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존경하는 스승을 둔 것,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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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존경하는 스승을 둔 것,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복"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9.05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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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일 목사와 30년 동행한 영등포교회 원로 김승욱 목사

존경받는 어른이 없는 시대일까. 존경하는 마음이 없는 시대일까. 평생의 멘토 한 사람 꼽기 어려운 시대에 30년을 한결같이 한 분의 스승을 섬기며 살아온 이가 있다. 영등포교회 원로 김승욱 목사. 그 역시 70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한쪽 팔은 늘 스승을 붙들고 있다. 30년을 함께 해온 영적 아버지와 아들. 바로 영등포교회 1대 원로 방지일 목사와 2대 원로 김승욱 목사다.

한국 교회 첫 중국 선교사로 알려진 방지일 목사는 올해 10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설교를 전하며,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고 있다. 일주일에도 수차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방 목사 곁에는 항상 김승욱 목사(75)가 있다. ‘그림자’처럼 방 목사를 지키는 그는 “목사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나까지 대접을 받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겸손히 웃는다. 방지일 목사 이야기에 온통 미소를 머금은 그는 ‘아들’ 그 이상이었다.

# 심방은 ‘어린양’을 찾는 일

김승욱 목사가 방지일 목사를 만난 것은 1976년 신학대학원 졸업반 무렵이었다. 영등포교회 전도사로 부임하며 2년 반 방 목사 밑에서 사역을 배웠다.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6년 만에 방 목사의 호출을 받았다.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 방지일 목사가 후임으로 김승욱 목사를 부른 것이다.

“뭘 좋게 보셨을까? 난 지금도 모르겠는데….”

김 목사는 방지일 목사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저 “우린 코드가 비슷하다”는 말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방지일 목사에 이어 김승욱 목사로 이어지는 영등포교회는 ‘심방’이 끊이지 않았다. 성도들을 찾아가 만나고 위로하고 기도하는 목회는 두 사람의 가장 닮은 점이다.

“방지일 목사님은 뭘 지시하거나 하지 않으셨어요. 먼저 몸이 움직였지요. 새벽기도 끝나고 심방갈 곳이 있으면 5분 정도 기다렸다가 혼자 출발하셔요. 기다리지 않으시는 걸 알고는 다음부터 바로바로 같이 움직였죠. 솔선수범이 방 목사님의 리더십이었어요.”

1년에 두 차례의 대심방을 했던 영등포교회. 봄 가을 두 차례면 거의 365일 심방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날 대심방을 마친 방지일 목사가 “용인으로 가자”고 했다. ‘용인? 용인에 누가 있길래 바쁘신 분이 그 멀리까지 가시나’ 김 목사는 궁금했다. 도착한 곳은 용인의 방직공장. 방 목사는 그곳에서 전라도에서 올라온 여공을 만났다. 영등포교회에 잠시 머물던 성도였다. 목사님의 갑작스러운 심방에 여공은 눈물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김 목사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멀리 직장을 구해 떠난 방직공장 성도까지 기억하고 찾아가 기도해주는 참 목자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김 목사는 방 목사로부터 목회를 배웠다. 섬기고 솔선하는 목사로 그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 교만 깨우치라고 찾아든 병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우수했던 김 목사는 서울사대 국문과에 응시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후기대학에 들어가느니 재수를 하자고 마음먹은 김 목사는 이듬해 연세대 신과에 지망했다. 시험을 치던 서울대와 달리 연대는 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했다. 그러나 또 결과는 낙방이었다. 신체검사 결과 폐결핵이 발견된 것.
초기였지만 입학은 허락되지 않았다. 결핵이 중병이던 시절, 3년 동안 독한 약을 먹어가며 버텼다. 요양을 하면서 신앙생활도 느슨해졌다. 목사가 되겠다는 꿈은 잠시 그에게서 잊혀졌다. 병이 다 나았을 것이라고 자만하던 그에게 하나님은 더 강한 매를 드셨다. 결핵균이 척추로 옮겨가 ‘결핵성척추염’으로 악화된 것이다. 극심한 통증으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의사는 그에게 “금이 간 옹기그릇 같다”며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하나님, 살려만 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루에 3~4대의 항생제를 맞으며 그는 3개월 동안 누워 있었다. 주사를 꽂을 혈관도 없을 정도로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났다.

의사조차 “당신 같은 환자도 살아 나갈 수 있느냐”고 놀라움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확신했다. ‘나를 살려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병마를 이겨낸 그는 다시 연대 신과에 입학했다. 거의 10년 가까운 공백이었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대학에 합격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생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였다. 그는 말했다.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더군요. 교만을 깨우치라는 채찍은 제 시간을 10년이나 멈추게 했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 어른 공경, 당연한 도리

원로가 둘이나 되는 영등포교회. 그런데 그 흔한 ‘갈등’ 이야기도 없다. 스승만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후임을 배려하는 마음도 지극하다.

“한 교회에 시아버지가 둘이면 힘들지 않겠느냐”며 김승욱 목사는 아예 퇴임 후 5년 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설교도 거절했다. 후임 임정석 목사가 자리를 잡고 나서야 분기별로 한 번씩 두 원로 목사가 번갈아가며 설교를 했다.

“내가 부임하고 나서 성도들이 왜 불만이 없었겠어요. 그 때마다 성도들이 방 목사님을 찾아가면 일언지하에 만남을 거절하고 돌려보내셨어요. 목사 험담할 시간에 기도나 하라고 책망하셨죠. 지금 교회는 원로들이 그 역할을 못하고 성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문제에요. 원로는 단호하게 후임 목사를 지켜주고 후배는 전임자의 사역을 존중하며 서서히 교회의 변화를 끌어가야죠. 그래야 교회가 갈등이 없습니다.”

3대째 이어지는 목회 이양에도 갈등 한 번 없었던 영등포교회에는 ‘섬김과 배려’라는 특별한(?) 비결이 있었다. 그리고 30년 한결같이 방지일 목사를 그림자처럼 모시는 김승욱 목사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당연한 것이 특별하게 취급을 받는 ‘이상한 시대’라는 데 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은 당연한 일인데, 내가 칭찬을 받는다면 그게 이상한거지요.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인데…. 칭찬받을 일은 아니에요.”

그만큼 시대가 변하고 교회가 변한 것이 안타깝다는 김승욱 목사. 세상으로부터 질책받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다.

#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 하라

“죄송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의 문제는 목사님들의 문제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복음이 그들 안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복음에서 십자가가 빠져 있고, 사랑을 전하는데 십자가가 빠져 있습니다. 죄를 인식하지 못하면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가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도 없어요.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징계는 사람의 벌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할 수 있다는 김승욱 목사는 마음 찢는 회개로 목사가 바로 서고 교회가 회복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날마다 죽는 삶,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학교육에 대한 문제도 꼬집었다.

“한 번은 미국의 어느 한인 목사가 동정녀 탄생도 부정하고 부활도 부정하는 설교를 했다고 해요. 노발대발하며 어떻게 그런 목사가 있느냐고 화를 냈더니 내가 속한 광나루 출신이더군요. 신학교 채플 때 교수들에게 똑바로 가르치라고 야단을 쳤어요. 신학생들에게 회개와 죄사함의 감격이 없다면 그들이 건강한 목사로 설 수 없습니다. 학교도 교회도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워야 해요.”

그의 말 속에서 변질된 교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말씀도, 구원의 확신도 없이 교회를 악세사리처럼 생각하는 시대가 불안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매주 월요일 작은 회사 사무실에서 5~6명을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치는 김 목사는 요한복음 강해에 들어갔는데 “어렵다”고 엄살을 부렸다.

“방 목사님이 성경을 가르쳐 주실 때면 저런 구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워요. 성경 66권을 모두 외우신 것 같아요. 그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고 맛있습니다.”

성경공부를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은 낮추고 스승은 높이는 김승욱 목사. 가장 안타까운 것은 60년 간 이어져온 방지일 목사의 성경공부가 최근 건강 문제로 인해 중단된 것이다. 매주 1시간 반씩 들었던 그 달콤한 성경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어디 가시면 녹음을 해서라도 들려주셨는데, 60년 만에 처음 쉬는 성경공부지요. 목사님이 건강하셔서 더 많은 말씀을 듣고 싶은데…. 속상해요.”

“방지일 목사님이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더 많은 가르침을 남겨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승욱 목사. 마지막까지 스승의 이야기로 가득 채운 제자의 모습이 행복해보였다.

“누군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일생 따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복이죠.”

특별한 복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그는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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