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와 함께 걷는 인생길에 평화가 항상 머물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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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와 함께 걷는 인생길에 평화가 항상 머물길 소망합니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3.07.17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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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웃을 향한 환대와 경청의 시간 20년, 장애우 섬김의 집 ‘길벗 공동체’

▲ 길벗 공동체는 지난 6월 14일 강원도 화천군에 장애우의 자립된 친환경적 삶을 돕는 생명나루 준공식을 가졌다. 사진은 생명나루 가족과 함께 찍은 모습. <사진제공:길벗공동체>

함께 만든 십자가 아래 매일 열리는 기도가 살아갈 힘
‘사람의 생애 주기’에 맞춰 요람에서 무덤까지 섬김사역

인천시 주안2동 주엽역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주택가 안쪽. 빗물이 고인 골목길을 돌아 도착한 곳에 진홍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건물 옆 밖으로 고개를 내민 간판은 이곳이 ‘섬김의 집’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길벗공동체(상임이사:한용걸 신부) 섬김의 집은 20여 년간 장애우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곳이다. 장애우들과 맞잡은 손을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던 길벗공동체. 그 따뜻한 여정을 듣기 위해 삶의 터전을 방문해 보았다.

구름이 약간 하늘을 덮은 날씨. 주안2동 섬김의 집에 도착하자 현관 입구에 갖가지 서로 다른 화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띤다. 이곳 식구들이 각자 좋아하는 식물을 심었고, 화분이 뽐내는 초록빛 자태가 자유롭고 아름답다.

발길을 돌려 들어선 건물 안 한층 한층 올라가는 복도에 ‘함께걷는 길벗공동체’의 20년 철학이 담긴 문구가 걸려 있다. ‘환대와 경청’. 장애우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지난 삶이 느껴진다. 이어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공간. 그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하며 더운물로 다기를 데우고 있는 성공회 한용걸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 소외된 이웃을 향한 환대와 경청
찻잔을 마주하고 앉은 한용걸 신부는 자신의 삶이 ‘섬김’이 아니라고 말했다. 장애우들 곁에서 함께 해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들 덕분에 힘든 세상을 살아낼 수 있었다는 것.

길벗공동체의 철학이 담긴 ‘환대와 경청’ 역시 그 깨달음의 한 조각이다. 한 신부는 “누구를 환대하고 누구의 말을 들을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과제가 주어진다. 그 때마다 아픔을 간직한 이웃을 환대하고 눈짓과 몸짓을 통해 그 목소리를 경청하는 법을 배우길 원했다”고 말했다.

뇌병변장애우 및 발달장애우와 더불어 재활하고 그들에게 직업을 선물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온 길벗 공동체. 이곳에는 현재 △징검다리 장ㆍ단기 보호센터 △그룹홈 ‘섬김의 집’ △길벗 보호작업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강원도 화천군에 ‘생명나루’를 준공하며 그 사역을 확장했다.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한 섬김의 기관. 자세히 들여다보니 특징이 있다. 바로 사람의 ‘생애주기’에 맞춰 조성됐다는 점이다.

교육과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장애우를 위한 징검다리 장ㆍ단기 보호센터를 시작했고, 성인 장애우들의 일거리는 길벗보호작업장이 맡았다. 거주와 숙식이 필요한 장애우를 위한 그룹홈 ‘섬김에 집’까지 각각의 사역은 요람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길벗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 신부는 “장애우들이 다른 이들처럼 살아가는데 초점을 맞췄다”며 “자립을 통해 사회로 넘어가는 다리가 되길 바라는 사회통합 의지가 시설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6년간의 공사 끝에 지난 6월 강원도 화천군에 완공한 ‘생명나루’는 친환경적 삶을 원하는 장애우를 위한 공간이자 연로한 장애우가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설이다. 자연과 더불어 삶의 여유를 누리길 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 길벗공동체를 설립한 한용걸 신부는 “그동안 장애우를 섬겨온 것이 아니라 그들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 생명과 평화의 꿈을 담은 ‘생명나루’
한 신부는 “생명나루는 상처와 소외 차별을 딛고 약한 생명을 건강하고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나루터라는 의미와 자연 속에서 생명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살기 바라는 마음,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긴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생명과 평화’의 공간이 되길 바란 것이다.

첫 공사는 쉽지 않았다. 경사가 높은 산간지역을 개간할 땐 물도 전기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나씩 터전을 일구는 모습에 장애우 부모들이 희망을 담아 동참해주었다. 이렇게 마련된 건물과 땅 곳곳엔 자신이 떠난 후에도 장애를 가진 자녀의 여생이 걱정 없이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명나루는 전통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연을 벗삼아 이곳에서 농사도 지을 예정이다. 길벗공동체 섬김의 집 권명복 재활교사는 인근 밭에서 생산되는 매실과 콩으로 △된장 △간장 △메주 △매실 원액 등의 농산품을 생산해 인천 송현동 길벗 보호작업장으로 옮겨 농산품 판매처를 개척하는 등 장애우 작업장으로 확대할 계획도 밝혔다.

# 삶에 희망인 영성과 기도
길벗공동체의 다양한 사역은 ‘신앙’에 기반한다. 20년 신앙의 역사를 간직한 ‘섬김의 집’에서는 매주 주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것과 더불어 매일 집 앞에 마련된 작은 예배 장소에서 하루 일과가 마치는 오후 기도예배를 드린다.

섬김의 집 건물로 들어서기 전 정면에 보이는 1m 50cm 정도의 나무 십자가는 섬김의 집 식구들이 함께 만들었다. 거동 가능한 식구들은 매일 오후 7시가 되면 십자가 주변으로 길게 늘어진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 그늘 아래 모여 20여 분간 기도를 드린다. 기도의 시간,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간단한 기도문을 암송한다.

한용걸 신부는 “각기 다른 삶의 아픈 사연들, 육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에서 깨지고 부서진 식구들이 매일 드리는 기도문은 간단하지만 간절함을 담고 있다”며 “기도 후에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기도로 마무리 한다”고 말했다.

사실 공동체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의 사연은 모두 다르다. 선천적으로 장애로 시설을 찾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후천적 사고로 장애를 입고 발길을 들인 경우도 있다. 길벗을 보금자리 삼은 A씨의 경우 서울대 출신으로 국내 유수의 기업에서 인정받는 인재였지만 단 한 번의 교통사고로 인생이 바뀌고 말았다. 또 다른 이는 오랜 노숙생활을 뒤로하고 공동체에 발을 들였고, 섬김의 집에 함께한 C씨는 거친 삶 가운데 하나둘씩 자녀가 떠나간 사연을 품고 있었다.

권명복 교사는 “선천적 장애뿐만 아니라 삶 속에 깨어지고 부서진 시간을 보내온 공동체원들이 매일 드리는 기도의 지향점은 다름 아닌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라고 전했다. 한용걸 신부는 “신앙적 배경이 거의 없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해주고 있다”며 “서로 가 영적으로 의지하고 보살피는 배려도 예배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동체 가족들의 헌금봉투도 눈에 띈다. 한 신부는 “이 헌금은 일정 기간 모은 후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며 “부활절 헌금은 청주 수동교회에 전달한 바 있고, 북한어린이 결핵약 제조를 위해 모아진 정성을 전달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한 신부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길벗공동체에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의 사역은 완성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며 “열정이 가득한 사람과 함께 앞으로의 사역을 더 힘차게 내딛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 인천시 주안 2동에 위치한 섬김의 집에는 뇌병변장애우 및 발달장애우 1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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