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뜨거운 열기도 복음 열정을 막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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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뜨거운 열기도 복음 열정을 막을 수 없죠”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4.04.10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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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보르네오 강신오 선교사
▲ 보르네오신학교와 그곳에서 공부하는 현지 신학생들.

이슬람국가 기독교 탄압 속 추방 위험도 수십 차례
비전센터 통해 목회자 교육•차세대 리더 양성 나설 것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 그 곳에서도 아시아의 허파라 불리는 밀림의 섬 보르네오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가 있다. 대학생 시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움에 순종했던 선교의 길. 올해로 23년째 이어지는 그의 선교행전에 쉼표는 없다. 교회를 향한 핍박과 낯선 환경에서의 어려움, 가난과 피곤은 선교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곳에선 반드시 변화가 나타났고, 하나님의 열매가 맺혔다. 선교의 보람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선교지로 부르신 하나님 음성
“보르네오”.

귓가에 울린 음성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1980년 열린 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는 청년들에게 헌신을 요구했다. 성령이 임재한 뜨거운 순간 모두들 통성기도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한 청년은 냉소적인 자세로 헌신에 대한 강요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의 귓가에 “보르네오”라는 음성이 들렸다. 옆 사람의 소리조차 분별하기 어려운 통성기도 시간에 들려온 엄청난 울림에 소름이 돋았다. ‘누가 내 옆에 있단 말인가?’ 두려움에 옆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음성이 들렸다. “보르네오”. 거역할 수 없는 음성이었다. 온몸에 전율이 끼치는 그 목소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23년째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는 강신오 선교사가 보르네오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하나님의 음성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할 일이 많다며, 성남에서 어린이전도협회를 개척해 어린이 복음전도 사역을 시작했고 부르심을 외면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흐르고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사인을 보냈다.

1991년 1월 불과 2주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선교지로 부르시려면 정확한 사인을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후배 선교사를 통해 그를 이끄셨다. 그것도 음성을 통해 들려주신 ‘보르네오’ 가까이로 말이다.

죽음의 섬이었던 보르네오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선교는 모험 그 자체였다. 오랑아슬리에서 원주민 사역을 했고,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이주 노동자 사역을 시작했다. 말레이시아로 일하러 온 아프리카 이주민을 대상으로 교회도 개척했다. 6년 동안 낮에는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영어 예배를 드리고 저녁에는 말레이시아인과 인도네시아인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렸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당시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3년 후에는 꼭 현지인 선교사를 파송하게 해주세요.” 사람을 세우는 사역을 시작한지 6년 만에 하나님은 선교사 파송을 허락하셨다.

이렇듯 선교는 보람과 은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사실 알려지지 않은 고난의 시간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모슬렘 지역이다보니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대단했죠. 3개월 비자로 들어가 불법 체류로 버텼고, 교회도 불법이어서 스무 번 이상 경찰에 잡혀갔어요. 공권력에 의해서 교회가 폐쇄된 적도 있고요.”

이주민 사역을 하다보니 목사도, 성도들도 모두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다. 도망하고 문 닫고를 반복하길 9년 째, 말레이시아를 떠나 정착한 곳이 하나님이 명하신 그 곳 ‘보르네오’였다.

보르네오섬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세 나라의 영토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에서 강신오 선교사가 정착한 곳은 인도네시아 지역. 전체의 80%가 밀림인 곳이다.

“제가 정착한 곳이 뽄띠아나였어요. 이 지역은 두 종족 간 갈등이 일어나면서 3개월 동안 2천 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했지요. 오후 4시만 되면 상가가 문을 닫고 밤이 되면 아예 인적이 없는 죽은 도시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어요. 이 도시를 살려달라고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 곳곳을 다니며 기도했습니다.”

복음의 꿈 ‘비전센터’에 담다
강 선교사는 어린이전도협회의 파송을 받았다. 매주 금요일마다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사역자들과 함께 기도를 했다. 그 때 하나님은 환상을 보여주셨다. 밀림이 불에 타는데 나무는 타지 않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강 선교사는 그것이 성령의 불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허파로 불리는 보르네오에 영적 산소를 공급하라는 명령, 영적 태풍을 일으켜 동남아 복음화에 힘쓰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을 키우는 일에 먼저 팔을 걷고 나선 강신오 선교사는 지난 2004년 보르네오신학교를 세워 신학과 기독교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보르네오신학교는 2011년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신학대학교 허가를 받았고, 강 선교사 소속 교단인 예장 백석총회에서 제1호 해외 인준 신학교로 인정받았다.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과는 협약도 맺었다.

신학교를 세우고 난 후 그는 다시 보르네오선교회(Borneo For Christ)를 설립했다. 변화가 느린 청년 선교에 대한 고민은 더 어린 영혼에게 향했다. 강신오 선교사는 ‘차세대 지도자 훈련원’을 세워 정글지역의 아이들 가운데 영특한 아이들을 모아 공동체 생활을 하며 기독교 신앙으로 변화를 시키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리더로 세워지는 훈련을 통해 대학 리더 사역으로 이어가게 하는 것.

차세대 지도자 훈련원에는 8세부터 고등학생까지 공동생활을 하면서 매일 성경 암송과 성경 읽기, 새벽기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정부와 한국 교회가 인정하는 신학교와 선교회, 차세대 리더 사역들을 진행하는 강 선교사에게는 더 큰 꿈이 있다. 바로 ‘비전센터’를 건립하는 꿈이다.

한국인 교수들이 신학교 교환 강의를 하고 현지 지역 목회자 대상 세미나를 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전도와 큐티 훈련을 시켜 대학과 직장에서 주님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국민 선교사 훈련도 비전센터를 통해 계획하고 있다. 1~2년 집중 훈련으로 교회 없는 곳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보르네오섬 내 7개 주에 20명 씩 크리스천 ‘지하드’를 파송하는 꿈도 꾸고 있다.

정보를 얻고 목회자 간 교제가 어려운 보르네오에서 이들이 자료를 찾고 설교를 준비하며 서로의 고충을 나누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비전센터 계획의 일부다.

비전센터는 ‘한류 선교’의 핵심 기지가 될 전망이다. 강 선교사는 “인도네시아에 한류 열기가 대단하다. 컨벤션홀을 만들어 주일에는 영어예배를 드리고 한국어 교육과 한국 드라마 상영 등 한류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선교 사역을 결단하던 지난 91년.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궁핍하지 않게 사역의 재정을 책임져 주세요. 그리고 제가 아프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니 건강을 책임져 주세요.”

검게 그을린 그의 피부는 건강해 보였고,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때마다 필요를 채워주셨다. 비전센터를 세우겠다는 그의 계획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이미 정부로부터 건축허가도 받아냈다.

강신오 선교사는 지금 이렇게 기도한다. 비전센터 건축을 담당할 정직한 건축업자를 만나게 해주시고, 차세대 훈련원 사역에 함께 할 사역자들을 보내달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복음 전파 열정이 식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힘든 사역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강신오 선교사. 영혼구원을 향한 그의 선교 열정은 적도의 뜨거운 열기를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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