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종교와의 소통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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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와의 소통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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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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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박사 (기독교학술원 연구위원)

소통이 필요한 시대, 종교와 종교사이의 대화도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는 이슬람과 기독교, 유독 우리나라에서 잡음이 많은 불교와 기독교 등 다툼과 갈등이 많을 수록 대화는 더더욱 중요하다. 기독교학술원이 제20회 영성포럼의 주제로 ‘기독교영성과 종교간 대화’를 선정했다. 불통의 시대, 종교간 대화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편집자 주>

기독교를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으로 따로 분류하면 한국에서 불교가 최대의 신도수를 가진 종교가 된다. 개신교 통계 안에 이단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불교 안에도 무속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불교는 그동안 개인 수행에 전념해온 까닭에 개신교의 군목, 방송선교 등 분야에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신군부에 의한 법란 사건을 전후해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의 포교자세로 돌아섰다.

특히 개신교의 선교방법을 따라 찬불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불교학교 등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고,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멤버십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대규모 선원들이 도심지에 개원되었고,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며 많은 국고보조도 받고 있다. 노태우 당선과 더불어 10원짜리 동전의 다보탑에 부처상을 새겨 넣을 정도로 정치에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불교신문에서는 금년에도 행정부 요직인사 및 국회의원들의 종교적 성향을 분석해 게재했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과 정부의 종교편향을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뒤늦게 생활불교를 표방하고 나온 많은 불교 프로그램들은 실상 개신교에서 선점해 실행했던 방향과 유사하다.

결국 두 종교 단체들이 영역싸움으로 비춰지는 갈등구조의 악순환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역설적으로 이제 어느 때보다 이 두 종교단체의 소통이 필요한 시기다. 소통에 근거해 동심원으로 이뤄진 개신교의 순차적 파문으로 나타난 세 영성과 불교의 공의 영성, 보살의 영성, 니르바나의 영성과 소통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불교와의 대화 전 한국 교회의 영성의 과제 중 하나는 삼위일체론적 예배영성의 회복이다. 하나님만을 높이고 그의 이름을 찬미하고, 그의 말씀을 듣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예배의 회복이 절실하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철저한 회개가 약화되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적 은사 즉 선물을 받는 그런 예배가 아니라 스스로 예배를 통하여 선물을 받아야 되는 물량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물량적 가치 대신 철저히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요긴하다. 신령한 예배는 성령이 임재하시는 예배이다. 신령은 자신의 영적 엑스터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예배는 성령의 선물을 받는 통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또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위로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의 은사가 있고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와 13장에 나오는 가장 큰 은사인 사랑의 은사가 있다.

공동체적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자아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할 때에 오시는 성령님의 은혜이다. 진정한 예배는 또한 그리스도론적이다. 단번에 자신을 십자가에 드린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보혈, 그리고 그를 통해서 담대히 거룩하신 아버지의 성소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는 더 이상 희생의 제사가 아니라 찬미의 제사가 되었다. 영성의 목적은 철저한 회개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찬양의 마음이다.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 다른 과제는 은혜와 행위의 분리 극복이다. ‘은혜만으로(sola gratia)’라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은 절대로 실천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실천을 요구하신다. 이단 종파와 같이 도덕폐기론에 빠지는 한국 교회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과제는 기독교의 대 사회적 영향력의 회복이다. 이것은 권력의 자리를 많이 차지하려는 정치적 야망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애쓰자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을 모든 영역에서 선포하자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공평과 정의가 만나고, 사랑으로 승화되는 사회적 영성의 실현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소통하고, 이웃 특히 낮은 자들과 소통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과도 소통해야 할 사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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