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오래된 약속의 가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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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오래된 약속의 가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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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4.0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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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병원 609호실, 설희는 침대에서 누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지난날 비룡산에 삼일원 밑 개울 옆 동산에서 선린과 놀던 때를 회상하고 있었다.

“오빠, 이거 봐.”
“정말 예쁘구나. 너처럼.”
“이 꽃 이름이 뭐야? 오빠?”
“이 꽃은 설연화(雪蓮花)라고 해. 이른 봄눈 속에서 피는 꽃이란 말인데 봄날 제일 처음으로 이 꽃을 보는 사람은 그 꿈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있어.”
“그럼 내 꿈이 이루어지겠네.”

설희가 비룡산 개울가에서 벚꽃을 꺾으려다 폭포수 아래 암룡소로 추락했을 때 선린이 그를 구해낸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선린은 숲길에서 선린이 설희를 등에 업고 삼일원을 향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오빠, 숲이 어두워서 앞이 안 보여.”
“괜찮아. 내가 너의 빛이 되어 줄께.”
“오빠, 힘 안 들어?”
“안 들어.”
“오빠, 내가 좋아?”
“그래.”
“왜 좋은데?”
“너의 순수함 때문이야.”
“어떤 순수함인데?”
“꽃과 같은 순수함.”
“꽃이 시들면 어쩔 건데?”
“오래 되면 시들겠지. 시들어도 가치는 남아 있을 거야. 설희, 넌 커서 어떤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니?”
“나를 옆에서 잘 지켜줄 사람.”

설희는 그의 아버지나 그의 어머니가 그의 곁에서 그를 잘 지켜주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서 선린에게 말했다.

“내가 설희를 지켜주면 안 될까?”
“오빠 자신 있어?”
“내가 노력할게.”
“믿어도 돼?”
“너 지금 허락한 거니? 이제 우린 약속한 거다.”

설희가 잠들고 있는 사이 설희의 아버지 백진승과 그의 부인 정희선이 오랜만에 설희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의논을 했다.

“설희 어머니, 설희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마 조울증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연락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까?”
“설희가 진 선생에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둘이 사귑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그러나 설희가 무슨 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가 나타나 그를 보호했어요.”

정희선은 설희와 선린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삼일원 기도처에서 그녀가 기도할 때 선린이 설희를 데리고 다니던 일, 그가 폭포에서 암룡소로 추락했을 때 구해낸 일, 설희가 가출을 하여 길에서 실신하였을 때 그를 병원으로 데려간 일, 그가 실무도로 유괴되었을 때 그를 구해낸 일, 항상 설희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의 곁에는 선린이 함께 있었다.

“설희 아버지. 선린 청년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훌륭한 청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설희의 배우자로서 어떤가요?”
“설희가 좋아할까요?”
“그만한 청년 요즘 세상에서 찾기 힘든 사람입니다.”

설희는 부모님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설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마다 선린은 나타나 도와주었다. 아니 선린이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을 때는 설희는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설희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그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희의 대학 동창 김민정이 설희를 만나러 그의 병실을 찾아왔다.

“너 어떻게 된 거니?”

김민정이 설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 세상이 싫어졌어.”
“세상이 싫어진 이유가 뭔데?
“부모에게 기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마땅히 자립할 수도 없었어.”
“그렇다고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니? 너 병원에 가야겠다.”
“여기가 병원인데 어딜 가?”
“아니, 이 병원 말고 다른 신경과 병원.”
“나를 정신 이상자로 생각하니?”
“그게 아니라 네가 조울증에 걸린 것 같아서.”
“난 병원에는 가기 싫어.”
“병원을 가기 싫으면 다른 방법이 있기는 있는데?”
“어떤 방법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아니면 사랑에 빠지거나, 취미생활을 갖는 방법이야.”
“너 의사라도 된 것처럼 말하는구나.”
“나 이번에 좋은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보려고 해. 같이 가지 않을래?”
“어떤 회사인데?”
“시온미래광학 주식회사라는 곳이야. 태양광발전을 하는 미국계 회사인데 앞으로 전망이 밝고 연봉이 높고 해외 출장도 자주 갈 수 있데.”
“민정아, 너는 왜 시집을 안 가니?”
“좋은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어. 넌 왜 안 가니?”
“나를 기다리고 있은 사람이 있는데 도망칠 수 없어.”
“왜, 그 사람이 모자라기라도 하냐?”
“아니야,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면 빨리 그의 사랑을 받아 주는 것이 좋지 않겠니?”
“나는 성공한 다음에 결혼을 하려고 해.”

S병원 1층 로비에서 백진승이 진선린을 향해서 말했다.

“나를 알아보겠는가?”
“예, 설희 아버님 아니신가요?”
“늦었지만 설희를 도와준 일에 대하여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네.”
“괜찮습니다.”

두 사람은 로비 의자에 앉아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했다.

“자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 행복의 조건이 각각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 때 나의 능력, 재산, 명예 등을 소유한 것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네. 내가 캄캄하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방황하다가 한 줄기 빛을 보았다네. 밝은 곳에서 보지 못하던 빛을 어둠 속에서 볼 수가 있었네. 내가 모든 것을 상실한 후에야 상실한 것들의 가치를 깨달았다네. 다시 말하면 소유라는 것이 행복의 필요조건이 될지는 몰라도 충분조건은 아니었다네. 행복은 무엇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네.”

선린은 설희의 아버지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있었다.

“자네 왜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나?”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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