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사고 당한 25세 청춘, 모교 교수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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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사고 당한 25세 청춘, 모교 교수로 돌아오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4.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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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보건과학대학 작업치료학과 김종배 교수
누구 못지않게 꿈 많고 활달한 대학생이었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신입생 김종배는 대학생활을 신나게 즐겼다. 미팅을 무려 50번이나 하며 대학가의 밤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데모하다가 유치장에도 들어가 봤다. 산악부원이 되어 지리산을 네 번이나 종주했다.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아 대학 졸업 후 모교 교수를 꿈꾸며 카이스트(KAIST) 산업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서울 올림픽조직위원회 전산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의 이십대 청춘은, 이렇듯 구름 한 점 없이 창창했다. 적어도 스물다섯 나이까지는.

▲ 인터뷰 중 서너번 강직 현상이 김종배 교수에게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사고의 위험도 늘 그의 길에 깔려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이라며 감사했다.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에 충격

1985년 9월 7일, 친구의 옥탑방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 3m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가 땅에 부딪히며 목이 꺾였다. 다섯 번째 목뼈를 다쳤다. 가슴 아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팔꿈치를 굽히는 것만 가능할 뿐, 손가락으로 연필조차 쥘 수 없었다. 부모님이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했다. 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주말이면 북한산 인수봉 암벽을 훨훨 날던 때가 아득했다.

“앞이 캄캄한, 아주 그냥 캄캄한, 칠흑 같은 암흑만이 내 앞에 놓여있는 것 같았어요. 부모님이 책상 앞에 앉혀놓으면 하루 종일 창 밖만 보는 거예요. 그 당시엔 전동 휠체어도 없어서 밖에도 나갈 수 없었어요. 무기징역이더라고요. 평생 무기수로서 감옥에 갇혀 사는 삶이 된 거죠. 부모님과 가족에게 짐만 되는 인생. 저 때문에 우리 가정도 파탄 지경이었죠.”

그때 큰누나가 찾아와 성경책을 내밀면서 한마디 했다. ‘우리가 이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 성경을 펼쳤다. 팔꿈치로 넘겨가며 읽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충격을 받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게 성경말씀인 줄 몰랐다. 연세대 교훈이었다. ‘진리-자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때는 교훈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대학을 진리 탐구의 도장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대학에서 학문을 열심히 공부해서 진리를 터득하면, 그래서 제 꿈처럼 교수가 되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거죠. 그런데 그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었어요.”

더구나 진리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었다. 그가 좇던 세상의 진리가 아니었다. 진리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하는데, 세상의 모든 것은 변했다. 인문 철학도, 이데올로기도, 심지어 자연과학조차 새로운 이론이 늘 등장했다. 왜 그럴까. 세상 모든 건 피조물이다.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만이 불변하는 진리다.

“제가 사고 후 암흑 같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날 그 말씀을 깨닫고 나니, 암흑 속에 한줄기 강한 빛이 좍, 내려오는 느낌이었어요. 몸은 그렇게 되었지만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몇 년 성경만 읽었어요. 하루 종일 찬송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다시피 불렀고요.”

▲ 사고 나기 전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찍은 사진.
감옥인줄 알았더니 기도원이었네
감옥인 줄 알았더니, 기도원이었다. 그는 해방되었다. 더 이상 절망에 매어있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지만 마음은 자유로웠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사고 당한 그를 보면서 괴로워하는 부모님을 보는 게, 그에겐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통해 자유함을 얻자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에서도 풀려났다. 그 동안 기피했던 친구들에게도 연락했다. ‘친구야, 나 좀 도와줘.’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워하며 그를 찾아왔다. 지리산을 몇 차례나 가로 질렀던, 그 당찬 김종배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 마침 우리나라에 컴퓨터 시대가 열렸죠. 전신마비인 저도 뭔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긴 겁니다. 얼마 후엔 전동 휠체어도 보급되었고요. 제가 카이스트 다닐 때에 컴퓨터를 잘 다뤘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저와 같은 장애인들을 돕는 활동들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재활공학에 대한 학문적 열정이 뜨거워졌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그의 체험에 따르면, ‘하나님’과 ‘기술’이다. 먼저 하나님을 통해 영적, 정신적 재활을 해야 한다. 그러면 긍정 마인드로 변화된다. 이제 기술을 통해 육체적, 활동적인 재활을 이룬다. 그는 공부를 중단한지 16년 만에 미국 피츠버그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떠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재활공학을 배워 한국에 돌아와 좋은 일을 하고 싶으니 도와주세요. 정말,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인도해주셨어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학비와 함께 월급을 주는 장학금을 받은 거예요. 또 지도 교수를 잘 만났어요. 제가 컴퓨터로만 일할 수 있는데, 마침 그 자리가 비어 있어서 교수님도 반가워하시고, 저도 당연히 좋았죠. 그 교수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박사 학위도 땄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밖에는...”

미국은 장애인에게는 특히 좋은 나라다. 조교로 일했던 그의 집안에 엘리베이터를 놓아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처음 서원을 지켰다. 귀국한 그가 국립재활연구소에서 5년간 일하면서 특허출원한 발명품만 16개. 아쉬움도 있다. 이 편리한 기술들이 장애인들에게 상용화되려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데 이건 아직 미흡하다.

어느덧 돌아보니 꿈은 이뤄지고
“학기 전에 연세대 교수 전체 수양회에서 총장님에게 교수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제가 연대 교수라는 게 실감이 났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교의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사고 나서 그걸 포기했고 꿈조차 잊어버리고 살았죠. 지금 보니 제가 교수가 되어 있는 거예요. 꿈이 이뤄진 거예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죠. 제가 사고 없이 건강하게 살았어도 이 정도 이상은 힘들었을 겁니다.”

김 교수는 성경말씀 중에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기도케 하시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시편 107:30)는 말씀을 좋아한다. 내가 기도했고,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믿는다면, 오늘 내가 처한 상황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주신 길이다. 그 자리에서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이것이 지체장애 1급의 역경을 이겨내게 한 그의 모토다.

인터뷰 중에 서너번 강직 현상이 김 교수에게 찾아왔다. 근육을 자연스럽게 풀어줄 수 없는 마비 환자에게 일어나는 떨림 현상. 그는 아직도 힘들다. 한국에 와서 욕창 때문에 벌써 두 번이나 수술을 했다. 방광 조절이 안돼 방광염의 위험이 항상 도사린다. 갑작스러운 사고의 위험도 늘 그의 길에 깔려있다.

“그런데 주위를 보면 그래요. 문제없는 사람, 문제없는 가정이 없어요. 장애인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정상인들이 더 많이 하잖아요. 중요한 건 자기 인생을 어떻게 보고 사느냐죠. 제가 앞으로도 이렇게 큰 고통과 장애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시거든요. 건강해도 이런 은혜 받기는 어렵잖아요.”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에게도 감사할 뿐이다. 사랑스런 딸을 낳아준 아내, 그 동안 많은 것을 희생해 온 아내가 이제 자기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싶다. 누가 경상도 사나이 아니랄까봐, 그 동안 아내에게 너무 무뚝뚝했다.

혼자 있을 때면 부르는 애창곡이 있다. ‘어찌하여야 그 크신 은혜 갚으리, 무슨 말로써 그 사랑 참 감사하리요, 하늘의 천군천사라도 나의 마음 모르리라, 나 이제 새 소망이 있음은 당신의 은혜라, 하나님께 영광 날 사랑하신 주, 바치리라 모두 나의 일생을 당신께’

주님께 여생을 바치고 싶다. 장애인들에게 하나님과 기술을 전하는 게 그의 사명이다. 캠퍼스에서도 그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간증의 자리에도 서고 싶다. 끔찍했던 사고의 트라우마를 완벽하게, 더 큰 은혜로 깨끗이 씻어주신 하나님! 그분의 사랑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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