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서예하다보면 근심걱정 온데간데 없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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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서예하다보면 근심걱정 온데간데 없어져요”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4.24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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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말씀을 적은 병풍 앞에 선 이은순 권사.

믿음으로 일필휘지 서예가 이은순 권사
글씨는 살아있다. 인생이 허망하여, 아무 의욕이 없을 때가 있다면, 말씀 앞에 선다. 종횡으로 꿈틀거리며 뻗어나간 필획이 시르죽었던 마음을 다시 펄떡이게 한다. 때로는 글씨 앞에서 속 시끄러웠던 마음이 잔잔해지기도 한다. 먹의 농담 속에 번뇌도 옅어져간다. 성경말씀과 서예가 만나면 이렇듯 은혜가 크다.

이건 붓 잡은 지 36년 된 이은순 권사(국전 한문서예 초대작가)가 날마다 화선지 앞에서 건지는 기쁨이다. 그 환희를 엮어 지난 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임마누엘 서화전’을 열었다. 성경으로 쓴 260점의 작품들이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된 것 자체가 간증거리다. 대관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곳은 일년 내내 유명 기획전들과 그림과 조각 전시회만으로도 빠듯하다. 서예관은 따로 있었지만 이 권사는 그곳이 성에 안 찼다.

처음 대관된 성경 서예전
“공간이 넓게 트인 한가람이 성경말씀 전체를 단절되지 않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곳은 그동안 서예 쪽에는 개인에게 전체를 빌려주지 않았거든요. 주변에서도 안될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제가 그랬죠. 내가 누구야. 하나님의 딸이야, 권능자의 딸이야. 한가람에서 처음 허락된 서예 개인전이 성경말씀인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다음엔 더 크고 좋은 곳에서 하고 싶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그럴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불경이나 유교경전 서예 전시회는 흔하다. 그러나 성경을 한문과 한글로 쓴 서예전은 귀하다. 그러나 귀하다는 건 좋은 의미만은 아니다. 불자들은 절에서는 불경을 서예로 많이 쓰는데 교회는 드물다. 만약 교회에서 교인들이 능력의 말씀인 성경으로 서예를 한다면 그 긍정적인 효과는 무척 기대된다.

“제가 처음 학원에서 서예를 가르쳤을 때엔 한 학원에 수강생이 400명이 넘었어요. 그렇게 서예가 부흥할 때에는 아이들이 요즘처럼 버릇없거나 산만하지 않았거든요. 붓을 잡고 떠들 수 없어요. 정신집중에도 좋고 인격수양에도 좋아요. 그런데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이렇게 아이들이 산만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 ‘무불능’.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체험한 이 권사가 썼다.
교회마다 서예반을 만들면 어떨까? 한국에선 ‘서예’, 중국에선 ‘서법’, 일본에선 ‘서도’라고 한다. 글씨 쓰는 것이 도 닦는 수준과 같다는 말이다. 구구절절 은혜가 되고 능력이 되는 성경말씀을 정신 집중해서 한자 한자 쓰다보면 그것이 기도가 되고, 인격이 되고, 능력이 된다. 이 능력을 이 권사는 평생 체험했다.

“제가 충남 당진 아주 시골에서 자랐어요. 중학교를 졸업하니까 아버지가 공부를 더 안시켜주셨어요. 가난하고, 게다가 여자라고요. 아버지가 저 때문에 우실 정도로 제가 울었어요. 그후에 서울에 올라와서 직장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학원을 알아봤더니 시간이 안맞아요. 그래서 먼저 시간이 맞는 서예학원에 다니게 되었죠. 그것도 공부잖아요.”

8만자 시편 43장 한지에 담아
남편은 이 권사를 “이 여자, 했다 하면 끝을 보는 여자야”라고 평한다. 과연, 서예학원을 다닌지 2년 만에, 그것도 나이 스물에, 60여 명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올라섰다. 한 맺혔던 공부는 어떨까?

새벽 짬을 내서 공부한 끝에 검정고시 패스, 대개 10년 이상 걸리는 방송통신대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석사를 턱 받더니, 내친김에 같은 대학에서 동양미학으로 철학박사 학위까지 땄다. 같이 시작한 동기가 아직도 박사 학위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말이다. 누가 보면 살림은 안 하고 글씨만 쓰는 ‘팔자 좋은 여자’로 보기 십상이다. 천만에.

“할 건 다 해요. 작품 만드느라 진이 빠져 밤 12시에 집에 들어가도 김치 담글 것 담그고 자고 새벽에 일어나 또 새벽기도회 가고요. 제가 잘하진 못하는데 손이 좀 빨라요. 그래도 맛은 있다고들 하던데요.”

이번 개인전에 전시된 시편 작품은 필생의 역작이다. 시작은 이렇다. 어느 날 스승 구당 선생 댁을 방문했다. 선생은 법화경 7만 자를 쓰고 있었다. 선생은 그녀에게 ‘이제 국전 초대작가도 되었으니 뭘 하나 해봐야지’, 하면서 시편이나 잠언을 쓰라고 했다. 잠언은 7만자, 시편은 8만 자. 에이, 이왕이면 시편이다.

“꼬박 1년 걸렸지요. 한지 43장에 시편 전편을 다 썼습니다. 다 쓰고 나서는 말초신경에 있는 기운까지 다 빠져나갈 정도로 힘들었지만 쓸 때는 너무 행복했어요. 저는 여건이 되면 이 시편 작품을 기독교박물관 같은 곳에 기증하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요.”이번에 전시된 작품들도 쓰면서 고생은 됐지만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시회 준비하다가 앓아눕거나 대상포진에 걸린다고 하는데 그녀는 춤을 췄다. 선을 그으며 점을 찍으며 말씀으로 공간을 채울 때마다 고백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행복해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 고난의 말씀을 쓸 때만은 춤을 출 수 없었죠.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 냉방기를 일부러 끄고 썼어요.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느끼며 쓰고 싶었죠. 그래서 냉방기라도 끄며 썼는데…. 그때만 울었어요.”

▲ '여호와'. 칡넝쿨로 만든 갈필로 쓴 여호와는 힘이 넘친다.

서예하면 마음이 치유돼
그렇다. 그녀는 늘 웃는 여자다. 13년 동안 줄곧 지켜봤다는 송하경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이번 전시회 도록에서 그녀를 이렇게 표현했다. ‘초록빛 웃음. 봄날의 파릇한 초록빛 새싹처럼 생기발랄. 만나는 이를 힘이 솟고 즐거워지게 하는 사람. 천진난만하다.’

그녀가 권사로 있는 선린교회 김요셉 목사는 또 이렇게 소개했다. ‘365일 새벽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며 아멘, 아멘 하는 예배 자세로 귀감이 되는 권사님. 홀시아버지 모시고 공무원 남편 뒷바라지 하며 자녀 둘을 잘 키운 어머니.’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옛말을 보면 ‘서(書)’, 즉 글씨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준다고 한다. 지나간 시절에 마음고생 심했던 날도 수두룩했는데 늘 미소가 표정이 된 얼굴은, 지금까지 그녀가 손이 아니라 믿음으로 운필해왔음을 입증해준다.

“이번 전시회에 오신 분들이 은혜 많이 받았다고 해서 저도 기뻤어요. 여러 차례 오신 분들도 많아요. 저도 유교경전같은 것을 썼을 때에는 한 열 번 설명하면 사실 좀 지루했거든요. 그런데 성경말씀은 열 번, 백번을 보고 또 설명해도 그때마다 신이 났어요. 막을 내리는데 너무 서운했고요. 아, 이게 말씀의 운동력이구나, 하고 알았죠. 그래서 병원에 좀 전시할까 해요.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어요. 아,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쓰시려고 하셨구나, 깨달아지더라고요.”

‘성경’, 하면 ‘이은순’이 되고 싶다는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5리나 떨어진 시골 교회를 다녔다. 부흥회 갔다 오는 날이면 한치 앞도 안보이는 캄캄한 시골 밤길. 어떤 날은 비까지 쏟아지고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러면 어린 이은순은 하나님께 감사했다. 번개가 칠 때마다 길이 환히 보이니까. 그 배짱과 열정으로 꿈을 꾼다. 세계 곳곳에서 성경으로 서예전을 열어 한국의 문화와 교회를 자랑하고 싶다. 오늘도 그 꿈에 붓을 적신다. 일필휘지, 거침없이 꿈을 써내려간다.

▲ 산상수훈 앞에서 붓을 잡은 이은순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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