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고개 서광교회에 경사가 났다 …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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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고개 서광교회에 경사가 났다 … 무슨 일일까?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7.15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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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속 성도 축하잔치 … “선배처럼 우리도 헌신할래요”

담임목사와 ‘같은’ 목회철학으로 평신도 세운 후 부흥성장 결실

엄격한 제자훈련으로 ‘직분자’ 임명 ...정직하고 투명한 교회 추구

통일로를 따라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 박석고개. 그 언덕에 우뚝 솟은 십자가가 있다. 멀리서도 한 눈에 ‘서광교회’라는 이름이 들어온다. ‘미래가 보이는 교회’라는 슬로건을 내건 서광교회는 성도들이 즐거워하는 교회, 성도들이 자랑하는 교회를 꿈꾼다. 매주 오는 교회가 불편하고 재미없다면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터. 성도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서광교회는 먼저 ‘성령이 충만한 교회’를 선포했으며, ‘선교하는 교회’를 세워 나가고 있다. 이렇게 신앙을 세우고 나면 자연스레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이 이상대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다. 선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서광교회. 그곳에 지난 30일 주일 오후에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한마디로 “서광교회에 경사가 났다.”

“나는 자랑스러운 서광 성도”

“서광교회 성도라서 자랑스럽고, 서광교회를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날. 지난 30일 열린 행사의 이름이 바로 “서광교회, 경사났네”다. 지난 27일 ‘트루워십퍼스12’ 초청 찬양콘서트로 전야 행사를 마련한 서광교회는 30일 주일에 10년, 20년, 30년 간 교회를 섬겨온 성도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근속 성도를 축하하는 자리다.

“즐겁지 않다면 교회에 다닐 수가 없겠죠. 오랫동안 한 교회를 섬겨온 분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뜻도 있지만 그들이 다시 회복해서 새로운 헌신의 길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서광교회 이상대 담임목사(사진)는 ‘성도’를 아끼는 목사다. 목회는 자신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역시 목사 홀로 성장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그 마음을 담아 마련한 것이 장기 근속자를 시상하는 “서광교회, 경사났네”다. 올해로 6회 째. 2년에 한 번씩 마련한 행사가 12년째 접어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30년 근속 성도가 나왔어요. 그간 고생한 성도들이 남긴 흔적을 보며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죠. 또 성도들이 근속자들의 삶과 신앙을 보며 이들을 모델로 따라가길 바랍니다.”

이상대 목사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이날의 잔치는 즐겁고 행복했다. 30년 근속자 6명, 20년 근속자 21명, 10년 근속자 41명 등 총 68명이 축하를 받았다. 성도들 모두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나눴고, 선배들의 뒤를 잇는 헌신을 다짐했다.

30년 근속자 김주찬 안수집사는 이상대 목사와 교회의 역사에 함께 했다. 성도 25명이 예배드리던 작은 교회 시절을 기억했고, 상가교회를 전전하던 과거도 추억했다. 김 집사는 “서광교회에서 신앙이 자랐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했다”고 고백했다. 대조동 성전을 지을 때도 갈현동 박석고개에 다시 새성전을 지을 때도 김 집사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성전을 지은 후 교회도 부흥했고, 새로운 성도들도 늘었다.

김 집사는 “성도들은 많아지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도와 말씀이 없어지고 성령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부족한 제 자신을 느끼는 시기에 ‘서광교회 경사났네’를 통해 다시 신앙을 점검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김주찬 집사는 “앞으로 40년, 50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첫 믿음으로 봉사하고 충성하며 따르겠다”고 밝혔다.

성도를 ‘동역자로’ 부흥의 시작

1979년은평구 녹번동에 처음 세워진 서광교회는 1986년 이상대 목사 부임 후 변화를 맞게 된다. 당시 서광교회에 부임한 이상대 목사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 신분이었지만 누구보다 목회에 자신이 있었다. 서울신학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이었고, 나름 실력과 리더십을 겸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회 첫 해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실패’라는 두 글자였다.

“무자격자가 목회에 뛰어들었으니 잘 될 리가 있나요? 안 될 요건은 제가 다 갖추고 있었더군요.” 이상대 목사는 자신의 목회 초년을 이렇게 회상했다. 무엇이 잘못인가를 돌아보며 목회의 기초를 처음부터 다시 밟았다. 가장 먼저 그는 ‘사람’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23명의 성도가 모이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 곳에 집사만 14명이었어요. 이 분들을 다시 세우지 않고서는 목회가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내가 목회를 하지만 나의 목회철학을 공유하면서 함께 목회할 동역자들로 평신도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대 목사는 먼저 ‘기도’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고, 성령으로 무장시켰다. 그리고 14명의 집사들을 ‘이상대 목사’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기로 했다. 제자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8개월의 훈련과정은 엄격했다. 성경 1독과 200시간 이상의 기도, 1명 이상 전도가 원칙이었다. 여기에 성도들과의 교제를 강조하며 ‘성도알기운동’을 벌였고 제자훈련과정 중 2번 결석하는 성도는 퇴학시켰다. 이듬해 서리집사로 임명받을 수도 없었다. 성도들은 이 목사의 훈련을 따라와 주었고, 이들이 목회의 동역자로 세워졌다.

지금도 제자훈련을 진행하는 서광교회는 ‘결석자=퇴학’이라는 공식을 적용하고 있다. 또 한국 교회 문제 중 하나가 직분자의 남발이라는 생각에 굳건한 믿음으로 서지 않는 이상 직분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함을 유지한다. 어린이부를 합쳐 출석 성도가 3천여 명에 이르는 교회지만 장로 3명, 안수집사 10명, 권사 30명으로 직분자 수가 많지 않다. 교회가 ‘삼각형’ 구조를 띠고 있어야 가장 건강하다는 모델원리를 지켜나가고 있는 것.

“옛날이야 목사가 지식층에 해당됐지만 지금은 목사보다 뛰어난 평신도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세워야 교회가 건강하게 설 수 있지요. 작은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의 힘으로도 부흥할 수 있지만 교회가 커지면 목사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평신도 리더를 세워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낮고 겸손한 서광교회 꿈꾼다

성도를 동역자로 세운 후 이상대 목사는 ‘성령의 지배를 받는 목사, 즐기는 목회를 하는 목사’가 되는 것을 중요시 하고 있다. 성도들 역시 이 목회철학을 따른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서광교회 성도’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깨끗한 교회, 투명한 교회를 다닌다는 자부심과 성도가 ‘파송교회’로 세워지는 선교의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광교회는 한 사람이 12명의 리더를 세우고, 한 가정이 1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한 가정이 한 교회를 개척하도록 핵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지금까지 17가정이 한 선교사 파송운동에 동참했고, 그 영역도 교육선교, 음악선교, 해외선교, 국내선교 등 다양하다.

박석고개 위에 새로 지은 성전을 한국 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해 내어 놓는 일도 서광교회의 자랑이다.

지난 27일 ‘서광교회, 경사났네’ 전야공연을 이끈 트루워십퍼스 팀은 미국 쥴리어드와 버클리음대, 뉴욕음대 등 유명 음악대학 유학생들로 이뤄진 자비량 찬양선교단이다. 이들은 교회 11~12층에 마련된 게스트룸에서 숙박한다. 지방교회가 서울을 탐방할 때도 교회는 훌륭한 숙박공간이 된다. 지하엔 400평의 교육공간이 있고 20개의 세미나실도 있다. 한국 교회를 위해 서광교회의 모든 시설은 오픈되어 있다. 단, 그 뜻과 믿음이 서광교회의 비전과 일치하는 곳에 한정한다.

교회가 이쯤 부흥하면 ‘역동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서광교회는 늘 꿈틀거린다. 교회를 건축하면서 ‘분립’이라는 씨앗도 뿌렸다. 1994년 대조동에 자립교회를 건축하고 그 기념으로 대전에 대전서광교회를 개척했다. 10년 후인 2004년에는 원당에 분립지교회를 개척했다.

1995년첫 선교사를 중국으로 파송한 이후 필리핀에 서광 리빙 훼이스 처치를 개척했고, 2001년 두 번째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송했으며, 마닐라 한인성결교회를 창립했다. 2002년 정림장학회를 발족하고 2003년 인도에도 서광교회를 개척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국내외 선교 속에서도 지난 2009년 갈현동에 새성전을 건축했고,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정임도서관’도 개관했다. 교회 1층에는 카페멘테를 열어 지역주민을 위한 쉼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어르신대학으로공경의 문화를 심는 것도 서광교회의 몫이다.

“한국 교회가 사는 방법은 ‘분립운동’입니다. 목사가 성도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면 그 목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회가 크기로 서열화 되고, 대형교회를 롤모델로 삼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윤리의식의 붕괴 등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또 아이들이 사라지는 교회에 대해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복음화율이 4%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나왔는데 이것이 미래라면 정말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래목회포럼 집행위원장을 3년이나 맡았던 이상대 목사는 대표 자리를 고사하며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이름 없이 헌신하고 있다.

“기업들도 매장 하나를 내기 전에 시장조사를 철저히 합니다. 하물며 교회를 개척하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선다면 당연히 실패가 따르겠죠. 신학생들이 목회현장으로 나아갈 때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으로 역동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움직인다면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실패를 경험삼아 목회를 꿈꾸는 신학생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남긴 이상대 목사는 더 낮고 겸손해지는 서광교회를 세우고 양을 사랑하는 목자로, 눈물로 기도한 목사로 성도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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