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고싶은 사역이요? 무조건 순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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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고싶은 사역이요? 무조건 순종이죠”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4.03.1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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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작은별가족’ 강인혁 선교사의 선교이야기
▲ 일본 한 역사 앞에서 찬양으로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 강인혁, 김문희 선교사.

‘작은별가족’. 19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활동했던 이 그룹은 TV만화영화 주제곡 모음집을 발표하며 일반 무대에 섰다. 가족들이 모두 무대에 선 모습이 흔치 않아 당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는 가수가 됐다. 1985년까지 함께했던 가족은 각자의 활동을 시작했고, 작은별가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작은별가족의 일원 강인혁 씨. 그는 작은별 문화센터를 운영하며 박남정, 신대철 등을 가르친 선생님이었고, 이벤트 회사를 세워 모 놀이공원의 장미축제를 기획하는 등 성공의 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연예기획사를 차려 김원준 등의 가수를 길러낸 그. 순간의 사업실패로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름 뒤에 ‘선교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 인생의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일본에서 만난 하나님
사업실패로 도망치듯 떠난 대한민국. 2002년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의 인생은 모두 끝이 나는 듯 괴롭기만 했다. 편리함과 안락함은 손에 쥔 모래처럼 모두 빠져나갔고, 혈혈단신 아내와 그 둘 뿐이었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막막했어요. 신앙이 있던 아내를 따라 신주쿠의 성신축복교회(박명수 목사)에 다니게 됐죠. 교회를 다니면서도 바로 하나님을 붙잡은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저를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셨죠.”

조금씩 변하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내 김문희 선교사는 아침과 저녁이 다른 남편의 모습에 더욱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새벽예배에 참석해 눈물로 기도하며 회개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렸죠. 하지만 날이 밝으면 남편은 마음이 변해 사업을 구상하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잠기기도 했어요.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도가 답이라는 생각밖엔 없었어요.”

꾸준히 계속된 아내의 기도. 하나님은 강 선교사의 입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이 흘러나오게 하셨다. 하루 10병 이상 마셨던 술도 단번에 끊었다. 그야말로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후 노숙인들을 찾아다니며 찬양사역을 이어갔다. 그가 만난 하나님을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떡을 나누고 싶었다.

“당시 제가 살던 우에노 근처에만 약 900여 명의 노숙인이 있었어요.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나중에는 노숙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찬양단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죠.”
이밖에도 그는 섬기던 교회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주는 일 등으로 달란트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 강인혁 선교사와 김문희 선교사.

식당? 선교센터? 개업!
그러던 중 동경의 한 지역에 식당을 개업했다. 평소 음악을 업으로 삼던 부부라서 그런지 식당에는 악기들이 즐비했다.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전달하고는 그들을 위해 찬양을 불렀다. 식당은 식당이 아닌 주변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센터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시간이 남으면 피아노 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식당이라는 이점을 살려 일본 주부들에게 한국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어요. 물론 복음을 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죠.”

그렇게 복음을 전하게 된 부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사역을 진행했다.

“제가 플롯을 연주하면 남편은 옆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함께 악기로 찬양을 연주하기도 했죠.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던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 기쁘게 일하는 저희 부부를 보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어요. 그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에 감사할 뿐이에요.”

선교사가 돼라
당시 출석하던 동경성산교회의 송선효 목사는 “선교사 교육을 받고, 제대로된 선교에 나서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그들의 귀국을 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 많은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 사역이 아직 체계적이지는 못했기 때문.

게다가 ‘음악’이라는 달란트도 가지고 있으니 선교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 후에 복음을 전하는데 나서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게 송 목사의 판단이었다.

2007년, 그렇게 선교사 훈련을 받기 위해 부부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선교사 훈련을 받으면서 여러 제안이 많이 들어왔어요. 계획도 세웠고, 하나님이 주셨다는 소명도 있었죠. 일본에 기도원을 세우자는 제안도 들어왔고, 음반을 만들어서 찬양집회를 다니자는 계획도 있었어요. 하지만 여러 여건 때문에 늦어졌죠.”

그런 와중에 시작한 것이 선교사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대안학교 ‘세종글로벌학교’의 음악교사였다. 기타와 드럼, 플롯, 노래까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쉽고 은혜로운 통기타’

▲ 강인혁 선교사가 기타를 배우고 싶어하는 크리스천들을 위해 만든 기타교본.

주말에는 사역을 마치고 달려온 목회자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기도 했다.

“목회자를 대상으로 기타를 가르치는데, 대다수의 교본이 가요로 만들어져 있더라고요.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었죠.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한 기타교육 시간에 가요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찾아보니 찬양을 바탕으로 된 교본들은 대부분이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아내는 찬양을 묵상하며 곡을 골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쉽고 은혜로운 워십 통기타’ 교본은 교회에서 기타를 배우고 가르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책이다. 최근에는 좋은 책을 많은 교회들이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 직접 교회들을 방문하며 소개하고 있다. 내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쉽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돕고싶은 마음이 컸다.

“교본을 들고 큰 교회들도 찾았었는데, 어떤 교회는 이미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어요. 기뻤죠. 교본으로 기타강습을 하고 계신 담당자분이 고맙다고 하시는데 뿌듯했어요. 당장은 할 수 있는 사역에 집중하려고 해요.”

지난해에는 대부분 노인들로 이뤄진 일본 후쿠시마 피해자들의 마을에서 찬양 사역을 하고, 후쿠오카 지역에서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언제든 말씀하시면 어디든 나아가겠다고 말한 강인혁, 김문희 선교사는 지금도 맡겨주신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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