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목회’로 교인과 주민의 마음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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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목회’로 교인과 주민의 마음을 열어라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3.12.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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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교회(담임: 신민규 목사)는 최근 ‘이웃사랑나눔바자회’의 수익금 2천 6백만원을 고스란히 인근 주민자치단체에 기부했다. 벌써 14회째 해마다 계속되어온 일이다. 2003년 성전 건축 이후 교회의 빚이 아직 수십억에 달하지만 이웃을 섬기는 사역들은 더욱 확장되어가고 있다. 13년 전, 60명 출석교회를 맡아 20배 성장을 이룬 교회로 이끌어온 신민규 목사(현재 나사렛대학교 총장 겸임)는, 그 비결을 ‘이미지 목회’라고 설명한다.

▲ 실천신학 교수에서 현장 목회자로서 이론과 실제를 경험하며 상암동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했던 신민규 목사는 현재 나사렛대학교의 총장으로서도 좋은 대학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배 성장한 상암동교회의 비결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사실 전 미국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객원교수(실천신학)로 있다가 정교수로 일할 수 있는 영주권을 신청 중이었죠. 그런데 기다리던 영주권은 나오지 않았고 마침 담임목사가 없었던 상암동교회에서 저를 청빙했습니다. 전혀 목회할 마음이 없었는데, 아내가 ‘당신이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는 말에 마음이 걸려서 결국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청빙을 받아들였죠.”

그날이 2000년 6월 10일 주일인데, 그달 말에 영주권이 나왔다. 묘한 일이었다. 전혀 준비가 없이 담임목사로 부임했던 교회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상암동은 월드컵 준비 때문에 날마다 건물이 부서지고 사람들은 동네를 떴다. 교회에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송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 남은 교인들은 불과 60여명. 난감했던 그의 목회의 실마리를 풀어준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벽예배였다.

▲ 송구영신예배에서 새벽 4시까지 교인들을 축복기도 하고 있다.

칼국수 한 그릇의 ‘위력’
“사실 전 새벽예배를 잘 못하던 사람이었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만 했죠. 그런데 목회현장에 갑자기 처하게 되니,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처음 새벽예배에 갔더니 딱 한분 나오셨더라고요.”

그분이 당시 집사였던 정종순 권사. 그 한사람을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신 목사는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해서 기도수첩에 붙여놓고 이름들을 호명하며 기도했다. 당장 교회에 소문이 퍼졌다. 신 목사의 새벽 기도수첩에 교인들의 사진들이 점점 더 많이 채워졌다. 새벽예배의 자리도 가득 채워졌다.

“새벽예배가 끝나도 사택에 돌아가지 않았죠. 사실 집에 가도 가족들이 없었던 형편이었고 또 ‘놀더라도 교회에서 놀자’는 생각이었으니까요. 하루 종일 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밥먹고 생활했어요. 그런데 별것 아닌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교인들이 감동하더라고요.”

하나님의 사랑이 오가는 곳에는 뜻밖의 역사가 일어난다. 한번은 4천원짜리 칼국수를 한 교인에게 대접한 적이 있다. 소박한 식사대접이었지만 그 교인은 이렇게 감동을 표현했다. “제가 모태신앙인데 태어나서 목사님께서 밥을 사주신 것은 처음입니다.” 그 성도는 나중에 성전건축할 때에 집을 팔아서 건축헌금을 드렸다.

전화심방을 할 때에는 하루 한번 전화할 분, 1주일에 한번, 2주일에 한번 할 분들을 구분해 놓는다. 통화가 끝날 때마다 대화내용을 기록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이것도 여러 사람이면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부지런함이 목회의 저력이 됐다.

처음 교회에서 전도를 나갔을 때 일이다. 예전에 리더십트레이닝에서 배운대로 와이셔츠 소매를 두 번 접었다(활기찬 이미지를 준다고 한다). 전도를 해야겠는데 사람이 안보였다. 마침 주일학교 아이를 만나 가까운 가게에서 과자 몇봉지를 사주었다. 그 다음에 만난 아이들에게도 또 과자를 사주었다. 당시 철거를 앞둔 가게들은 재고 과자가 많았는데, 그들에게 신 목사는 ‘구세주’였다.

“과자 몇봉지면 까만 비닐봉지가 빵빵해지죠. 아이들이 그거 들고 집에 달려가서 엄마에게 목사님을 자랑을 하죠. 또 가게주인들도 ‘사랑 많은 젊은 목사가 왔다’고 또 저를 알려주죠.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전도가 되었어요. 아이들도 오고 아이들의 엄마들도 교회에 나오고.”

▲ 간증집회에서 만난 개그맨 신보라(맨 왼쪽)와 함께.

‘옥은 흙속에서도 옥이다’
사람들에게 오라, 오라 하는 전도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도록 만드는 전도가 오늘날은 위력을 발휘한다. 비신자들이 마음의 빗장을 스스로 내리고 교회로 오게 하기 위해선 많은 물질과 시간이 소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앞으로 밑지고 뒤로 남는 장사’다.

“저희 교회 이미지 목회의 대표적인 것이 바자회입니다. 원래는 바자회를 해서 교인들끼리 먹는 것이었죠. 그런데 제가 그것을 ‘이웃사랑나눔바자회’로 바꾸고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하루에 수익만 2천 6백만원이예요. 그걸 또 전액 동사무소에 기증합니다. 처음엔 반대도 많았죠. 교회에도 어려운 사람이 있다, 또 이왕 좋은 일을 하는데 우리 교회가 나눠줘야 선교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요.”

그러나 신 목사는 단호했다. ‘옥은 흙 속에 들어가도 옥’이라는 것이다. 주민자치단체에 기부해도 결국 다 교회가 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이런 관계를 통해서 지역사회와 더 깊은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외에도 어린이의 집을 운영하고, 교회 4층에 치료센터를 마련해 장애인들의 편리를 돕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에는 ‘실버스쿨’이 열린다.

“실버스쿨도 사실 처음에 두 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노인들이 홍대까지 마을 버스를 타고 힘들게 갑니다. 세라젬 등 안마를 받으려고요. 그래서 그때 우리 교인이 60여 명밖에 안되었을 때인데, 당시 비싼 세라젬 기계 150만원짜리 두 개를 교회에 사놓았어요. 그리고 누구나 와서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했지요. 야구르트도 주고, 사탕도 주고.”

그러나 절대로 주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교회 나오라’는 말이었다. 교회에서 ‘교회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한없이 베푸는 사랑에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졌다. 지금은 지역사회가 커져서 못가지만 그때만 해도 신 목사는 동네의 모든 초상집을 찾아다니며 조의를 표했다.

‘지역구 관리’를 잘해야 한다
작은 교회가 갑자기 부흥되면 갈등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개척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새로운 신자가 정착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 신 목사는 ‘새로운 신자에게는 봉사의 기회를 많이 주고, 기존의 신자에겐 교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는 원칙으로 기존 신자를 소외시키지 않고 새신자들의 뿌리 내리기를 도왔다.

지난 2013년부터 나사렛대학교 총장을 겸직하고 있는 신 목사는 최근 동역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자신의 목회경험을 담은 ‘희망의 끈’이라는 책을 냈다. 월요일도 쉬지 못하고 천안의 대학으로 출근하는 신 목사는, 지금도 매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나서야 기차를 탄다.

좀 교회가 커졌다고 무슨 총회니 뭐니,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목사는 그저 ‘지역구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의 지역구는 당연히 상암동교회다. 교인과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이미지 목회’이고, 그것을 위해 오늘도 목사는 부지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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