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까지 사랑하는 화해와 용서가 있는 성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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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까지 사랑하는 화해와 용서가 있는 성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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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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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 도성교회 담임 서경수 목사

1909년 어느 날 의료선교사인 포사이트 선교사가 광주에서 목포의 오웬 선교사의 병을 치료하러 가던 길에 쓰러진 한센병 여환자를 발견했다.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생각나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포사이트 선교사는 자신의 나귀에 태워서 한센환자를 지극정성으로 치료하고 간호했으나 그는 3일 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소천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버림받고 고통 받는 한센병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애양원이 생기게 된 것이다.

1911년 4월 25일 우월순 의료선교사에 의해 나병원이 설립되었다. 평안하게 미국에서 잘 살 수 있는 의사들이 선교사로 애양원에 와서 희생 봉사한 신앙정신을 오늘 우리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계승해야 할 것이다. 포사이트 선교사와 같은 분은 한국에서 풍토병이 들어 미국에 가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봉사와 노고를 우리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애양원하면 잊을 수 없는 한 분이 계신다. 손양원 목사님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1939년 7월에 애양원교회에 부임했으며, 1940년 9월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르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석방되셨다.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으로 동인, 동신 두 아들이 순교하자 손 목사님은 9가지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아들을 죽인 안재선 학생을 양아들로 삼으셨으니 원수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사랑의 사도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군에게 1950년 9월 13일 붙잡혀 가셔서 여수경찰서에 계시다가 9월 28일에 끌려나가 여수시 미평 과수원에서 공산당이 쏜 총에 맞아 순교하셨다.

여수 애양원 동산은 선교사님의 사랑과 봉사와 헌신을 실천한 믿음의 동산이다. 또 손양원 목사님은 한센의 친구였으며, 해방 후에 의료선교사가 떠난 애양원에서 한센 환우들의 발의 고름을 입으로 빨았고, 두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과 화해와 용서가 있는 사랑의 동산이다.

12월은 성탄이 있는 계절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의 삶의 자리로 오셔서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그늘진 곳에 희망의 빛을 비추신 것처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의 삶의 자리로 내려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귀한 성탄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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