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영혼 살리는 ‘골든타임’, 결코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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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영혼 살리는 ‘골든타임’, 결코 놓칠 수 없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4.02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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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로 뽑힌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허승곤 교수 부부

비오는 날 밤이었다. 복통이 나서 방바닥을 뒹굴던 초등학생 허승곤은 엄마에게 업혀 병원을 찾았다. 그때가 새벽 2시경. 피곤한 표정으로 나온 의사가 손쓰자 단박에 복통이 사라졌다. 신기했다. 그때부터 꿈 꿨던 의사. 그 길에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의사로 만들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은 늘 그를 잊지 않으셨다.

그는 최근 한 언론에서 뽑는 ‘베스트 닥터’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의(뇌혈관질환 수술 분야)로 선정됐다. 전국의 대표적 의사들에게 물었다. ‘가족이 아프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는?’ 가장 많은 호칭된 이가 연세대 의대 신경외과 허승곤 교수(63, 대조동 우리들교회 안수집사). 그러나 그는 자기 실력만을 믿지 않는다. 정성을 다한다. 보통 하루 한차례 회진하는데 비해 그는 두 차례씩 회진을 돈다. 주일 아침에도 병원에 나와 환자들을 살핀다. 그는 자상하다. 지방의 환자가 헛걸음하지 않도록 미리 배려한다.

무엇보다, 그는 기도하는 의사다. 수술을 앞두고 아내 권영주 전도사(61)와 함께 환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육체적인 건강과 회복뿐만이 아니다. 환자의 영혼까지 구원 받도록 복음을 제시하고 기도한다. 이들 부부에게 병원은 분초를 다투는 치열한 선교현장이다.

▲ 진료하고 있는 허교수

고생을 사서 하는 주치의의 아내
병원에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다. 각 질환이나 응급상황에서 환자의 생존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간. 이들 부부는 육체와 영혼을 살리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남들이 쉴만한 한밤중에도, 이른 아침에도, 병상의 환자가 마음 쓰이면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사인을 주신 것이다. 지금이다. 가서 복음을 전하라. 위하여 기도하라. 거부할 수 없다. 그것이 권영주 전도사의 삶이다.

“얼마 전에는 동정맥 기형으로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을 만나 기도해줬어요. 그날 밤에 절박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아이에게 그 기도는 무의미하다는 거죠. 그래서 밤에 한잠도 못자고 다음 날 수술 바로 전에 다시 만나 복음을 전했어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라고요. 처음엔 반발하더라고요. 그러나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결국 영접했어요. 수술도 잘 되었고, 지금은 뛰어다녀요. 교회도 잘 다니고요.”

▲ 앙골라에서 복음을 전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권 전도사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주치의의 아내라는 ‘빽’이 있어 환자들이 노골적으로 거부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이름난 대학병원 교수의 아내로 우아하게 살 수도 있는데, 그녀는 고생과 수고를 사서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도 서너 번 거반 죽었다 살아난 경험이 있다. 목의 동맥이 터져 더 이상 흘릴 피가 없다고 할 만큼 쏟아낸 위기를 만났다. 왼쪽이 완전 마비가 된 적도 있다. 한국 최고의 의사가 남편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병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치유해주셨다. 그러니, 남편이 수술하는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나? 이뿐 아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완전 불신자였던 그녀였다. 늦게 얻은 구원의 감격은 더 컸다. 이 체험을 나누지 않는다면 아마 열정적인 그녀의 심장은 터져버릴지 모른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남편은 제가 서울여대 학생회장 때에 만났어요. 그때 학생회장은 파트너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는 선배를 통해 서울대 의대생이 나오기로 했는데 펑크가 난 거예요. 그 선배가 연대 의대는 어떠냐고 하기에 제가 그랬죠. 시간이 없으니까 아무 애나 키만 크면 된다고요.”

그 ‘아무 애’가 바로 허승곤 교수. 이날 만남 이후 이번엔 허 교수가 아내를 연대 축제에 초대했다. 그날 나란히 연대 동문쪽으로 들어가는데 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들의 로맨스가 시작됐다. 당시 5.16장학금을 받는 등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유학의 꿈을 품었던 그녀에게 남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불꽃 한방에 맘이 달라졌다. 하늘이 움직인 게 아닐까.

“저는 그때만 해도 교만했죠. 교회도 몰랐고요. 그런데 남편은 데이트하면서 항상 저를 교회로 오게 했어요. 제가 늦으면 남편이 어디 앉아있는 줄 아니까 찾아가요. 가보면 남편이 두 손을 들고 막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징그러운지. 대학생이 무슨 그렇게 기도를 해요? 또 남편은 의료 선교사를 구한다는 교회 광고를 보면, 나도 저기 합류할 거라고 말해요. 그걸 보고 제가 속으로 그랬죠. 애는 그냥 알다가 끝내야 겠다. 무슨 아프리카야….”

그러나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걸 사람이 어떻게 막을까. 결혼해서 만난 시어머니의 신앙과 일치되는 훌륭한 인품에 반해버렸다. 질병의 질곡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깊이 체험했다. 육체의 병을 담당하는 남편 허승곤 교수, 영혼의 병을 담당하는 아내 권영주 전도사, 하나님께선 이 부부를 최고의 팀사역자로 쓰려고 부르셨다.

“제가 결혼 후에 90년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연대 의대 조교수로 있다가 전주예수병원 과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때 모두 말렸죠. 거기 가면 여기 다시 못온다고요. 그런데 제가 그랬어요. 지방도 좋은 의술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서울대, 연대 의사가 아무도 안내려가면 되겠느냐고요. 의료 선교의 마인드로 내려간 거죠.”

 

앙골라에서 기적을 체험하다
거기 가서도 이들 부부의 팀 선교사역은 계속됐다. 월급 300만원 중에 200만원을 전도비로 썼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다. 거의 모든 환자들의 집을 찾아가서 선물도 주고 복음을 전했다. 크리스마스 때면 세브란스병원에 있을 때보다 성탄카드는 확 줄었지만 이들 부부는 마냥 행복했다.

그렇게 잊혀진 줄 알았는데, 허 교수의 스승인 이규창 교수는, 그 많은 제자들 중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허 교수를 수제자로 다시 불렀다. 그리고 오늘, 그 스승의 자리에 앉아 베스트 닥터로 뽑히면서 그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2009년엔 정말 저희가 36년 동안 기대했던 의료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3달 휴가를 내서 두 달을 아프리카 앙골라에 가서 우리 부부가 의료선교를 한 거죠. 두 달 동안 저는 그곳 사람들을 치료해주었고 아내는 밤낮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부부는 유서를 썼다. 그 당시 내전 직후였던 앙골라는 밤마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침이면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낮에는 황열병이, 밤에는 말라리아가 죽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그러나 기적은 절박한 곳에서 일어난다.

▲ 앙골라에서 최초로 실시된 뇌동맥류 수술 장면

▲ 앙골라 최초 뇌동맥류 수술 기념사진

그곳에서 허 교수는 앙골라 역사상 처음으로 뇌동맥류 수술을 시도해 성공적으로 마쳤다. 권 전도사는 밤낮으로 복음을 전했다. 사비 1천5백만 원을 들여 이민가방 10개에 담아간 생필품도 함께 나눠줬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방언’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녀를 욕하며 마음 아프게 했던 한 아이가 회심하는 감동도 있었다. 장작개비 포개 놓은 데 머리만 달려있던 것 같던 아이가 안아주고 미음을 먹여주고 기도해주자 귀국 일주일 전에 일어나 걷는 기적도 보았다.

오늘도 이들 부부의 팀사역은 계속된다. 수술이 결정되면 환자의 상태를 연구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아내에게 환자를 위한 기도 미션을 주는 허 교수. 그 미션을 받아 병상이든지 교회든지 어디서든지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권 전도사. 이들 부부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무한대가 될 수 있다는 부부의 신비를 보여주고 있다.

▲ 앙골라 아이들과 함께한 허 교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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