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교회가 먼저 납세기준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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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다면, 교회가 먼저 납세기준을 세우자”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11.2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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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납세까지 불과 1년, 어떻게 준비할까<상>


교회 내적으로는 구체적 준비 필요... 외적으로는 정부와 조율 나서야
교회에 대한 세무조사권 행사 금지 및 비영리단체 세법 다시 만들 때

목회자 납세 문제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말았다. 입에 넣자니 뜨겁고, 버리자니 욕을 먹게 생겼다. 분명 기독교계 안에 ‘찬성’과 ‘반대’가 공존한다. 심지어 과세반대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한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장외투쟁’까지 논의했다가 사회적 반발만 키울 수 있다며 의견을 거둬들였다. 교회가 논의할 시간조차 없이 ‘기타소득’으로 납세 표준을 잡아버린 지금,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기타소득’은 피하자는 것. 목사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자존심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 지금 교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교계의 중론이다. 찬성 측도, 반대 측도 모두 “우리 스스로 ‘납세’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와 자체적 납세 가이드라인 수립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2015년까지 1년의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목회자 세금 이래서 반대다

고신, 합신 등 일부 보수교단을 중심으로 전달된 ‘종교인 과세 반대’ 이유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사회위원장 박종언 목사의 분석에 근거한다. 우리 정부는 헌법 제20조 정교분리 원칙에 의거해서 종교가 가진 특수성과 역사성을 고려해 국가가 종교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는 것. 1948년 정부수입 이후 지금까지 과세문제에 대해서 대한민국 정부는 관습법적으로 종교인 과세 문제를 소득세법 테두리 안에서 다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헌법과 더불어 대법원의 판례도 목회자 납세 반대 주장에 힘을 더한다. 대법 판례에 의하면 목회자의 사례금은 소득세법 제21조 제17호의 규정에 의한 사례금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있었다. 목회자 사례금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 것이 관습법이고 관습법도 법률이기 때문에 법률 개정은 국회 통과한 법률에 의해서만 개정이 가능하다.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의 근거없이 제한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심각하게 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대그룹은 또 종교에 대한 철저한 세속주의적 접근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성속의 구별없이 세속적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처음부터 교회를 이념적으로 대하는 접근법”이라며 교회를 사업장으로 보고 정직자를 교회단체에 고용된 근로자로 본다는 과세의 전제가 철저하게 교회의 거룩성을 부인하고 세속화하는 그릇된 논리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우려와 함께 납세 의무를 시작한 이후 일어날 후유증도 깊이 고민하고 있다. 예배와 헌금의 집행에 대한 제3자의 개입과 교회와 목회자가 세무사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무보시원칙을 내세운 불교 등과 비교할 때 기독교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신앙의 자유를 침해당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심각한 문제로 꼽혔다.

# 반대명분 없다, 내야 한다

교회 안에는 납세 찬성그룹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2015년부터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각 종단의 입장을 취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재부는 지난해 예장 통합, 합동, 교회협 등과 대화에 나섰고 사회적 지지 여론에 힘입어 “이제는 납세를 밀어붙여도 큰 무리가 없겠다”는 판단에 도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회자 납세에 찬성하는 그룹 역시 법리적인 주장을 펼친다. 찬성 측은 “세금은 국가공동체를 운영해 나가기 위해 구성원인 국민들이 그 비용을 분담하는 성격이므로, 특정인이 세금으로 분담하지 않는 비용은 다른 국민들에게 추가 부담된다”며 “세금은 이웃사랑의 최소한의 실천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특정인에게 귀속되는 동일한 소득에 대해 두 번 과세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이중과세방지의 개념이라며 교인들이 납부하는 세금과 목회자들이 부담하는 세금은 별개고 따라서 이중과세는 성직자 과세문제에서 논점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세법상 명시규정이 없다거나 관습법적으로 종교인은 비과세에 해당됐다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찬성 측은 “목회사역이 근로인가 아닌가는 신학적으로 논의할 부분이며 세금에 관해서는 세법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목회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 하나님에게 고용되었으며, 교회를 포함한 여러 형태의 조직과 사업장에 속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즉, 어떤 일이 성스러운지 아닌지는 호칭이나 신분이 아니라 그 과정과 결과로 판단할 뿐이며, 성직이 혜택받는 자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누가 세금을 내고 있나

지난 15일 세미나를 개최한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이 취합한 목회자 근로소득세 납세교회는 중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50여 곳에 이른다. 물론 전국적으로 크기에 상관없이 자발적 납세 사례를 찾으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수집된 중대형교회 가운데 상당수는 약 10여년 전부터 자발적 납세를 하고 있다. 세금 분류는 당연히 ‘소득세’다. 가장 오래전 납세를 시작한 곳은 영락교회로, 1960년대 한경직 목사 재직 당시부터 전임사역자까지 세금을 내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인천순복음교회가 약 30년 전부터, 충현교회와 온누리교회가 20년 전부터, 그리고 사랑의교회와 명성교회,선한목자교회 등 각 교단 대형교회들이 10년 전부터 세금을 납부해왔다.

목회자 납세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난해부터 자발적 납세를 결단한 교회도 있다. 합동 홍성교회와 푸른솔송곡교회, 감리교 성광교회 등은 올해부터 납부를 시작했다.

이미 세금을 내고 있던 교회들은 “납세는 국민의 의무라는 관점에서 정기적인 소득이 있는 사역자를 대상으로 자발적으로 실천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 세금, 피하기엔 늦었다

‘설마, 세금을 내라고 하겠어?’라며 넋을 놓고 있던 교회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떠안았다. 교계 일각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안았어야할 당연한 부담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모든 종교인을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기타소득’이라는 항목은 안타깝게도 ‘모든 소득’에 해당된다. 예장 통합이 각종 위원회 회의비를 통장을 입금하겠다고 밝힌 것도 ‘기타소득’의 세금납부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처럼 ‘기타 소득’은 목회자가 받는 정기적인 사례비와 함께 목회자의 통장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익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목회자들이 “우리는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소득세 납부를 거부하는 사이, 정부는 한 발 더 앞서서 근로 기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삼았다. 목회자들의 ‘도서비’나 ‘심방비’ 등을 비과세로 해달라는 논의는 사라진지 오래다.

현행 세법대로라면 목회자는 물론이고 ‘무보시원칙’을 고수하는 불교계 관계자들 역시 수입이 있다면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장기적으로 종교계의 투명성을 기치로 내건 ‘세무조사’나 ‘사찰’도 가능하다. 종교가 더욱 투명해지지 않고는 신뢰하락은 불보듯 자명한 상황이다.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안창남 교수는 “적극적 납세로 교회가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며 “세금납부는 최소한의 사회규칙이고 목사라고 이제 예외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단, 안 교수는 “교회가 납세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국가권력도 한시적 기간을 부여하고 스스로 자정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자발적 납세의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국가권력이 세금을 이유로 기독교 공동체의 수익이나 재산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의 존재 목적이 구별되어야 하는 것처럼 세무조사의 접근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세법을 예로 든 안 교수는 “미국 국세청은 교회에 대해 세무조사권을 행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며 “일반 영리법인과 달리 법인세와 소득세 등 해당 규정의 적용을 완화시켜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신대 고재길 교수도 “목회자 납세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토론이 교회 내적인 차원과 교회 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한국 교회 전체 차원에서 납세문제는 기본적인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필요하며 납세를 하게 되는 상황을 고려해 각 교회와 목회자는 실질적인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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