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 강조, 정부 비판에 족쇄를 채우려는 잔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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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 강조, 정부 비판에 족쇄를 채우려는 잔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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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1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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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양 목사(평화의교회,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공동의장)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선언 이후 개신교와 불교, 천도교 등 종교인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면서 한국사회 안에 정교 분리 논쟁이 뜨겁다. 정치와 교회는 각각 다른 영역에 속하지만 교회는 그동안 나라의 위기 앞에서 기도했고, 정부는 종교 고유의 특성과 권리를 인정해왔다. 그러나 지금 그 벽이 점차 허물어지면서 종교인 과세와 시국선언 논란 등으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과연 정교 분리는 무엇인지, 정교 분리의 적용에 모순은 없는지 토론을 통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종교계 성직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자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이 요구가 정교분리 원칙에 반하는 정치적인 행위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이들의 주장이야말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지닌 정치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또 이들의 주장이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주장이야말로 정교분리 원칙에 반하는 주장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이 정치적인 주장이라고 보는 이유는 이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교분리 원칙 운운하며 비판하지만, 정부를 지지하고 찬동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교분리 원칙을 말하거나 비판하는 예가 없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 한 교회에서 전 대통령의 대형 사진을 강단에 걸어놓고 예배하며 수많은 정치적인 발언들을 쏟아낸 이들이 있지만 그에 대해서 이들은 정교분리 원칙을 적용하지도 않았고 또 이를 비판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행위가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에 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에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보수적인 기독교계가 시청 광장에 수만 명을 모아놓고 정부를 비판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다. 하지만 지금 정교분리 운운하는 이들 중 그 누구도 당시 이들에 대하여 정교분리 운운하며 비판한 예를 보지 못했다. 이것은 이들이 똑같은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 할지라도 자신들과 정치적 견해가 같을 경우 이를 묵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일관성이 없는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들의 주장 자체가 그들이 말하는 정교분리 원칙에 반하는 주장이라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정교분리는 특정 종교에 대한 국가의 특별한 편의 제공이나, 종교에 대한 국가의 개입 혹은 국가권력에 종교가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성직자가 종교행위 과정에서 행한 성직자의 설교나 강론 혹은 신앙적 양심에 기초하여 하는 발언을 문제 삼는 정부와 여당의 행위야 말로 종교의 핵심인 성직자의 설교 내용에 개입하는 것으로 그들이 말하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론적으로 정립된 정교분리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정교분리는 정 반대의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정교분리 전통은 종교권력이 국가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오랫동안 국가권력과 결탁했던 교회가 군주제를 지지하자 프랑스 혁명시기에 교회의 세속 권력을 박탈하여 군주제 회귀를 무력화 시킬 목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정교분리 전통은 국가권력이 종교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이 이와 같은 형태의 정교분리를 도입한 이유 역시 그들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다.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건너와 미국을 건국한 청교도들은 종교적 이유 때문에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경험에 기초하여 국가권력의 박해로부터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교분리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정교분리 이론은 프랑스의 그것과 대별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를 정교분리 운운하며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은 이와 같은 정교분리 이론의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주장은 일제 강점기에 '정치는 내가 맡았으니 정신계발은 선교사들이 맡아 달라.'며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선교 자유를 보장하려 했던 일본 총독 이토 히로부미식 정교분리론에 근거한 주장일 뿐이다. 또 이들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우리 헌법 제20조 ②항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이 헌법 조항은 국민의 권리 규정이라는 점에서 국가가 종교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이 점에 있어서도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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