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들의 엄마에겐 ‘성품 교육’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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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의 엄마에겐 ‘성품 교육’이 있었다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3.07.02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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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 엄마, 만점 아들?
언제부터인가 그녀에게 붙은 별명이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세상적인 기준에서 기본도 해주지 못한 것 같다며 당연한 별명이라 인정한다.
입시생 엄마의 초조한 시간을 경험해보지 못한 엄마,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기보다는 이것저것 사 먹고 사 입으라고 잔소리하는 엄마, 아이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해 간섭 하지 않는 엄마, 학비 걱정 안 하는 엄마. 이게 ‘내 모습’이라 말하는 정삼숙 사모(성안감리교회). 하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예일대학교 대학원 전액 장학생으로 만들었다.

중학교부터 대학원 수석.장학생 엄마의 드림법칙
‘두 자녀를 잘 키운 삼숙씨의 이야기(나침반)’ 출판

“하나님의 은혜로 두 아이가 미국 명문대 장학생이 되었지만 저는 신앙교육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두 아이를 미국에 유학보낼 만큼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학비를 내지 않고 두 아이를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두 아이가 그 기간 동안 받은 장학금은 족히 10억 원에 가까워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최근 정삼숙 사모가 두 자녀를 믿음으로 키운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저자의 남편은 부흥회와 방송선교 사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장학봉 목사이며 두 아들 성찬(25) 희찬(24)씨는 모두 예일대 대학원 전액 장학생이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빵점짜리 엄마’라고 말한다. 아이들 유치원 졸업장도 없고 아이들 초등학교 졸업식 날 한 번 학교를 찾아갔다. 일반 학원에 보낸 적이 거의 없고 공부하란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숙제를 해가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가정 예배와 성경을 읽고 외우는 일에는 목숨을 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과외비를 드린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방법으로 살다
정삼숙 사모는 해남 땅끝 깡촌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와서 대학생활까지 넉넉지 못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늘 기도하며 답을 얻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니 예수님의 방법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피아노 레슨일을 할 때에도 그저 단순히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닌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진심을 다해 가르쳤습니다.”

그녀의 삶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늘 감사가 넘쳤다. 늘 “하나님 덕분에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던 중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에 진학했다. 또다시 레슨으로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는 바쁜 생활이 시작됐지만 그녀는 그저 감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교회에서 꾸준히 반주로 봉사했다.

사모의 길을 걷다
그녀는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반주 봉사로 받는 사례비를 매번 환원했다. 또 남모르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에 반주비를 썼다.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삼숙 씨의 집에서는 가난한 전도사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결혼식장에는 아무도 오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삼숙 씨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결혼을 준비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저에게 남다른 비전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바로 믿음의 가정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그 어떤 가정보다도 믿음의 가정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음악공부에 대한 비전도 가득했지만,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키워나가는 것에 대한 열정도 강력했습니다.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 잘될 거라 믿었습니다.”

신랑 측 하객 6백여 명, 신부 하객 20여 명. 어느새 결혼식이 끝나고 함께 가족 사진을 찍으려는데 그렇게 반대를 했던 가족들과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신랑은 장인을 결혼식장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 아주 많이 감사했다.

60만 원으로 시집을 갔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친구도 잃게 될 상황이었지만 결혼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홍해가 갈라진 기적 같았다. 홀로 상경해 생활을 해나가고, 학교를 다니며 반주 봉사를 한 것도 기적이었다.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적이었다. 그만큼 정삼숙 사모는 기적같은 은혜에 감사했다.

“아이들만은 잘 기를게요”
결혼 후 개척교회 생활을 하게 된 부부는 경제적으로 참 고달팠다. 1987년 교회를 개척해 예배당을 지을 때까지 10년 동안 교회를 19번이나 이사했다. 사택을 25번 옮기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삼숙 씨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자녀들을 양육했다. 특히 성품교육을 중요시했다.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읽히고 암송하게 했다. 아이들이 성경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말씀을 읽고 외우면 용돈을 줬다. 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삶에 있어 말씀 적용을 철저히 했다. 어느덧 아이들은 가정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다.

그녀는 손에 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봤다. 한나가 사무엘을 드리는 마음으로 아이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하나님을 100% 신뢰했다. 그녀의 삶 전체가 신뢰의 삶이 되고자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그녀는 ‘혹시, 설마, 만약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불안과 염려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에게는 없어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앞에서 신뢰에 대한 깨달음을 계속해서 복습하고 또 복습했다. 염려가 될 때는 하나님께 맡겨 버렸다. 그냥 과감히 던져 버렸다.

큰 아들 성찬 씨는 줄리아드 음대 대악원, 예일대 음악대학원을 거쳐 지금은 노스웨스턴 대학원에서 음악박사 과정을 수학 중이다. 그가 이렇게 되기까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면서 부모의 많은 염려를 받았다. 실명의 위험과 뇌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100% 신뢰했을 때, 성찬 씨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고백하고 난 후부터 성찬이는 어린 시절 내내 경기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여느 아이처럼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성찬이가 성장하는 자체가 저에겐 기도 응답이었고 기적입니다”고 말한다.

둘째 아들 희찬 씨는 중학교 때까지 반에서 20명 중 15등을 하던, 놀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 텍사스 브루클린 하이스쿨에 진학했을 때 그는 숨겨진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미국 이스트만 음대를 졸업한 후 목회자가 되기 위해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받으며 현재 예일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합격 비밀이 뭐냐고 묻는다면
합격의 비밀이 뭐예요?

아이들의 합격 소식을 전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은 정삼숙 사모. 그녀는 당당히 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해주는 거지요.”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누군가는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합격의 비밀은 ‘성경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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