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돌을 던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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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돌을 던지나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11.05 2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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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 부산 벡스코에서

지난 9차례 총회에 대한 내용을 열심히 공부하고 공식선언문에 ‘동성애, 다원주의, 용공주의’를 지지한 내용이 단 하나도 없다는 확신적인 보수 신학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WCC 총회 현장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한국 교회가 우려하는 ‘반성경적’인 모습이 총회에서 발견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선 것이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전 세계에서 모인 4,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드린 개회예배는 한마디로 경건과 은혜 그 자체였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각 나라 교파의 전통을 모두 존중한 예배는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기도를 담아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동행’과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모습은 개회예배 이후 이어진 모든 회의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눈으로 보고 나니 안도와 함께 아쉬움이 밀려왔다. WCC 총회가 어떤 모습을 띠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이단, 적그리스도’로까지 몰아가며 반대하는 한국 교회의 편협하고 미숙한 모습이 안타까웠다.

개회예배에 참석한 한 복음주의권 목사는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편협했는지 깨달았다. 세상에는 많은 교파가 있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경의와 사랑을 표현하며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WCC가 상당히 복음적이고 성서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개회예배 영상이 방송을 통해 나가자마자 군소교단을 중심으로 결성된 WCC 반대그룹들이 ‘무속적’이라고 왜곡하며 무차별적인 루머를 확산시키고 있다. WCC가 십자가와 사당, 찬양초혼제, 동성애로 범벅되고 있다는 것. 이들은 개회예배 단상에 오른 ‘이콘’(정교회의 성화)을 두고 무속적이라고 비난하고 대륙의 고통을 담아 재를 뒤집어쓰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문 낭독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난했다. 한복을 입은 남녀의 사진을 올려놓고 ‘초혼제’라고 매도하고 불교계 인사들이 개막식에 참석한 사진을 두고 종교다원주의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4,000여 참가자나 수백명의 취재 기자들 모두 감동받은 예배를 자신들의 편협한 사고에 맞춰 이단이며 무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WCC는 정교회를 비롯해 감리교와 성공회, 장로교, 루터교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개회예배는 모든 회원교회의 예배 전통을 존중한다. 이콘을 단상에 올리는 것은 정교회의 예배형식을 존중한 것이고, 재를 뿌리는 퍼포먼스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죄악에 대한 회개를 담고 있다. ‘재’와 ‘회개’가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음에도 반대론자들은 억지만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한복 입은 영상은 개회예배가 아닌 개막식이다. 개막식은 ‘문화행사’로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공연이었다. 5000년 한국 역사를 표현하는 문화공연에서 한복이 아닌 드레스를 입으란 말인가?

불교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이 다원주의라고 한다면 종교지도자협의회에 참여하는 한기총도 다원주의가 아니겠는가. 개막식이 아니라 개회예배라도 다른 종교인들이 참여할 수 있다.

예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고 성령께서는 예배를 통해 참석한 이들에게 감동을 주신다.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교회에서 한복도 입을 수 없고, 국악기도 사용할 수 없다. 다른 종교인들은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복음을 전할 길이 없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기독교다.

WCC 총회는 경건하고 성숙했다. 반대하는 목회자들이나 평신도, 그리고 각 대학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총회 현장에 참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며 95%까지 찬성을 이끌어 내는 ‘합의제’ 형식의 회의와 개별 교회나 한 나라의 총회가 다룰 수 없는 지구적 공공 쟁점들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 등 참관 신청만 했다면 한국어 통역기를 통해 모두 접할 수 있는 회의였다. ‘성총회’를 운운하면서도 멱살 잡고 싸움만하는 한국 교회의 총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했지만 볼 수 있는데도 눈과 귀를 가리고 외면하는 한국 교회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역사상 단 한 번의 기회를 찬반논쟁으로 소모하고 말았다. WCC 총회가 남기고 갈 의미있는 많은 주제들이 이대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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