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성례전 통해 주님의 몸 되어 세상을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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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성례전 통해 주님의 몸 되어 세상을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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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2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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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실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기준은 일반인에 비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기독교인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을 때 비난여론이 더욱 크게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기독교학회는 지난 18일부터 19일 양일간 ‘정의와 평화’라는 주제로 제42차 정기학술대회를 열었다. 국내 유수 신학회의 신학자들이 나서 여러 가지 목소리를 냈다. 그 중 ‘사회윤리’를 다룬 발제자들의 주장을 요약해 실었다. <편집자 주>

기독교 성찬성례는 제정과 시행 초기부터 사회ㆍ윤리적 책임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발전했다.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의 자기중심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았기에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과 행위를 반영하는 삶을 통해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청지기의 사명을 지게 되는 것이다.

성경과 기독교 고대문헌들은 성찬식이 그 초기부터 공동체적인 양식을 가졌었는데, 그들의 공동체에 대한 이해는 교회를 넘어 그들이 속한 나라와 국가, 그리고 우주적 차원까지 확장된다. 성찬식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구현해 공동체의 일치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의 나눔과 세상의 모든 악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기독교 성찬식은 지극히 개인적인 구원과 영성의 차원에서만 이해됐고 결과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신앙인들의 배출을 막을 수 없었다.

제2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개신교 안에서도 대대적인 예배개혁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중의 하나는 초기 기독교의 성찬식 형태와 횟수를 복원하자는 목소리였다. 대부분의 기독교 주류 교단들은 활발한 예식서 발행 등을 통해 이런 움직임들을 빠르게 수용했지만, 사실상 지역 교회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히 시간의 부족이나 과거를 복원하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필요와 의미의 부재 때문이었다. 기독교 초기의 성찬식은 공동체의 일치에 근거했고, 또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기에 그 형식과 내용이 철저하게 공동체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성찬식을 통해 개인의 영성을 증진시키려는 현대인들에게 고대의 전통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만으로 초기 기독교가 경험했던 성찬식의 감동까지도 복원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 특히 개신교는 복음화 이후 여러 위기들을 맞고 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위기는 사회로부터의 외면이다. 한국 사회가 기독교를 외면하는 것은 더 이상 기독교의 교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 동안 한국 개신교회와 교인들이 보여준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인 모습, 심지어는 비윤리적인 삶을 합리화하는 모습 때문이다. 기독교예배의 핵심인 성찬성례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몸을 우리에게 주심은 교회공동체는 물론 우리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신 것임을 확인하고 포스트모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은혜가 어떤 의미여야 하며, 어떤 실천이 따라가야 하는지 말해본다.

현대 성찬신학은 개인적이고 영적인 구원의 도구라는 개념에서 탈피해 공동체적이고 사회 책임적인 관점을 수용하면서 괄목할 만한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성찬성례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지 않다. 한국 교회는 쇼베가 제시한 성례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개인적인 은혜와 영성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이 속한 사회와 국가 그리고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평화와 안녕을 구하는 신앙인들로 형성되어가도록 변화해야 한다.

성찬성례전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받은 우리가 다시금 주님의 몸이 되어 세상을 섬겨야 한다는 성찬의 영성이, 사회로부터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종교로 오해와 외면을 받으며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는 한국 개신교회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또한 성찬과 사회윤리적 책임과의 상관성을 통해 한국 사회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편 등의 경제구조와 부정직한 정치문화, 그리고 폭력과 차별로 얼룩진 사회문화 등이 드러나고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성찬의 사회윤리적인 책임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윤리와 성례를 동일시하거나 어느 것 하나를 더 우월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 그리고 윤리적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데,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를 과도하게 강조하면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이 세 가지의 역동적인 관계를 동시에 유지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잘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찬성례는 어느 한 순간의 의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에 기초한 나눔과 돌봄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의례임을 늘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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