이 시작된 지 5년째 되는 날이었다. 오전 11시, 창조의집 1층 회의실에서 소생언을 지원한 사람들을 초청해 오찬행사를 개최했다. 오후 3시에는 영농법인 발기인 희의가 열렸다. 발기인 회의에는 변호사 백진승, 의사 정희선, 시온미래산업 이지원 사장, 백설희와 김민정이 초청됐고 진선린과 김창진, 황금원, 주도원 등 소생언 가족과 소생언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선린이 영농법인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오늘이 소생언을 설립한 지 5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소생언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의 끊임없는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소생언 설립 초기에는 지역의 배타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저는 소생언이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유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소생언이 기업적 농업경영을 통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생산물의 유통, 가공, 판매해 그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농업회사법인인 소생언합명회사의 설립을 제안코자 합니다.”

오후 5시. 회의가 종료되었다. 대표 사원에 백진승, 사원에 정희선, 이지원, 진선린, 김창진, 황금원, 주도원으로 결의했다. 선린은 소회의실에서 김창진, 황금원과 주도원과 함께 앞으로 소생언의 운영을 논의했다.

“나는 당분간 소생언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선린이 말했다.

“무엇을 하시렵니까?”
김창진이 말했다.

“마다가스카르(Madagascar)에 사람을 찾으러 가려고 합니다. 돌아가신 곽진언 씨가 그의 상속재산 일부를 나에게 위탁하였고, 나는 위탁된 재산의 수익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럼 소생언의 운영은 누가 합니까?”
“오늘 소생언합명회사가 설립되었고 대표 사원과 각 부서의 책임 사원까지 정해지지 않았습니까?”

소생언 식구들은 놀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소생언을 이끌어온 진선린이 떠난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꼭 그렇게만 해야 하십니까?”
김창진이 선린을 향해 말했다.

“저는 곽진언 씨가 돌아가시기 전 한 약속을 이행해야 합니다.”
모두 허탈한 심정으로 아무 말도 없었다.

“이제 소생언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사원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을 하면 됩니다.”

소생언 입구에서 설희가 기다린다고 주도원이 선린에게 말했다. 선린은 의아했다. 그가 스스로 그를 만나자고 한 일은 한 번도 없는 일이었다. 선린은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창조의집을 나섰다.

소생언 진입로의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백설희는 소생언 입구 해바라기밭 옆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 끝났어요?”
“왜 여기서 기다리세요?”
“오빠, 말을 놓으세요.”
“전 많이 반성했습니다.”
“무슨 말이세요?”
“지난번 설희 씨가 제게 한 말이 옳았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했었나요?”
“어릴 때 불장난같이 한 말을 아직까지 믿고 있냐며, 난 그때의 설희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런 말을 다시 꺼내세요?”
“설희 씨를 놓아드리려고요.”
“언제는 붙들고 계셨나요?”
“그래요. 저는 항상 설희 씨를 제 마음속에 묶어 놓았습니다.”
“……."
“이제 놓아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는 먼 곳으로 가야 합니다.”
설희는 선린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 물어도 됩니까?”
“말씀하세요.”
“운명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설희는 선린을 만날 때마다 ‘이게 운명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몇 번이나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선린은 그녀 앞에 귀신처럼 나타났었다. 설희는 선린을 제외하고는 다른 청년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녀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그는 달려올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설희 씨 무엇을 생각하세요?”
“오빠, 설희 씨란 말 그만 둘 수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국으로 간다는 변명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제가 싫다면 솔직히 말하세요.”
“뭐라구요?”
“나를 옛날처럼 대해 줄 수는 없나요?”

선린이 얼마나 기다렸던 말이었던가. 선린은 듣고만 있었다.

“오빠가 원한다면 전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어요. 오빠가 나를 구해준 것을 한 시라도 잊은 적이 없어요. 나를 떠나고 싶으시면 좋을대로 하세요. 오빠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다면 제가 오빠를 붙잡아 둘 이유가 없어요.”

설희는 말을 마치고 설움에 복받쳐 흐느끼기 시작했다. 선린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두 팔로 설희를 감싸 안았다. 설희는 그의 얼굴을 선린의 가슴에 파묻은 채 흐느꼈다. 설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린 역시 침묵했다. 서로 길고 긴 길의 종착점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았다. 청명한 밤하늘에 뜬 달과 수 놓기라도 한 별들이 그들의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 달빛과 별빛을 받은 해바라기도 그들을 향해 미소 짓는 것 같았다. 창조의집으로부터 내려오는 사람의 손전등 불빛이 소생언 입구 해바리기꽃밭 위를 휘젓고 지나갔다.

백진승과 정희선은 1층 거실 쇼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TV는 말레시아 항공기의 실종사건을 긴급 뉴스로 전하고 있었다.

“설희가 입사한 회사에는 잘 적응을 하고 있나요?”
백진승이 정희선에게 말했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일이 더 급하지 않소?”
“입사한지 얼마 안 되고 설희에게는 사회 경험도 필요하지요.”
“설희는 지금 어디 갔습니까?”
“소생언에서 늦게 온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오랜만에 선린을 만나서 상의할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둘은 어떤 사이입니까?”
“꼭 오누이처럼 지내는 것이 탈이에요.”
“그럼 좋지 않소. 서로 의지가 되어주고.”
“둘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설희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선린은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설희를 배웅했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설희는 왼손으로 선린은 오른손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터미널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설희 씨, 언제까지 저를 기다리게 하실 겁니까?”
“오빠가 마다가스카에 다녀올 때까지는 너무 먼 가요?”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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