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코가 석자라도 도우니까 기적이 일어나던데요”
상태바
“제 코가 석자라도 도우니까 기적이 일어나던데요”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4.09 0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두로 사람 키우고 싶은 한만두식품 남미경 대표
경기도 양주 은현면 그루고개로 371번길 언덕을 넘어가자 숲 속에 거대한 최신 건물이 눈에 띤다. 무려 50여 가지의 만두를 제조하는 한만두식품이다. 공장 안을 들어갔다. 무슨 반도체 회사인줄 알았다. 직원들이 하얀 옷으로 철통같이 온 몸을 감싼다. 두 번에 걸쳐 손을 씻고 들어간 공장 안은 거대하다. 동네 만두가게라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친다. 위생적인 자동기계시설에 사람들의 손맛이 결합되자 갖가지 먹음직스러운 만두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온다. 하나 집어 먹어본다. 맛있다!

우리나라 만두 제조업체 상위 10%에 속하는 ‘한만두식품’. 대표 남미경 권사는 착한 CEO로 소문났다. 한때는 수익금 전액을, 지금은 최대 20%까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 직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어려운 시설을 찾아 봉사활동도 한다.

‘만두를 빚는 사람이 행복해야 만두도 맛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직원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갖는다. 매달 문화행사, 볼링대회, 독서대회, 찬양대회를 연다. 물론, 비용은 회사에서, 시간은 당연히 일과시간 내에. 볼링대회 있는 달엔 매주 조기 퇴근해서 볼링 치게 하고 밥을 사준다. 독서대회 때에는 만두 만드는 시간에 교육장에 모여 사준 책 읽으면서 간식 먹고 놀다가 졸다가.

“제가 선교사적 마인드로 사업을 하거든요. 한만두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데, 직원들에게 잘해줘야 복음이 전해지지 않겠습니까? 만두를 만드는 공장이라기보다 만두를 통해서 사람 빚는 회사이고 싶어요. 제 꿈이 학교 같은, 가정 같은, 교회 같은 회사거든요.”

▲ 남미경 권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회사 내 대안학교 학생들과 함께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 집에서
권사에게는 꿈을 갖게 된 스토리가 있다.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자랐다. 대문 열면 앞집이 닿을 듯 좁은 골목의 단칸방이었다. 아버지는 구두 디자이너였다. 꽤 이름난 실력가였지만 자존심 탓에 가난을 자초했다.

소녀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남미경 권사는 대학을 포기하고 아모레 태평양화학의 미용사원으로 일찍부터 산업 전선에 뛰어든다. 스물넷에 일찍 한 결혼은 두 아이만 남기고 이혼으로 끝났다. 먹고 살아야 했다. “친구 권유로 시작한 보험 일을 정말 열심히 했죠. 내성적이지만 아모레 미용사원을 하며 배웠던 경험을 살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궂은 일을 다 해주며 마음을 얻었어요. 시작한지 2년 만에 제 월급이 2천만 원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제대로 된 명함’을 갖고 싶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로 잘 대해줬어도, 명함을 내밀면 상대방은 늘 싸늘해졌다. ‘흥, 이래서 잘해줬구나’라고 쏘아붙이는 느낌. 사람 취급을 못받는 느낌. 이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때 만두를 아주 잘 만드는 공장을 소개 받았어요. 총판을 달라고 했더니 여자라고 안된다는 거예요. 3일을 쫓아다녀서 받았어요. 큰 백화점, 마트에 납품을 하면서 한참 잘나갔는데, 대장균 만두업체 리스트가 뉴스에 터진 거예요. 실제적으로 제가 파는 만두는 그 업체 것이 아니었지만 그게 구별되나요. 쫄딱 망했죠.”

그 안에는 더러워서 못 들어간다
그러자 갈 곳이 한군데 밖에 없었다. 교회였다. 교회는 스무살 때에 처음 나갔다. 오로지 복받으려고 갔다. 매일 새벽기도, 철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주여” 삼창하며 부르짖었다. 이때 신학생도 많이 울렸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믿음까지 좋아 보이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목사 부인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돈 많은 장로 부인이 되고 싶었다. 남 권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때 신학생들 울려서 제가 벌 받았나 봐요. 그런데 보험해서 부자가 되었으니 이제 뭐하러 교회에 나가겠어요. 골프 약속 줄줄이 있는데 교회 갈 틈이 있나요. 그런데 망하니까, 교회밖에 갈 곳이 없더라고요. 매일 교회에 갔어요. 10년 예수 믿었어도 기도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교회에서 멍하니 앉아있었죠. 앉아있다 예배드리다가, 끝나면 또 앉아 있다가. 그때 교회에서 미국, 멕시코 아웃리치 포스터를 보게 되어 거기 따라갑니다.”

그녀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난다. 집회에서 다리를 저는 할아버지가 선교사의 기도를 받더니 지팡이를 집어 던지고 가는 것을 본다.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예배에 집중했다. 기도가 달라졌다. 찬양하는 박수도 뜨거워졌다.

“그때 허공에서 하나님이 저를 보는 게 느껴졌어요. 아, 나를 지키고 계셨네요,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 궁금해졌어요. 어릴 때 성경공부하면 하나님이 제 마음 속에 계신다고 배웠거든요. 그래서 그분에게 물었어요. 여기 계시지 왜 거기 계세요? 그분이 이렇게 대답하시는 거예요. ‘그 안이 더러워서 못 들어간다!’ 깜짝 놀랐죠. 그대로 고꾸라져서 두 시간은 울었던 것 같아요. 회개하고 새 삶을 다짐했지요”

한국에 돌아온 남 권사는 그때부터 교회, 집, 공장만을 다니며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다. 만두 공장을 세우고 직접 만두를 만들었다. 비법을 알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만두공장, 식품업체를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2시간 잔소리 듣고 꼴랑 5분 공장 볼 수 있었지만 감지덕지하며 또 찾아갔다. 몇 번을 찾아가면 노하우가 보였다.

“그래도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포기하고 선교사로 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시는 거예요. ‘선교사로 가면 뭐하다 왔느냐고 물을텐데 그때 망해서 왔다고 하면 선교가 되겠느냐? 빚은 갚고 가라.’ 그러시면서 하나님이 제게 물으셨어요. ‘너 최선은 다했냐?’”
 

▲ 만두 제조 현장에 자주 내려가 만두를 살펴보는 남미경 권사.

최선은 코에서 피나는 것이다
최선이 뭘까. 직원에게 물어봤다. 답이 돌아왔다. “최선이란 코에서 코피 나는 거죠.” 그때부터 하루에 두 세 시간 자면서 일을 했다. 새벽 3시에 만두 속 비비고, 6시에 반죽해서 만두피 만들고, 9시에 아줌마들 출근하면 같이 만두빚고, 저녁 6시에 아줌마들 퇴근하면 혼자 만두를 저울에 재고 박스에 담아 포장해 냉동차에 싣고, 밤이 되면 배달을 갔다. 이렇게 2-3년, 빚을 다 갚고 집세도 냈다.

“하나님께 말씀 드렸죠. 이제 빚 다 갚았으니 선교사로 갑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제게 뭐라고 그러시는 줄 아세요? ‘여기가 선교지다!’ 그래서 그 후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일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이익이 나면 100퍼센트 어려운 이웃에게 줬죠. 지금은 여건이 그렇게까지 안돼서 수익의 10에서 20퍼센트까지 돕죠. 하나님께서 사무엘상 30장 말씀을 제게 주셨어요. 다윗이 시글락에서 아말렉에게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경황이 없는 그 상황에서 에봇을 입고 기도하죠. 도울 수 없는 형편에서 애굽 소년을 돕죠. 그 도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요. 저도 사업하다 보면 때로 내 코가 석자라 돕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남을 도우니까 제게 기적같은 좋은 일들이 일어나더라고요.”

20대 어린 나이에 아이 둘 키우며 여자 홀몸으로 거친 세월을 헤쳐 나와 오늘 1,800평 땅에 800평 건물을 세우고 직원이 60여 명 되는 회사의 대표가 된 남미경 권사. 한때 좋아했던 골프마저 끊으니 사람 만날 일이 없다. 회사가 진짜 집이고 학교이며 교회다. 재혼할 기회가 없을 만큼 숨 가쁘게 살아온 인생, 때로 외롭고 고단할 때도 있겠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만두피처럼 뽀얗게 웃는다.

“금과 은 없어도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거든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