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질게 버려진 인생도 주님은 감싸주셨습니다”
상태바
“모질게 버려진 인생도 주님은 감싸주셨습니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3.07.31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년간 이어진 광야의 삶, 도서 ‘뭉치’의 주인공 임용남 목사

지옥 같았던 삶, 놓쳐버린 가족, 엉망이된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길이 되어 주었다.

살아온 단 한 순간의 삶도 인간다움과 거리가 멀다면 그 삶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글을 익혀야 할 나이쯤 사회에 버려진 인생, 18년간 길거리와 수감소를 오가며 연명한 삶 앞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설명이 무의미 할 것이다. 하지만 임용남 목사는 실제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그래도 삶의 변화는 한 줄의 성경 말씀에서 시작됐다고 고백한다. 질곡 같았던 그 삶의 여정을 따가라 보았다.

# 길거리에 버려진 인생

▲ 도서 뭉치의 실제 주인공 임용남 목사.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임용남 목사. 6.25 전쟁 후 불과 3ㆍ4년이 지난 때였지만 임 목사는 유년의 삶은 그런대로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평온했던 시기도 잠시, 사건의 발단은 아버지의 도박과 도벽, 그리고 미신에서 비롯됐다. 경찰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비번이면 노름방에서 살다시피했고, 밑천이 떨어지면 그길로 친구들과 트럭을 몰아 강원도로 도벌하러 떠나곤 했다.

“기어코 도벌이 문제가 됐죠. 연이은 도벌이 발각돼 경찰에서 해직되며 그런데로 유지되던 가정은 풍비박산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도박과 도벽은 사라지지 않았죠.”

그런데 진짜 문제는 도벽과 도박에 미신이 더해지며 시작됐다. 할머니가 무속적 노력을 기울인 끝에 아버지를 얻었던 만큼 지나가는 선사의 말 한마디는 가정을 무너뜨렸다. “미신을 믿던 아버지는 살기 위해 어느 날 제 목을 졸랐습니다. 냉수 한 사발 마시러 들렀던 스님이 아버지와 저의 사주가 닭과 지네의 관계라는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됐어요. 둘 중 하나는 죽어야한다는 말을 남겼죠.”

죄라면 지나가던 선사가 던지 한 마디를 아버지가 들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결국 자식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손길을 피해 어머니는 타인의 손에 자식을 맡겼고, 그나마도 힘들어졌을 땐 서울역으로 이끈 손을 놓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임 목사의 삶은 부모로부터 버려져 부랑아의 길로 접어들었다. 춘삼월도 지난 꽃이 만발하던 4월의 이야기다.

“봄에는 쓰레기통에 별게 없었지만, 여름과 가을엔 제법 건질게 있었죠. 사과와 배, 참외 껍질, 가끔은 옥수수대와 생선뼈도 나왔으니까요.”

부랑인 무리에 섞여 구걸하거나 훔치기,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 일상으로 자리 잡을 무렵 기구하게 버려진 인생이 삶의 바닥이라 여겼지만 불행의 바닥은 그곳이 아니였다. 수원에 도달했을 무렵 부랑아 일제 단속 기간에 걸린 그는 그길로 다시 경기도 웅진군 대부면 선감도 내 부랑아 수용소에 갇히게 된 것이다.
“부랑아로 떠돌기 시작한지 7년쯤 됐을거에요. 버려졌다는 사실도 그땐 죄가 되더라구요. 14살이 되던 해 제 또래 친구들이 중학교 문턱을 들어섰을 무렵 저는 선감도수용소에 수감됐어요."

수용소에서 기다리는 건 생지옥을 방불케하는 폭력과 노동이었다. 논일과 밭일 제약된 틀 속에 반복되는 작업 등의 노역을 마치고 옥사로 돌아와도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 중에서도 제일 참기 힘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희망은 탈출뿐 그 곳을 벗어나는 길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탈출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무릎까지 빠지는 갯벌을 지나 물살이 강한 해협 400미터를 헤엄친 후 마산포에 도달해야 그나마 가능했던 것이다. 실패 때 마다 고문과 견딜 수 없는 체벌이 기다렸지만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한 탈출 시도는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명과 함께 자유를 향한 필사의 탈출은 끝내 성공했다. 하지만 뭍을 밟은 뒤에도 목구멍에 풀칠해야 하는 현실은 무게감 있게 삶을 짓눌러 왔다. 나름대로 걸어온 삶의 궤적이 구걸과 훔치는 일밖에 없어서일까, 시간이 지나 선택한 길은 일행을 따라 담장을 넘어 2백여 개가 넘는 시계를 훔친 일이었다. 그 일로 세 사람의 손엔 쇠고랑이 채워졌다. 복역 후 2년이 흘렀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온 뒤 다시 휘말린 시비에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 그는 형사의 손에 잡혀 다시 경철서로 들어섰다.

# 변화된 삶의 길

▲ 최건수 작가가 집필한 ‘뭉치’ (도서출판 생각나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옥 같았던 삶이 거기서 변화될 줄은 몰랐습니다. 놓쳐버렸던 가족에 대한 소식도, 전국을 찾아 떠돌던 엄마에 대한 짧은 소식을 들었던 것도 조서를 쓰기위해 찾은 경찰서였으니까요.”

부랑아 생활로 유리걸식한 삶은 사실 어머니를 찾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서구걸부터 배워야 했던 7살 아이가 경찰서에서 만난 것은 18전 아버지와 함께 형사로 근무했던 양 형사였다. 작은 죄는 아니었지만 양 형사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정상 참작이 되어 다시 그 앞에 놓인 죄의 무게는 조금 덜 수 있었다. 다시 10개월간 이어진 수감생활. 성경을 처음 만난 것도, 가슴을 조금씩 적셔온 복음을 처음 접한 것은 그때였다.

“부정했죠. 처절한 삶이었는데 그 삶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말은 귀에 안들어왔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성경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정하고 때론 비웃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눈에 들어오던데요. 그리고 기억으로 남아 어느 순간 가슴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18년간의 부랑아로 떠돌아야 했던 생활도 그 때부터 한순간에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힘도 운명의 장난도 아니었다. 감옥에서 만난 성경은 죽지 않고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뭉치, 제 어머니를 찾아나선 길 끝엔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아이러니 하지만 지금생가해보면 애초에 제가 찾아 나섰던 것은 결국 어머니가 아니라 주님이었습니다.”

뭉치는 길거리에서 어머니를 뜻하는 은어다. 글을 배운적도 없지만 스스로 어깨너머 깨친 한글로 한 줄 두 줄 성경을 읽다 한 구절이 눈을 사로잡았다. 시편 27절의 한 구절.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편27:9~10) 그때부터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말. 현실에서 사람을 멀어지게 사람을 나약하게 한다는 말도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덜너덜해진 기독교 관련해진 책 한 권을 감옥에서 겨우 구할 수 있어요. 한얼산 기도원장 이천석 목사의 삶에 대한 만화책이었어요. 그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출소 이후 기도원을 찾기 전 양 형사의 배려로 가족들도 하나 둘씩 만날 수 있었다. 오랜 수소문 끝에 만날 수 있었던 어머니. 하지만 폐결핵으로 남편을 잃고 자식의 손을 서울역에 놓고 떠난 어머니의 삶도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다. 그 후 임 목사가 향한 곳은 한얼산 기도원이었다. 기도원장 이천석 목사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따지러 갔듯이 찾아간 기도원에서 한 달 보름을 더 머물렀다. 임 목사는 기도원에서 내려오는 길 현실은 그대로였지만 삶은 변했다고 말했다. 올라온 길과 내려간 길은 같았지만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만난 후의 삶은 전혀 다른 삶이라는 고백이다. 이후 예장 통합 최기준 목사의 소개로 들어선 밥존스 신학교.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새로운 가족을 믿음 안에서 키워왔다.

“굴곡진 삶에 다시 찾은 어머니와 가족도 결국 답이 되지 못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중간에 아버지께 찾아왔던 폐결핵이 저를 다시 찾아왔지만 생사를 오가는 길에서도 찾은 답은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태어났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 그 길을 정하니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성경과 기도에서 길을 찾고 확신을 갖게 된 임용남 목사는 돌고 돌아온 인생의 광야 길에 답은 주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