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를 하나의 조항에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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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를 하나의 조항에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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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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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헌제 교수 (중앙대학교)

‘정교 분리’.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정교 분리를 말하고, 선거 때만이 아니더라도 심심찮게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것이 정교 분리에 대한 이야기다. 정교 분리에 대한 법학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그리고 외국의 경우, 법이 말하는 정교 분리 원칙은 무엇일까. 교회법연구소가 이 문제를 전문가적 입장에서 짚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헌법 제20조는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여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를 하나의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다. 미국 헌법 수정 1조도 ‘국교 수립의 금지(establishment clause)’와 ‘종교 자유의 보장(free exercise)’을 하나의 조항에 두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다.

이와 같이 정교 분리와 종교 자유를 하나의 조문에서 규정한 이유는 두 원칙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국가)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종교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으며, 종교 자유 원칙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이다.

이처럼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 원칙은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지만 어느 쪽을 중심축으로 하느냐에 따라 논의의 전개가 달라질 수 있다. 즉, 종교 자유를 중심으로 하게 되면 종교적 양심의 자유, 선교의 자유, 종교적 표현의 자유, 종교 교육의 자유, 종교 자유의 한계 등 미시적 차원의 문제들이 관심사로 된다. 반면 정교 분리 원칙을 중심으로 하면 국가와 종교의 관계와 같은 거시적 차원의 문제가 논의 핵심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례(판례)에서는 대부분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 원칙이 함께 문제가 되는데 이는 두 원칙이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정교 분리에 관련한 판결들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 볼 때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며 또 정교 분리의 적용에 일관되는 원칙, 가령 미국 판례가 정립한, ‘세속적 목적’, ‘지나친 유착관계’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더구나 공직자의 종교 편향 행위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례에서는 정교 분리 원칙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채 ‘공권력 행사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헌법소원의 요건 불비만을 이유로 기각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정교 분리 원칙과 관련하여 가장 큰 현안으로 생각되는 것은 국가의 묵인 아래 사찰들이 국립공원 입장객으로부터 ‘문화재 관람료’를 강제로 징수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부터 정부는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여 국민들의 복지를 확대한 바 있다. 그러나 불교 사찰들은 사찰 입구가 아닌 국립공원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하여 사찰 방문 의사가 없는 사람들로부터도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국립공원 입장료를 강제로 징수하고 있어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는 문화 지원이라는 세속적 목적에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종교에 대한 엄청난 국가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교 분리 원칙의 중대한 위반이라고 본다.

법원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정교 분리 원칙과 관련해서 파악하지 않고 다만 ‘문화재 관람의사’가 있는가 하는 사법적인 관점에서 판단하여 관람료를 부당 이득으로서 반환하도록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에게만 기판력이 미치기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이러한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람료를 강제로 징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은 문화재 관람료 징수의 근거가 되는 문화재보호법 제49조의 위헌성을 헌법재판소에서 다투는 것이다.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문화재보호법 제49조는 문화재 관람 의사와는 상관없이 문화재 관람료를 강제로 징수함으로써 국립공원을 누릴 수 있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

나아가 국민의 부담이 되는 관람료의 액수 결정과 징수, 그리고 관람료를 어떠한 용도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국가의 감독을 완전히 포기한 채 이를 특정 종교 단체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은 법률유보원칙과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위헌적 처사이다. 정치적인 표를 의식해서 헌법이 천명하는 정교 분리 원칙 위반에 눈을 감고, 국민의 권리가 명백히 침해되는 것을 방치하는 국가가 무슨 민주국가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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