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과 대화할 때, 그들을 먼저 인간으로 바라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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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과 대화할 때, 그들을 먼저 인간으로 바라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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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2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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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철 원장(한국선교연구원)

소통이 필요한 시대, 종교와 종교사이의 대화도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는 이슬람과 기독교, 유독 우리나라에서 잡음이 많은 불교와 기독교 등 다툼과 갈등이 많을 수록 대화는 더더욱 중요하다. 기독교학술원이 제20회 영성포럼의 주제로 ‘기독교영성과 종교간 대화’를 선정했다. 불통의 시대, 종교간 대화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편집자 주>

종교간 대화는 포괄적인 주제이면서, 구체적인 현실을 고려해야할 복잡한 주제이다. 이 주제는 중요하지만 자칫 기존의 논의를 반복해 진부해지기 쉬운 위험성도 안고 있다. 보다 진전된 논의를 하기 위해서 기존의 논의를 참고하는 가운데, 이 글과 관련된 가정, 질문들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슬람과의 대화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한 걸음 나아가길 바란다.

이슬람 혹은 무슬림과의 대화는 견고한 기독교 영성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독교 영성은 신앙간 만남 속에 있어야 하고, 그 자체가 신앙간 만남이며, 신앙간 만남 때문에 더욱 견고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력은 이슬람권의 상황에서 더욱 절실한 기독교 영성 함양의 과제를 보여준다.

영성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내려질 수 있지만, 앨리스터 E. 맥그라쓰의 입장을 무난히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영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영성은 진정하게 실현된 종교적 삶의 추구와 연관되는 것으로서, 그 종교의 구별되는 사상들과 그에 근거하고 그 범위 안에 있는 전체적인 삶의 경험을 결합하는 것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기독교 영성에 대해 “진정하게 실현된 기독교적 존재를 추구하는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 기독교의 근본적인 사상들과 그에 근거하고 그 범위 안에 있는 전체적인 삶의 경험을 결합하는 것을 수반한다”고 덧붙였다.

종교 간의 대화에 있어 보다 구체적으로 이슬람권에서의 대화를 위해서는 성육신적 영성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무슬림들은 질적인 차이를 볼 수 있어야 하며, 그럴 때 관심을 가지고 진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런 방식은 바시르 마시가 주장하는 바 성육신적 증거의 핵심 내용이 되는데, 이 접근법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열쇠로 보는 것이다. 필자는 유럽의 교회에서 공동체적 사랑을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가톨릭에서 수피즘으로 개종한 스위스 성악가를 만나 대화하면서 이러한 공동체적 사랑의 필요를 절감한 기억이 생생하다.

무슬림들과의 대화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개화를 시도함에 있어서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그들을 종교적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 인간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화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이지만, 대화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희망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타세계관에 대해서는 현상학적 이해와 묘사에 이어 존재론적 비평, 그리고 선교학적 변형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무슬림들과의 대화는 인격적이어야 한다. 인간적인 신뢰를 구축해야 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논증을 해야 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 헨드릭 크래머(기독교 선교와 타종교 저자)는 일찍이 이슬람권에서의 기독교 선교에 대해 말하면서 “이슬람은 기독교 선교에 인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적절한 평가였다.

이렇게 인내심이 필요한 것은 죄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공통의 조건일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무슬림들의 경우 총체적 관점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적 경향, 집단주의적인 문화로 인한 집단 압력의 요소, 가족 및 친지 유대관계로부터의 억압 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슬람 혹은 무슬림에 대한 두려움이나 혐오감은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다. 무슬림들과의 대화에 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샬롬(평안)을 누리고 전파하는 미션을 감당해야 한다.

크래머 역시 오래 전 이슬람을 두려워하거나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태도에 사로잡혀 있는 선교사라면 본국으로 돌아가 다시는 오지 않는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쉽지 않은 만남과 대화이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무슬림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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