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전도, 이것만은 '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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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전도, 이것만은 '명심'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3.10.0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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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교수, "복음의 확신 속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헌신으로 대답해야"

기독교의 ‘유일성’, 다원주의 인정하면서도 종교적 신념 추구하는 것
주관적 영혼구원보다 역사변혁적 공공의 진리로 겸손하게 전파해야

종교다원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전도’는 양립할 수 있을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일성과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견지하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들을 상호 인정하고 존중하는 종교다원주의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전도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거부할 수 없는 지상 대명령이다. 따라서 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교회에게 주어진 긴박한 과제 중 하나다.

▲ 김선일 교수(웨신대)
이런 가운데 김선일 교수(웨신대)가 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전도방법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실천신학회(회장:나형석 교수, 협성대)가 지난 28일 개최한 ‘제49회 정기학술대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김 교수는 서구사회와 세속화 및 다원화 현상 속에서 선교적 대안을 모색했던 레슬리 뉴비긴의 사상을 중심으로 종교다원주의 시대에서의 전도적 과제를 모색했다.

최근 종교다원주의의 현대사회 속에서 전도, 혹은 선교는 ‘대화’로 대치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타적 헌신’은 용납될 수 없는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상호존중과 관용적 공존을 중시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의 유일성을 견지하는 것은 매우 일탈적이고 편협하며, 오만하게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원주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다수의 문화와 종교가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다원주의는 기독교인도 반드시 지녀야할 바람직한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35년간 인도에서 선교사를 활동하며 에큐메니칼 진영 내의 선교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던 레슬리 뉴비긴은 다원주의를 ‘사실적 다원주의’와 ‘가치적 다원주의’로 구분했다. 김선일 교수는 “여기서 가치는 주관적 신념의 문제이고, 사실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현상을 말한다”며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는 자신이 선택한 가치를 사실처럼 타인에게 설득하려는 것을 불선하게 여기는 성향을 보인다. 종교는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취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한 종교의 신념과 교리를 다른 이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뉴비긴은 과연 가치와 사실이 서로 무관하게 분리되는 별개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믿음 없는 사실이 가능하다는 사상을 확산시키는 것이 현대 다원주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특히 뉴비긴은 각 종교들의 대화가 진정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자신의 종교를 총체적인 경험을 이해하는 근원으로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망한다”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간 다원주의는 각 종교들의 공적인 진리 주장을 인정해주는 것이지 하나의 단일한 신념이나 진리로 통일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기독교의 유일성은 문화적으로는 다원주의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적 신념에 있어서는 특수주의를 추구한다는 것. 뉴비긴은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로의 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진 새로운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회개와 새로운 차원의 믿음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뉴비긴의 주장대로 현대의 종교 다원주의적 상황이 종교 간의 고유한 가르침을 일률적으로 만들거나 종교적 신념을 주관적인 영역으로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면 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의 고유한 ‘복음전도’의 사역은 어떤 방식으로 실천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적절한 확신’을 갖는 것이다. 김 교수는 “뉴비긴이 강조하는 ‘적절한 확신’은 기독교를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들이 충분히 축적되거나 또는 기독교가 현대 문화의 요구에 잘 부합되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시고, 구원자이신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과 그를 증거하는 성경을 통해서 인생과 역사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안목으로부터 오는 확신”이라고 설명했다.

즉,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증거한다고 해서 모든 진리를 소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주장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것. 김 교수는 “이러한 자세를 갖는다면 타종교인들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들은 무지한 자들이라는 오만한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복음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와 신념을 나누는 것”이라며 “복음을 순전히 개인구원의 차원에서만 접근하거나 타종교인을 정죄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복음을 왜곡하며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두 번째로 공동체 중심으로 복음을 해석하는 것이다. 전도는 외향적이고 달변의 은사를 지닌 특정 개인들의 사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가 내면적으로, 또는 외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뉴비긴은 현대 교회는 개종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늘리려고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지만 그러한 열정이 훌륭한 교회의 삶에서 나오지 않고, 또한 그러한 삶으로 인도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즉, 선교의 노력이 어떠한 성품의 사람으로 변화되는가에 대한 뚜렷한 목적 없이 단순히 교회 구성원을 늘리려는 시도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

김 교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비전을 품는 기독교 신앙이 다른 소망을 공동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빈곤이라 할 수 있다”며 “오늘날 지역공동체 운동의 활성화는 교회가 자기 비움과 섬김의 공동체로서 복음을 사회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대답’으로서의 전도다. 복음전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 현장에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의 질문에 복음으로 답을 하며, 인내하며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이나 교회가 진리를 소유한 채 의도와 계획대로 포장된 복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인도에 힘입어 신실한 증인으로 자기를 비우며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전도훈련은 사람들에게 대본화된 프로그램을 답습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이유와 변화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김 교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 공동체의 헌신의 강도가 사람들에게 질문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의 신실함을 수반하지 않는 한 자연스럽고 힘 있는 전도의 기회는 요원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한국실천신학회는 산하에 한국영성신학회를 창립했다. 학회 책임고문 위형윤 교수(안양대)는 "영성신학의 흐름은 고무적인 일이다. 여러 분야의 신학자들도 영성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한국사회와 교회가 사이비 종교와 영적 문제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영성신학회의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한국 교회 신학자로서는 최초로 영성신학을 전공한 유해룡 교수(장신대)는 "영성신학은 특정 신학, 특정 신학자의 전공이라기보다는 융합학문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영성이란 주제는 모든 학문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신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영성신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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