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 ‘신앙의 제약ㆍ박해’에도 믿음은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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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北) ‘신앙의 제약ㆍ박해’에도 믿음은 이어져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3.07.2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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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의연대ㆍ북한인권개선모임, ‘북한 종교 박해실태 및 고발’ 기자회견 공동개최

▲ 북한정의연대와 북한인권개선모임은 최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북한의 종교 박해실태와 고발’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북한정의연대>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북한 지하 교회에 대한 공개증언과 그루터기 지하교회 실태에 대한 보고가 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발표됐다.

북한정의연대와 북한인권개선모임은 지난 25일 서울시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북한의 종교 박해실태와 고발’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증언자로는 김일성 종합대학 신학과 제1기생 한모 씨를 비롯해 북한지하교회에서 활동해온 김모 씨와 안모 씨가 참가했다. 지난 1988년 김일성 종합대학 신학과 제1기생 출신의 한모 씨는 평양 봉수교회 및 칠골교회에서 시무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이후 외국에서의 한 번의 말실수로 북에 송환되어 평안남도 개천 제11호 교화소에서 10년간 수감된 사실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이날 10년간 수용소 생활 중 기독교인 4천여 명이 처형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밝혔다.

특히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은 그루터기 교인의 경우 수용소 안에서 분리된 별도구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따로 살아가고 있는 실상에 대해서도 전했다. 한 씨가 평남개천 제11호 교화소에 수감된 기간은 지난 1992년부터 2002년까지이며, 그가 졸업한 김일성종합대학 신학부는 지난 200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경제대학으로 편제되는 과정에서 영성학과로 개명된 바 있다.

평양의과대학 졸업 후 약사로서 북한 지하교회를 섬겨온 김모 씨는 북한 내 그루터기 교회의 활동과 확산과정 및 통제 상황에 대해 전했다. 자신을 3대째 이어온 목회자 가문 후손이라 밝힌 그는 전도를 위해 활동하다 1989년부터 10년간 A교화소에서 수감된 바 있다.

이날 안모 씨는 아사자가 속출하던 1997년 성경책을 처음 접했던 경험부터 2003년 탈북할 때까지 이어온 신앙생활에 대해 언급했다.

한편, 공개증언에 앞서 진행된 북한 내 종교박해 실태에 대한 발표에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이 참여해 ‘북한 종교의 자유와 박해 실태’에 대해 발표했다.

윤 소장은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탈북한 7,481명을 대상으로 종교의 자유에 대해 설문한 결과 6,963명(99.6%)이종교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응답했다”고 전했다.

또한 북한 내 평양 이외 당국이 인정하는 예배 장소가 있는가는 질문에는 98.9%가 그런 장소가 없다고 응답해 사실상 북한 내 합법적인 종교의 자유는 아직까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비공개적인 종교활동과 성경을 본 경험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소폭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윤 소장은 “응답자 중 89명(1.2%)은 북한에서의 종교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고, 타인의 종교활동을 목격한 경험에 대해서는 366명(5.1%)이 있는 것으로 답했다”며 “특히 성경을 본 경험자의 경우 2000년 이전에는 6명에 불과하던 것이 이후에는 284명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전했다.

그는 “2009년 이후 최근 입국자의 경우 비밀 종교활동 경험자의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개증언 및 종교박해 실태 발표 장소에는 증언관련 그림자료 및 국내 최초 북한 내 기독교박해 실태를 시기별로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도서 ‘박해’에 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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