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커피 내리니 그리스도의 향기, 더 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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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커피 내리니 그리스도의 향기, 더 진하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3.20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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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외할머니’ 대표 김헌래 목사
▲ 공정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커피들을 로스팅하는 기계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헌래 목사. 그는 처음부터 교회에서 카페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카페 외할머니’에는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닌, 할머니의 손맛을 살린 여러 가지 음료도 맛볼 수 있다.

할머니가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타지’ 않고 ‘내린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그렇다면 ‘바리스타’ 할머니인데, 뭔가 색다르다. 인천 부평구 부개역 근처 ‘카페 외할머니’에는 커피 내리는 할머니들이 여럿 있다. 바리스타 과정을 배웠어도 써주는 곳이 없어서 한숨만 짓던 할머니들이 아예 카페를 차린 것이다. 여기엔 이곳 대표인 김헌래 목사(등불감리교회)의 리더십이 컸다. 그에 따르면 커피는 신의 축복이다.

원두커피는 우아하게 먹는 보약
“커피는 처음에 마시는 약이었습니다. 처음 커피를 발견한 사람이 이것으로 사람들을 치료해서 이슬람권에선 성자로 추앙받았죠. 동양의 차 문화는 일을 끝내고 쉴 때에 어울리죠. 서양의 커피는 일을 시작할 때에 마십니다. 왜냐하면 커피를 마시면 힘이 나거든요. 마라톤 선수가 커피를 마시면 마지막까지 힘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운동 전에 커피를 마시면 근육통을 예방해주고 다이어트에 효과를 줍니다. 암도 예방해주고 당수치를 낮춰주고 혈액의 혀전을 녹여 뇌졸중을 예방해주고 항우울 효과가 있어 커피를 마시면 자살율이 3분의 1로 줄어듭니다.”

만나자 마자 시작된 커피 예찬은 끝이 안보인다. 그러나 올바른 커피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김 목사의 열강에 좀 더 귀를 기울여보자. 이렇게 몸에 유익하다는 커피는, 당연히 인스턴트 커피를 말하는 건 아니다. 원두커피 이야기다. 인스턴트용 커피는 쓴 맛만 강하다. 설탕이나 프림을 넣어 단맛이나 고소한 맛으로 먹는데, 별 영양가는 없다.

좋은 원두커피는 오묘한 맛이 난다. 이것을 ‘바디’라고 부른다. 마시는 끝에 신맛이 느껴지고, 목젖을 타고 넘어갈 때는 쓴맛이 나고, 삼키고 나면 단맛이 남는다. 설탕의 단맛과는 다른 차원의 달착지근함이다. 입 안에 이런 여운과 잔향이 맴돈다면 좋은 커피다.

이런 커피는 클로로겐산이나 나이아신 등 몸에 좋은 성분이 커피에 많이 있다는 증거. 클로로겐산이 열을 만나면 신맛이 나는데, 너무 오래 볶으면 이 맛이 사라지고 쓴맛만 남는다. 커피에서 신맛이 느껴진다면 그 집 커피, 괜찮다는 증거다. 쓰기만 하다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내리는 커피가 이렇게 몸이 좋다지만 맛은 아직 타먹는 봉지커피에 길들여있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준다. 할머니들도 처음 카페에 일하러 왔을 땐 원두커피를 맛없다고 거부했다. 그 다음 주에 믹스커피 한 봉지를 사왔다. 우린 이거 먹을 겨. 그러나 이젠 원두커피 마니아다. 인스턴트 커피는 느끼해서 싫단다. 몸에도 안 좋고.

▲ 흐뭇한 미소로 커피를 권하는 바리스타로 일하는 권사님과 김 목사.
외국인도 반한 할머니의 커피 맛
처음부터 교회에서 카페를 하려던 계획은 아니었다. 교회에 새로 부임한 김 목사는 심방을 하다가 안타까운 사정을 들었다. 노인 일자리 알선처에서 돈 내고 바리스타 교육을 배운 68세 황경자 권사. 막상 취직을 하려니 60대 초반에게 밀렸다. 속상해있던 권사님에게 김헌래 목사가 제안했다. “권사님, 그럼 우리가 한번 카페를 해보죠.”

전혀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의 아내 박미성 사모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이사장:최이팔 목사)에서 커피와 관련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김 목사도 이전에 대신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 여가를 이용해 커피 내리는 일을 배웠다. 그러나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 신기할 뿐이다.

“안전행정부에서 하는 마을기업이 되면 후원을 받을 수 있어서 거기 응모했지요. 사실 될 수 있는 조건이 거의 없었어요. 교회 예산도 없어서, 제가 부목사 퇴직금을 여기 넣었죠. 기초자치단체의 심사는 어떻게 통과했는데 또 광역자치단체의 심사가 남았어요. 그게 수요일 날 있었어요.”

그래서 주일부터 3일을 금식했다. 감사하게도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교회의 어르신 일곱 분과 교회 옆 철물점 창고를 임대해서 카페를 열었다. 간판에 걸린 이름은 ‘카페 외할머니’. 여기엔 세 가지 의미가 담겼다. 외할머니처럼 친근한 곳이다, 집밖의 할머니다, 외국인들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곳이다.

‘카페 외할머니’는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교회가 일자리를 창출해주었다는 점, 그것도 구세대와 신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품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여기 더해서 이 카페는 공정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커피를 쓴다. 대량 생산 커피는 현지에서 커피 열매를 딸 때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정무역의 커피는 유기농 커피를 써서 농약을 치지 않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서 사오는 커피.

할머니가 커피를 내린다는 사실에 커피 맛이 미심쩍다면 김 목사의 ‘무용담’을 들어보라. 이 카페에 들어온 어떤 외국인이 앉은 자리에서 아메리카노를 4잔 연거푸 시켜 먹은 일이 있었다. 종종 이곳을 찾는 외국 교포들은 “우리나라 맛있는 커피 중에서 이곳이 두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칭찬한다. 이곳에선 할머니 손맛을 살려 식혜와 같은 전통 음료들도 계발해 맛볼 수 있다. 또 여기서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구매하거나 커피와 관련된 수업을 받을 수도 있다.

“난 세상을 닦는 걸레가 되겠다”
이 카페를 통해 작은 교회도 얼마든지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김헌래 목사. 그는 고등학교 졸업앨범 뒤에 남겼던 꿈을 이뤄가는 행복한 목사다. 색 바랜 졸업앨범 뒤에 기록된 그의 꿈은, 좀 남다르다. ‘나는 세상을 닦는 걸레가 되겠다’. ‘헌래’라는 이름에서 떠올린 ‘걸레’, 사실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말이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 충주고를 졸업했다. 당시 졸업생 600명 중 40명이 서울대를 들어갔다. 그도 상위권에 있었으니 소위 명문대 갈 실력은 충분했다. 그 길로 갔더라면 지금쯤 높은 자리에 앉아있을까? 가끔 동창회에 가면 대기업 차장, 부장급으로 일하고, 변호사 등 때깔 나는 전문직에 있는 동창들을 만난다. 교인 수십 명에 불과한 상가 교회 목사로 있는 그 자신이 때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는 없었을까? 그는 이 질문에 빙그레 웃기만 한다.

“제가 어렸을 때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거의 죽었어요. 시골의 조그만 신경외과 의원에서 뇌수술을 4번이나 했지요. 병원장도 살아난 저를 보고 ‘애는 덜어낼 생명인데 어머니 기도로 살아났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지금도 오른쪽 두개골이 얇아요. 아주 추울 때나 더울 땐 그래서 힘들어요. 제 오른쪽 눈도 그때 실명했고요. 수술 후에 살아난 것도 감사한데 하나님이 지혜까지 주셔서 공부를 잘 할 수 있었죠.”

길이 다를 뿐이다. 세상적인 잣대로 보면 ‘잘나가는’ 친구들이 부러울 수도 있겠지. 그러나 김 목사는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고달픈 이들의 마음과 삶을 어루만지며 더 나은 내일이 되도록 도와주는 일. 이뿐 아니다. 영생복락의 길도 전하고 있다.

한 가지 더. 그는 커피를 내린다, 그것도 아주 잘. 마신지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입 안에 기억되는 그 씁쓸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신맛. 인생이 이런 맛일까. 어디 맛 뿐인가. 향기까지. 은은한 커피향에 그리스도의 향기까지 더해진 이 커피는, 세상 어느 다른 카페에서도 맛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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