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신문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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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신문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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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2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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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목사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총무)

본지가 창간 26주년을 맞았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힘찬 걸음을 내딛은 지도 벌써 26년이 지났다. 청년의 나이. 이 뜨거운 열정을 하나님 나라 확장과 문서선교 사명을 위해 쏟기로 다짐한다. 26주년을 맞는 본지에 대한 다양한 바람과 칭찬, 애정어린 충고들이 답지했다. 교계의 바람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예사롭게 사용하는 말과 글은 사실상 인류를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만든 결정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이런 인간의 언어생활을 역사화하고 자료화하는 가장 통상적인 매개체가 신문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소위 종이 신문을 통하여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들을 교환하고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어 후대에 전수해 가는 역할을 감당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더 생생하게 그 역할을 맡아주는 시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활자에 묻어오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더 친근하다. 글을 막 익혀가던 초등학교 저학년시절부터 아버지가 아침마다 늘 손에 쥐고 계시던 신문을 즐겨 읽어온 터라 신문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데 대학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같은 사건이라도 신문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기술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신문은 ‘조중동’과 ‘한겨레’로 나뉘어져 우리 앞에 나타났다. 모든 역사가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로 전해질 수 있음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바른 사고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자주 헷갈려한다.

신문이 둘로 나누어진 이후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고, 매사에 갈등이 생겨나고 한 번 의견을 달리하면 좀처럼 하나 되기 어려워 마음이 불편하다. 통일이라는 매우 단순한 민족의 과제조차 ‘조중동’과 ‘한겨레’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각색해 버리니 갑갑하다. 통일이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로 둔갑한다.

한국 교회의 ‘오늘’을 보게 하고 흐름을 읽게 하며 갈 길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매체 중의 하나인 ‘기독교연합신문’이 26주년을 맞았다. 교회의 신문으로서는 제법 긴 세월을 견디어 온 셈이다. 교파의 장벽이 높고, 목사와 장로 외에는 구독 인구가 거의 없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교계 신문의 현실을 감안할 때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고 축하를 받을 일이다.

그러나 축하받기 무섭게 더 무거운 과제 앞에 서야 한다. 오늘 한국 교회의 상황을 보며 ‘교회의 신문이 취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일이다. ‘오늘 한국 교회에 자정 능력이 있는가?’ 교회 안팎에서 쏟아지는 이 무서운 질문에 교계 신문으로서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순간순간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결국 오늘 이 상황에서는 교회와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방향 전환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비판을 계속하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교단, 다른 교회,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좋지만 그 비판이 자신에게로 향하면 그냥 얼굴을 돌리고 적개심을 드러내고 독설을 내뿜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덮고 칭찬할 수도 없다. 교단지가 인기가 없는 이유가 바로 그런 점에 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이 하는 일이 문제가 없겠는가? 그래도 칭찬만 하면 쓰레기 신문 취급을 받는다. 그런 걸 돈을 주고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교계 신문은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발행인이나 편집진이 웬만한 배경이나 배짱이 없이는 경영하기도 어렵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처신하기 어려웠다. 평화만을 전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으니 거짓 선지자로 전락하는 일이 불가피했다. 그렇다고 진실만 말하자니 모두로부터 몰매를 맞을 판이다. 주전 8세기 북국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하자 나타난 아모스 선지자. 그는 결국 진실 편을 택했다.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일반의 여론을 뒤집어엎는 용기를 가진, 하나님의 신실한 대변인 아모스의 존재 여부가 한국 교회의 내일을 결정지을 것이다. 기독교연합신문의 분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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