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목사 같은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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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목사 같은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3.10.14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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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큰 스승 故 박윤선 목사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 던지는 메시지

#‘하나님말씀 제일주의’를 통한 진리의 수호자로 한평생 살다간 개혁주의 신학자
#한국 교회의 공동재산으로 남겨진 성경 66권의 주석 집필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

한국 장로교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 정암 박윤선 목사(1905~1988). 신구약 성경을 완벽하게 주석한 것은 세계 교회에서도 거의 찾기 어렵다. 그러나 박윤선 목사는 강한 영적 통찰력으로 66권의 신구약 성경 주석을 집필하며 한국 교회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또한 삶을 통해 ‘오직 말씀’과 ‘오직 기도’의 생활을 실천하며 한국교회의 모본이 되었다. 그런 박윤선 목사가 1987년, 그의 성역 50주년을 기념하며 기념논총 헌정을 받으면서 이 같은 말을 고백했다.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

이 말을 듣는 이들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 평생 ‘하나님 말씀 제일주의’와 철저한 ‘성경 중심적 사고’에 입각해 한국 교회의 진리의 수호자로 살았던 그가 죄인이라니. 그의 고백은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한편, 한국 교회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다. 자신을 ‘의인’이라 칭하며 타인을 정죄하는 의식이 만연해진 이 시대 속에 그의 신학 사상과 삶은 한국교회에 통렬한 ‘회개 운동’과 ‘교회 갱신 운동’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66권의 성경주석 집필…죽으나 사나 ‘오직 성경’

한국에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하고 정착시킨 이는 박윤선, 박형룡 목사다. 이러한 신학의 토대를 놓은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가 바른 신학 사상 위에 혼합주의나 잘못된 신학 사상에 빠지지 않고 든든히 세워질 수 있었던 것.

하나님께 붙잡힌 박윤선 목사의 삶은 평생토록 말씀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주경 신학자의 삶으로 나타났다. 그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주석 집필하고 가르치는데 평생을 바쳤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성경 66권에 대한 주석을 한 것이다. 또 박 목사는 7개 국어에 능통했다. 히브리어와 희랍어, 영어, 독일어, 화란어 등 성경을 해석하기에 알맞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생전에 종종 말하기를 ‘내가 죽었다 깨어나 다시 한세상을 산다 해도, 나는 목사가 되어 성경을 증거하겠다’고 했다. 이 말처럼 그는 성경을 사랑했으며 이를 가르치고 설교하고 묵상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총신대 신학부와 대학원 시절 박윤선 목사로부터 신학 교육을 받았던 박병식 목사(송파제일교회 원로목사)는 박윤선 목사의 주석을 통해 개혁주의와 하나님 말씀의 깊은 통찰력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어떤 분의 주석은 너무 학문적이고 또 어떤 분은 목회자가 그냥 그대로 가서 설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실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윤선 박사의 주석 속에는 그의 삶에서 동행하시는 하나님, 기도 중에 만난 하나님이 절실히 표현돼 있습니다. 더 나아가 바로 그의 삶 속에서 그의 눈동자 하나하나에서도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사셨던 모습이 제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성경을 주석하고 평생을 신학 교육에 매진했던 그는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지만 항상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으며 고백하는 삶을 살았다. 생전 그를 경험했던 이들은 박 목사는 철저한 개혁주의 신앙으로 한 평생 말씀에 입각한 삶을 살았지만, 성품은 온화하고 겸손했으며 큰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고 회고한다.

◆삶으로 기억될 한국 교회의 ‘큰 스승’

박 목사는 생전에 명예나 물욕(物慾)에 집착하지 않았다. 도서출판 영음사의 설립자이기도 한 박윤선 목사는 이를 자녀에게도 유산으로 상속하지 않고 한국 교회와 세계 선교를 위해 헌납했다. 그는 경건하게 사는 것이 사치스럽게 사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말을 줄곧 해왔다. 하나님 앞에 겸손했던 그의 삶은 사람들 앞에는 더더욱 겸손했다. 설교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의 제자에게까지 그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던 그의 일화는 목회자로서 진정한 겸손의 삶을 배우게 한다. 

목회와 주석서 집필에 이르기까지 그는 평생에 걸쳐 하나님을 위한 일꾼으로 살았다. 특히 박 목사는 ‘목사’ 하나를 제대로 세우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50여년 동안 신학 교육과 목회 실천을 통해 교계 지도자 양성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교수로 고려신학교와 총신대, 합동신학대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며 하루 8시간씩 신학의 전 과목을 여러 해 강의해야 하는 힘든 노역을 감당했다. 신학생 교육을 위해 평생 몸 바쳤던 그는 강단에서 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입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박 목사는 고려신학교 설립에 동참했고, 고신교회 출발 초기 고신의 신학과 신앙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신대학교 김성수 총장은 “박윤선 박사하면 폐쇄적이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성경주의를 보여주신 분”이라며 “고려신학교와 박윤선 박사님은 결코 분리시켜서 이야기할 수 없는 하나 그 자체”라고 말했다.

또 박윤선 목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의 기도 생활이다. 그는 늘 가정의 자녀들이나 신학생들 모두의 가장 큰 문제가 기도하지 않는데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박 목사는 팔십 대에도 하루에 서너 시간씩 기도했다. 그는 성경 연구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기도로 영감을 얻었으며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천했다. 자칫하면 너무 이론적이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생활이 약해질 수 있는 개혁주의 학자였지만 그는 신학과 삶, 신앙과 삶이 함께 가는 생활을 실천했다.

◆위기의 한국 교회, 다시 박윤선 목사를 조명하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팎으로 세속화와 물질주의로 인한 시름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이 때 박윤선 목사와 같은 지도자가 그립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살아간 그의 삶은 많은 목회자들의 실천적 모델이기도 하다.

박 목사는 교권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에 교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 항상 개혁을 강조했다. 총신대 신학대학원과 합동신학대학원에서 박 목사의 가르침을 받은 강성장로교회 이철호 목사는 “그분이 강조한 개혁은 남을 개혁하는 것이 아닌 자기를 개혁하는 것이었다”며 “다른 사람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말씀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날마다 눈물로 회개하면서 바로 사는 일에 몸부림쳤다”고 밝혔다.

이권다툼과 갈등, 분열로 인한 한국 교회의 위기론이 확산 돼가고 있는 이 때 다시 박윤선 목사의 삶이 조명된다. 한평생 한국 교회를 위해 살다간 그의 개혁주의 신앙과 무욕의 삶을 다룬 책이 출판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의 제자인 안만수 목사(영음사‧정암문서선교회 대표회장)는 방지일, 신윤복, 김명혁, 홍정길 목사를 비롯해 손봉호, 이만열, 윤영탁 교수 등 교계 인사 88명과 박윤선 목사에 대한 대담을 담은 『박윤선과의 만남1,2』를 출간했다. 또한 박 목사의 성경 주석을 중국어로 출판한 <중국어 창세기 주석>도 발간 돼 중국 선교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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