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복음화 위해 예수운동·교회운동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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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복음화 위해 예수운동·교회운동 앞장선다
  • 이석훈 기자
  • 승인 2013.12.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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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주년 맞은 부천성문교회의 건강한 부흥이야기

상가서 시작 상동에 새성전·비전센터까지, ‘1011 비전’ 기도
선교와 구제도 열정... 두날개 시스템으로 내·외적 성장 추구

부천시 상동에 위치한 성문교회(담임:이종래 목사, www.sm.or.kr)는 1978년 10월 8일 개척하여,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거룩한 교회운동의 사명을 위해 달려왔으며, 35년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꾸준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무엇보다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을 교회의 사명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전하고 몸 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것을 최대의 사명으로 달려왔으며, 앞으로도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 이 땅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예수운동과 교회운동에 앞장선다는 방침이다.

지난 10월 8일로 창립 35주년을 맞이한 성문교회는 이를 위해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여, 성도들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피어나도록 양육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경본문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는 이종래 목사는 마지막 시대에 바른 신앙으로 성도들을 인도하고자 주일에는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 “예수를 구주로 바르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들고, 수요예배에는 잠언 강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도전하며 은혜로운 강단을 채워가고 있다.

또한 선교와 구제에도 끊임없는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미자립 교회 지원과 개척교회 지원, 시골교회 봉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예수사랑봉사국(예사봉)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다. 예사봉은 독거노인 반찬나눔을 비롯해 목욕, 이미용 봉사, 피부미용 봉사 등을 통해 소외된 이웃과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향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전도국을 중심으로 매월 노방전도와 매주 병원전도를 실시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열방을 향한 사명을 위해 해외선교사 파송 및 지원, 해외 단기선교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몽골과 필리핀, 네팔 등 단기선교를 통해 열방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역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이 정기적으로 병원의 환우들과 교소도 재소자 등 소외계층을 향하여 손을 뻗어 복음을 전하고, 지역사회봉사, 농활과 개척교회를 지원하며 국내 및 해외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1978년 10월 8일 송내동에 40평 상가를 임대하여 창립된 성문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폭발적인 부흥을 체험하며 1981년 2월 16일 141평의 교회부지를 매입하게 됐고, 온 성도의 헌신과 기도로 같은 해 8월에 송내동 성전에서 하나님께 감격의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다.

계속되는 부흥으로 또다시 새 성전을 위해 온 성도가 합심하여 한마음으로 기도로 나아갔으며, 2002년 12월 1일 지금의 상동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드리게 됐으며, 2004년 6월 6일 주일학교의 성장과 원활한 교육을 위해 지금의 비전센터를 세웠다.

성문교회는 교회사역뿐 아니라 세계선교에도 눈을 돌려 황필남 선교사를 시작으로 9명의 선교사를 열방에 파송했고, 지교회 개척과 국내선교에 힘을 다하며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받들어 온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갔다.

특히 2008년 두날개 양육 시스템을 도입하여, 말씀과 기도로 무장된 리더를 양육하는데 힘쓰고 있는 가운데 ‘예배와 소그룹’ 두날개를 통해 지금까지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이후 2012년 공동체중심의 셀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2013년 다음세대를 세우는 공동체라는 표어를 가지고 성문교회의 다음세대와 이 땅의 다음세대들을 꿈꾸고 바라보며 양육과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종래 목사에 대해 성도들은 한결같이 “개척이후 30년간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달려온 열정의 소유자로서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하며, 항상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목회자”라고 소개하며 자랑하고 있다.

“역사가 진행되는 것은 교회운동을 위해서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교회를 사랑하는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거룩한 사명과 꿈을 가지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달려가는 교회임을 자부하고 있다.

또한 감동이 넘치는 예배와 따뜻한 나눔이 있는 교회, 가정을 회복시키고 지역을 섬기는 교회, 나라와 민족을 품고 다음 세대를 일으키는 교회가 바로 성문교회의 자랑이기도 하다.

성문교회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 실천을 위해 ‘1011의 비전’을 가지고 1만명의 예배자, 1천개의 셀, 1백명의 선교사 파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많은 목회자와 사모들이 성문교회를 통해 배출된 것도 이 거룩한 비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13년부터는 “다음 세대”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가지고, 어떻게 믿음의 세대를 이어가며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를 기도하고 있다.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공동체”라는 표어로 주일학교 교육과 세대 간 소통을 중심으로 하여 달려왔으며, 다가오는 2014년에도 “다음세대와 함께 가는 공동체”라는 표어를 가지고 맡겨진 거룩한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갈 계획이다.

2013년 백석대학교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자랑스런 동문상’을 수상한 이종래 목사는 ‘영원한 백석인’임을 자랑하면서 총회의 모든 사역들에 적극적인 후원과 기도를 아끼지 않고 있다. 교회적으로도 국내외 선교사역 외에도 방송선교와 문서선교, 기관후원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어 많은 교회들의 본이 되고 있다.

이종래 목사의 개척 이야기
“오랜 연단 끝에 하나님은 부천으로 보내셨지요”

이종래 목사는 신학교 시절 아무도 가지 않는 곳, 정말 어렵고 힘든 곳으로 보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의 응답으로 신학교 목사님이 소개하셔서 강원도 원주까지 가게 됐다.

▲ 이종래 목사
원주의 개척교회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이 목사는(당시 전도사) 막상 교회에 가보니 종탑은 쓰러져 있고, 종은 깨져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사는 동네와는 300여미터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목회를 시작한 이 목사는 결혼반지와 시계를 팔아 교회 종을 마련하고, 원주에서 청량리까지 120원 완행열차를 이용해 매주 월요일 신학교를 가서 공부하고 금요일 저녁에 돌아왔다.

그때 새벽마다 교회 종을 치며 강단을 지킨 사람은 사모였다. 매일 새벽예배와 수요예배, 주일학교까지 인도한 것이다. 지난 4월 5일이 결혼 40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렇게 강원도 원주에서 2년 동안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한 결과 7-80명의 교인이 되었을 때 서울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선배 목사에게 맡기고 서울로 이삿짐을 싣고 올라왔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개척지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부부는 한얼산기도원에서 100일을 지내며 기도에만 전념했다.

기도원을 내려왔지만 큰아들과 함께 세 식구가 머리 둘 곳이 없어 울며 거리를 헤매던 시절이 길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둘째 아들까지 임신했으며, 하나님의 연단으로 믿고 꾹 참으며 10개월을 보냈다.

하나님은 마지막 연단으로 이 목사를 삼각산으로 보냈다. 11월 중순 경 추운 날씨 속에 삼각산 중턱에 군용텐트를 치고 밤마다 손발과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추위에 마귀와 싸우며 기도하게 하셨다. 이 목사는 그때 조금만 더 연단을 받으며 기도했었다면 더 목회를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난을 때 오류동에 있는 어느 교회로 부임하게 됐으며, 처음으로 사례비라는 것을 받아 보았다. 그렇게 또 2년을 섬기던 중 “이곳에서는 목회를 마음껏 펼칠 수 없으니 개척문제를 놓고 기도하자”고 사모에게 이야기했다.

사모는 근처 산꼭대기 올라가 큰 아들은 옆에 뉘어놓고 작은 아들은 등에 업고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응답을 받고는 교회에 사의를 표했다. 교회에서는 “사례가 부족해서 그러시는 것이냐”며 붙잡았으나 손에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 믿고 개척지를 보러 다녔다.

당시 강남이 막 개발되기 시작하던 때여서 강남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개척할 계획을 갖고 있던 중 하나님의 뜻은 부천을 향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부천시 송내동에 건물을 계약하고 성문교회의 개척이 시작된 것이다.

40평 되는 2층 건물을 세를 얻었는데 준공이 나지 않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수도도 연결되지 않은 건물이어서, 강원도 원주에 이어 또 다시 전기가 없는 교회를 맞이하게 됐다.

40평 공간 한쪽에 작은 방을 만들어 서재실로 꾸미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저녁식사가 끝나기만 하면 강대상에 올라가 기도하다 잠들고, 사모는 의자에서 기도하다 잠자고 새벽예배를 드렸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서 부부가 잠을 자는 동안 그 시간 5살, 3살 된 이이들 둘이 전도지를 들고 아파트 단지를 다 돌며 전도지를 집집마다 놓고 오곤 했다. 잠시 눈을 부치고 난 부부는 또 다시 전도지를 들고 온 동네를 다니며 전도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며 개척기를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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